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영역에 침입한 대형 맹금류 흰꼬리수리를 괴롭히는 까치. 연합뉴스
매나 수리 같은 맹금류가 나타나면 까치와 까마귀 등 덩치가 훨씬 작은 새들도 포식자를 공격한다. 일대일로 만나면 먹이가 될 작은 새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큰 포식자를 집단으로 괴롭히는 까닭은 뭘까.
학계의 정설은 그런 행동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아 그쪽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일제히 침입자에 맞섬으로써 둥지의 새끼를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이득이다.
또 포식자가 왔다고 주변에 알리고 어린 개체에는 포식자를 식별하고 대응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 기회이기도 하다. 자기가 얼마나 날쌔고 용감한가를 과시해 포식자에게 만만한 먹잇감이 아님을 알릴 수도 있다.
최근에는 작은 새가 눈앞의 1차 포식자보다 더 강한 상위 포식자를 유인해 1차 포식자를 퇴치하는 고차원 전략을 쓰기도 한다는 가설이 나와 눈길을 끈다. 마치 애벌레에 잎을 뜯어먹히던 식물이 애벌레를 사냥하는 기생벌이나 새를 유인하는 신호물질을 내보내는 것과 같다(▶
새에게도 "도와줘요", 식물은 소통의 '달인').
대만 올빼미(왼쪽)는 검은이마직박구리의 포식자이지만 낮에 쉬는 동안 종종 직박구리 무리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팽 웨이솬 대만 타이중 야생동물보전그룹 연구원 등 대만 연구자들은 “처음으로 직접 실험을 통해 상위 포식자 유인 가설을 입증했다”고 과학저널 ‘동물 행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대만에 사는 소형 조류인 검은이마직박구리가 종종 휴식을 취하는 올빼미를 보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집단으로 괴롭히는데 이때 올빼미를 잡아먹는 머리깃참매가 출현하곤 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연구자들은 직박구리가 집단 괴롭힘을 할 때 내는 소리를 녹음해 숲 속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60곳에서 틀어주는 실험을 했다. 놀랍게도 전체의 28.3%인 17곳에서 녹음소리를 듣고 참매가 나타나 나무에 올려놓은 올빼미의 박제를 공격했다. 직박구리가 보통 때 내는 소리나 참매가 나타났을 때 내는 소리를 틀어준 곳에서는 참매가 전혀 출현하지 않았다.
최상위 포식자인 머리깃참매. 작은 직박구리보다 중형의 올빼미를 즐겨 사냥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상위 포식자인 참매가 1차 포식자인 올빼미에게 내는 신호음과 참매에 내는 신호음을 구별했고, 올빼미에게 내는 신호음 쪽으로 이끌렸으며 결국 올빼미 박제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이번 실험이 상위 포식자 유인 가설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머리깃참매는 이 숲에서 최상위 포식자로서 체중 150∼300g의 먹이를 선호한다. 너무 작은 먹이는 얻는 것보다 들이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북미산 딱새의 일종이 매를 공격하면서 용기를 과시하고 있다. 호세 헤이날도 다 폰세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곳 올빼미는 체중이 150∼220g으로 참매가 즐겨 사냥하는 먹이이다. 올빼미가 참매 사냥감 무게의 7.9%를 차지하는데 견줘 직박구리는 0.5%에 그친다.
따라서 “직박구리로서는 밤에 올빼미에게 잡아먹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낮에 휴식 중인 올빼미 위치를 참매에 가르쳐 주는 편이 이득”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둥지를 지키기 위해 방울뱀에 맞서는 캘리포니아땅다람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포식자를 상대로 한 집단 괴롭힘은 조류에서 가장 흔하지만 다른 동물에서도 관찰된다. 캘리포니아땅다람쥐는 방울뱀이 자기 굴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모래를 끼얹으며 덤벼든다.
민물고기인 블루길(파랑볼우럭)은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돌보는데 접근하는 거북을 공격해 둥지를 지킨다. 혹등고래는 천적인 범고래가 바다사자 등을 사냥할 때 끼어들어 사냥을 방해하기도 한다(▶
혹등고래는 왜 범고래에 쫓기는 바다표범 구해주나).
인용 논문:
Animal Behaviour, DOI: 10.1016/j.anbehav.2020.10.01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