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2㎝의 악마의 철갑 딱정벌레(Phloeodes diabolicus)는 날지 못하는 대신 철갑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장갑을 둘렀다. 그러나 겉날개에는 어떤 금속성분도 들어있지 않다. 데이비드 키사일러스 제공
북미 서부 참나무숲에서 균류를 먹고 사는 투박한 딱정벌레에 ‘악마의 철갑 딱정벌레’란 이름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날지 못하는 이 딱정벌레는 장갑차처럼 단단한 키틴질 껍질로 자신을 지킨다.
천적에 들키면 돌멩이 흉내를 내며 죽은 척하는데 새가 부리를 쪼는 것은 물론 사람이 밟거나 심지어 자동차가 바퀴로 깔고 지나가도 끄떡없다. 초기에 이 딱정벌레를 채집한 곤충학자가 핀을 꽂으려다 핀이 휘는 바람에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날개가 없는 대신 날개덮개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한 이 딱정벌레가 어떻게 엄청난 외력에도 잘 견디는지 밝혀졌다. 제수스 리베라 미국 캘리포니아대 재료공학자 등은 22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강인함은 두 개의 철갑 같은 겉날개 사이의 봉합선이 맞물리는 독특한 방식 때문”이라고 밝혔다.
딱정벌레의 단층촬영 모습. 두 겉날개의 봉합선이 그림 조각 맞추기 형태로 맞물려 있다. 데이비드 키사일러스 제공
연구에 참여한 파블로 자바티에리 미국 퍼듀대 토목공학 교수는 “봉합선은 마치 그림 조각 맞추기처럼 복잡하게 맞물리는 형태여서 등의 겉날개부터 배의 키틴질 껍데기까지 다양한 외부골격과 연결돼 하중 에너지를 분산한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또 봉합선은 여러 개의 얇은 층으로 이뤄져 외부에서 힘을 가해도 부드럽게 층이 변형될 뿐 외골격이 일시에 무너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딱정벌레가 견디는 최대 하중은 체중의 3만9000배인 150뉴턴으로 측정됐다. 비포장도로에서 타이어의 하중이 100뉴턴임에 비춰 자동차가 깔고 지나가도 끄떡없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악마 철갑 딱정벌레는 7∼8년을 산다. 몇 주일 동안을 사는 다른 딱정벌레에 견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철갑구조를 갖추는 데 큰 투자를 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결과가 항공기 가스터빈 같은 강하면서도 유연한 물성이 필요한 재료 개발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항공기 가스터빈에는 금속과 복합물질을 기계적 잠금장치로 연결하는데 이 장치가 스트레스를 가해 금이 가거나 부식하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연구자들은 실제로 잠금장치 대신 금속과 복합물질을 철갑 딱정벌레의 봉합선처럼 연결했더니 기존의 장치보다 더 강인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용 논문: Nature, DOI: 10.1038/s41586-020-2813-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