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사참갯지렁이의 턱 모습. 종종 화석으로 남을 만큼 강하며 끄트머리로 갈수록 강해진다. 길이는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케다 쿄지로 박사, 빈 공대 제공.
갯벌이나 바다 밑바닥에 사는 갯지렁이를 한낱 낚시미끼로 여긴다면 5억년의 진화 역사를 가볍게 보는 것이다. 갯지렁이의 턱과 이빨이 강철처럼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속성을 지닌 이유가 밝혀졌다.
갯지렁이는 먹이를 발견하면 마치 영화 ‘에이리언’의 외계 괴물처럼 입 밖으로 턱이 삐죽 튀어나온다. 갯지렁이에서 유일하게 단단한 부위인 턱은 낫 모양으로 끝이 날카로운데 중간에는 작은 톱니처럼 이빨이 나 있기도 하다.
곱사참갯지렁이. 오른쪽이 머리이며 끝 부분에 턱이 숨겨져 있다. 우리나라 경북과 전남에서 채집된 기록이 있다. 마르틴 귀만,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갯지렁이의 턱이 신물질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척추동물은 광물화한 칼슘으로 단단한 뼈를 형성하지만 무척추동물은 키틴질 껍데기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한다.
갯지렁이의 턱은 무척추동물 가운데서도 특이해 종종 수억년 동안 화석으로 남을 정도로 단단하다. 오스트리아 빈공대 연구자들은 마이크로 단층촬영 등 첨단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갯지렁이 턱이 일반적인 금속과 비슷한 속성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광물 금속 및 재료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강철로 된 공구와 비교한 갯지렁이 턱. 만드는 방법은 판이하지만 둘의 물성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케다 쿄지로 박사, 빈 공대 제공.
논문의 교신저자인 크리스티안 헬미크 교수는 “갯지렁이의 턱은 극도로 강해 쉽게 부서지지 않는데 척추동물의 뼈처럼 광물 입자는 전혀 들어있지 않고 대신 금속이 들어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갯지렁이 턱에 금니나 티타늄 인공관절처럼 순순한 금속 덩어리가 들어있다는 건 아니다”며 “갯지렁이는 마그네슘이나 아연 등을 개별 원자 형태로 단백질 구조에 결합시킨다”고 설명했다.
곱사참갯지렁이 암컷. 알을 잔뜩 품은 상태이다. 마르틴 귀만,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유용한 해양 모델동물로 쓰이는 곱사참갯지렁이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에 참여한 플로리안 라이블은 “이런 갯지렁이의 턱 구조를 이루는 방식은 5억년 전 처음 나온 이후 계속 유지될 정도로 성공적”이라며 “금속 이온이 단백질 사슬과 직접 결합하여 단백질 사슬들을 서로 단단히 묶어 주기 때문에 특별히 안정적인 단백질 망 형태를 낳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참갯지렁이 과의 흰이빨참갯지렁이. 김사흥,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연구자들은 이런 구조가 단백질 사슬이 서로 미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외부 변형에도 부러지거나 깨지지 않고 탄력 있게 원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하면서도 탄력 있는 것은 바로 금속의 특성이다.
막대한 에너지를 들이고 탄소를 배출하면서 산업적으로 만드는 금속을 갯지렁이는 훨씬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셈이다. 헬미크는 “생물학은 완전히 새로운 물질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며 “아마도 뛰어난 성능의 물질을 생물학적으로 생산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용 논문:
JOM, DOI: 10.1007/s11837-021-04702-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