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자유자재 변형 만능연장…콧구멍 부피 64% 늘리고 고속철 속도로 빨아들여, 물 9ℓ 코에 저장도
코끼리 코는 폭약 탐색견보다 냄새를 잘 맡고 트럼펫 소리를 내 소통하며 싸움과 사랑을 표시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폭풍 흡입이란 새로운 기능이 발견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끼리의 코는 동물계에서도 보기 드문 기관이다. 무게 100㎏ 길이 2m에 뼈나 관절도 없이 수천개의 근육으로 이뤄진 코로 코끼리는 숨 쉬고 냄새 맡는 것은 물론 동료와 소통하고 큰 나무를 쓰러뜨리는가 하면 부드러운 나무의 순을 하나씩 따 입에 넣기도 한다.
만능도구처럼 다양한 기능을 하는 코끼리의 코가 빠른 속도로 먹이를 흡입하는 새로운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먹이를 빨아들이는 행동은 이제까지 주로 물고기에게서만 알려졌다.
앤드루 슐츠 미국 조지아공대 박사과정생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왕립학회 인터페이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코끼리의 코가 이제까지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물을 머금어 몸에 뿌리는 빨대 이상의 기능을 한다”고 밝혔다.
높은 나무의 여린 잎을 딸 때 코끼리는 주름을 펴 코 길이를 25%까지 늘일 수 있다. 찰스 샤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애틀랜타 동물원에 사는 34살 난 암컷 코끼리 켈리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과 관찰을 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무엇보다 코끼리의 코가 다량의 물을 보관할 수 있는 해부구조를 지녔음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실험 결과 코끼리는 물을 빨아들일 때 콧구멍 주변의 근육을 얇게 수축해 콧구멍의 크기를 30% 확장함으로써 1.8m 길이의 코 전체에 물을 머금는 공간을 64%나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콧구멍 확장으로 코끼리 한 마리가 코에 보관할 수 있는 물은 최고 9ℓ에 이른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주 저자인 슐츠는 “하루에 200㎏ 가까운 먹이를 먹는 코끼리가 어떻게 코로 가벼운 먹이와 물을 먹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며 “연구 결과 코끼리 코는 확장이 가능한 여행용 가방 비슷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콧구멍으로 빨아들이는 속도 또한 엄청난 것으로 드러났다. 코끼리는 1초에 3ℓ의 물을 흡입할 수 있는데 초속 150m인 그 속도는 고속철도 속도와 비슷하며 사람이 재채기할 때 공기속도보다 30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코끼리의 콧구멍 크기는 10∼30㎜로 쥐의 100배 사람의 2배에 해당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코끼리가 코로 물을 빨아들이는 모습을 물에 작은 씨앗을 넣어 측정했다(a). 물을 빨아들일 때 콧구멍 주변의 근육이 수축해 콧구멍의 부피가 많이 늘어난다(b). 앤드루 슐츠 외 (2021) ‘왕립학회 인터페이스’ 제공
이런 흡입능력을 이용해 코끼리는 무얼 먹을까. 무겁고 큰 먹이는 코로 움켜쥔다. 코끼리 코의 끄트머리 두 곳은 마주 보는 손가락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어 물체를 손쉽게 움켜쥔다.
연구자들이 무를 깍두기처럼 썰어 실험해 본 결과 10개 이하이거나 한 변 길이 4㎝ 이하일 때는 코끝으로 집어먹었다. 무의 크기가 점차 커져도 코로 집어 먹었지만 개수가 10개를 넘어서자 무를 한군데 몰아놓고 훅 빨아들였다.
연구자들은 “진공청소기를 가동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무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름 1㎜ 이하인 곡물로 실험하자 코끼리는 흡입하지 않고 코끝으로 집어먹었다. 연구자들은 “콧속에 곡물 알갱이가 들러붙을까 봐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코끼리의 코 끄트머리는 두 개의 뾰족한 부위가 마주 보아 손가락 구실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흡입은 부서지기 쉽고 잡기 힘든 먹이를 먹는 데도 효과적이다. 연구자들은 토르티야 칩을 코끼리에 주로 어떻게 먹는지 관찰했다. 좀처럼 집기 힘든 칩을 코끼리는 흡입을 통해 칩을 조금도 부스러뜨리지 않은 채 입으로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물속과 밖 모두에서 유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코끼리의 능력은 로봇 개발에 응용될 전망이다. 슐츠는 “코끼리 코의 흡입과 부드럽게 움켜쥐는 능력은 로봇의 새로운 기능에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난한 사람에게 물과 공기를 전달하는 데도 코끼리 코는 유력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인용 논문: The Journal of Royal Society Interface, DOI: 10.1098/rsif.2021.021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