얼룩말을 사냥하는 사자. 사바나의 초식동물은 먹이와 물을 찾고 포식자와 열기를 피하면서 힘든 균형을 유지한다. 기후변화는 이 균형을 깨뜨릴 우려를 낳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은 사자가 사냥하는 때를 피해 풀을 뜯는 시간대를 뜨거운 한낮으로 옮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사바나의 초식동물은 기후변화로 더욱 취약해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미힐 벨뒤스 네덜란드 라이던대 교수 등 국제 연구진은 남아프리카의 야생동물 보호구역 32곳에서 2013∼2017년 동안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8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낮은 덥다. 많은 동물이 더위를 피해 밤에 활동한다. 벨뒤스 교수는 “현장조사를 하다 보면 밤에는 낮에 볼 수 없던 동물이 많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며 “특히 낮 동안 볼 수 없는 코끼리, 코뿔소, 물소 같은 대형 동물과 맞부닥치는 일이 많다”고 ‘네이처 연구 공동체’ 블로그에서 밝혔다.
왜 낮에는 작은 초식동물이 활동하고 밤이 될수록 큰 초식동물이 돌아다닐까? 연구진이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었던 건 남아프리카 사자의 비극 덕분이었다.
남아프리카 32개 보호구역의 사자는 가축을 해치는 ‘해로운 동물’로 간주해 마구 사냥한 끝에 1950년대 중반까지 모두 사라졌다. 이후 보호구역 절반에서 사자를 재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사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초식동물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할 절호의 ‘자연 실험장’이 마련됐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무인카메라에 찍힌 하마. 대형 초식동물이어서 사자가 활동하는 이른 새벽 선선할 때 풀을 뜯으러 나왔다. 요리스 크롬시흐트 제공.
무인카메라에 찍힌 동물과 활동 시간대를 분석한 결과 사자가 없는 곳의 초식동물은 사자가 있는 곳에 견줘 더 서늘한 시간대에 먹이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행동은 초식동물의 크기에 따라 달라졌다.
코끼리와 코뿔소 등 몸무게 700㎏ 이상인 대형 초식동물은 사자가 주변에 있는지에 거의 영향받지 않고 선선한 밤에 먹이를 먹었다. 잡아먹힐 걱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40㎏이 안 되는 사바나토끼 같은 소형동물도 애초 사자의 주요 먹잇감이 아니어서 영향권 밖이었다.
대형 영양 겜스복은 사자가 없다면 시원한 새벽이나 어스름에 먹이활동을 하지만 사자가 나타나면 한낮으로 시간대를 옮긴다. 찰스 샤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자로 인해 가장 큰 행동변화가 일어난 동물은 몸무게 100∼550㎏의 중형 초식동물이었다. 대형 영양인 겜스복, 얼룩말, 검은꼬리누 등은 사자가 나타나자 먹이활동 시간을 새벽이나 어스름에서 한낮으로 옮겼다.
중형 초식동물은 사자의 주식이다. 사자는 더위를 피해 주로 새벽이나 어스름에 이들을 사냥한다. 사자를 피해 한낮으로 먹이활동 시간을 옮기면 체온상승으로 인한 열사병 가능성도 커진다. 게다가 아프리카 사바나는 지구 다른 지역보다 지구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곳이다.
연구에 참여한 요리스 크롬시흐트 교수는 “모든 초식동물이 같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겜스복은 열과 사자를 모두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얼룩말 같은 동물은 고온이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중형 초식동물인 검은꼬리누. 기후변화의 영향이 우려되는 동물의 하나다. 무하마드 마디 카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후변화에 대응해 동물은 몸을 바꾸어 적응하는 것보다 행동을 바꾸는 것이 단기적으로 쉽다. 더 시원한 곳으로 서식지를 옮기거나 활동 시간대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장벽이나 서식지 훼손이 이동을 힘들게 하고, 결국 사바나 초식동물의 멸종을 가속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벨뒤스 교수는 “기후변화와 함께 초식동물이 열과 포식자를 모두 피할 수 있는 ‘시간의 창’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개별 종뿐 아니라 종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인용 저널:
Nature Ecology & Evolution, DOI: 10.1038/s41559-020-1218-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