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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르포] 22마리 사육곰, 뜬장 밖 ‘자유의 땅’으로 떠나던 날

등록 2022-03-16 14:56수정 2022-03-17 15:37

[애니멀피플] 동해시 사육곰 미 생크추어리 떠나던 날
10여년 사육되던 곰 22마리, 녹슨 철창 벗어나
미국 콜로라도 보호시설까지 50시간 긴 여정 시작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 외부로 옮겨와 크레이트로 옮기기 전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 외부로 옮겨와 크레이트로 옮기기 전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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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발바닥은 늦가을 낙엽만큼이나 푸석해보였다. 살짝 만져보니 예상보다 보드랍고 따듯했다. 생각처럼 크지 않았고 기대만큼 귀여웠다. 지난 십여년 평생을 녹슨 뜬장을 딛고 서야했던 사육곰의 고단한 네 발이 드디어 지상에 내려왔다.

지난 14일 오전 강원도 동해시 사육곰 농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간이 진료소가 차려지고, 곰사 앞으로 가림막이 설치됐다. 철제 절단기가 등장했고 1톤 트럭은 철제 크레이트(이동장)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여러 공공기관 야생동물 수의사와 안전요원, 시민단체 활동가, 취재진 등 50여 명이 현장을 분주히 움직였다. 전날부터 이어진 단식과 낯선 분위기에 곰들은 흥분한 듯 우리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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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헝’ 일갈 뒤 곰들은 잠들고…

“가장 열악한 환경 중 한 곳이었다.” 시민단체 동물자유연대가 2020년 동해시 농장의 곰 22마리를 구조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곰들은 이날 난생처음 녹슨 철제 뜬장을 벗어나 미국 콜로라도주 야생동물 생크추어리(TWAS·The Wild Animal Sanctuary)로 이주를 시작한다. 각각 2008~2013년 태어난 곰들은 원래라면 정부가 정한 도축가능 기준인 10살 이전까지는 철창을 벗어날 수 없다. 동해의 곰들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 국내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농장의 곰들이 무려 360마리나 된다.

14일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연구원 직원들이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을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강원도 동해시 곰사육장에서 마취시킨 곰을 들것에 실어 옮기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연구원 직원들이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을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강원도 동해시 곰사육장에서 마취시킨 곰을 들것에 실어 옮기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에요. 사람도 곰도 안전해야 합니다.” 곰들의 마취와 건강검진을 맡은 국립공원연구원 야생동물의료센터 양정진 센터장이 작업에 앞서 몇 번이고 강조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마취총이 준비됐다.

이날 구조 작업의 순서는 이랬다. 곰들을 마취한 뒤 10~15분 안에 간단한 건강검진과 상처 소독 등을 마치고 미리 준비한 340㎏ 중량의 거대 크레이트로 옮긴다. 크레이트 안 곰들은 5톤 무진동 차량 안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인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마취부터 크레이트 이동까지 마리당 40~50분, 구조에만 총 5시간이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

한 시간 반 여 사전준비가 완료되자 낮 12시. 드디어 주변이 조용해졌다. 충북대학교 정동혁 수의대 교수는 현장에 최소 인원만 남고 되도록 정적을 유지해달라고 부탁했다. 곰들을 잠재울 차례였다. 핑크색 깃이 달린 마취총이 가장 바깥쪽 곰사의 주인인 ‘동해 42’의 엉덩이에 박혔다. ‘크헝’.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곰의 우렁찬 비명이 흘러나왔다.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국립공원연구원 소속 수의사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 외부로 옮겨와 크레이트로 옮기기 전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국립공원연구원 소속 수의사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 외부로 옮겨와 크레이트로 옮기기 전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 외부로 옮겨와 크레이트에 넣기 위해 이동시키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 외부로 옮겨와 크레이트에 넣기 위해 이동시키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동해42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체중으로 마취제 양을 정하는데 이 곰들은 체중을 잰 적이 없잖아요. 적당 투여량을 모르니 일단 좀 더 기다려 봐야죠.”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은 개체마다 성격도 제각각이라 마취 시간도 다를 것이라 했다. 정말 그랬다. 구조 전부터 옆칸 곰에게 시비를 걸며 예민하게 굴던 동해42와 달리, 가림막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호기심을 보이던 ‘동해 29’는 궁둥이에 화살을 맞고도 순하게 서성이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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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의 대탈주…녹슨 철장 잘리다

두 마리 곰들이 완전히 마취된 것이 확인되자, 녹슨 철창이 굉음과 함께 오려졌다. 뜬장의 구조는 특이했다. 가장 중앙의 우리에만 사방 30cm가량의 출입구가 있을 뿐 각각의 곰사에는 먹이 투입구 외에 곰들이 나올만한 장치가 없었다. 곰사 사이에 칸막이가 있어 그쪽으로만 이동이 가능한 구조였다. 그야말로 감금 사육이 주목적인 시설이었다. 당일 현장에서 철제 절단기로 곰들이 드나들 입구를 뚫어야 했던 사연이다.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강원도 동해시 곰사육장에서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뜬장에서 마취된 곰을 꺼내기 위해 쇠창살을 자르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강원도 동해시 곰사육장에서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뜬장에서 마취된 곰을 꺼내기 위해 쇠창살을 자르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동해42와 동해29가 연달아 들것에 실려 간이 진료소에 뉘어졌다. 수컷인 동해42의 몸길이는 2미터가 안 돼 보였지만 몸무게는 80㎏는 족히 넘어 보였다. 곰이 진료대에 놓이자 마자 3~4명의 수의사들이 처치를 시작했다. 체온과 심박 측정을 하고, 그 사이 채혈과 분비물 채취가 이뤄졌다. 항생제, 구충제 등 기본적인 약물들이 주사되거나 다친 부위에 소독약이 발리는 등 간단한 치료도 이어졌다. 김영준 실장은 “기본적으로 곰이 잘 아픈 동물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열악한 환경에 살다보니 기본적으로 탈모나 피부병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에서 꺼내 크레이트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이동전 사육장 안의 곰.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에서 꺼내 크레이트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이동전 사육장 안의 곰.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 실장이 자세히 보라고 한 것은 곰의 발바닥이었다. “발을 한번 보세요. 여기 저기 갈라지고 각화돼 있죠. 자연의 곰은 저렇지 않아요.”

그는 곰들의 육체적 건강보다 정신 건강을 더 우려했다. “사육곰 농장 가보면 앞발이 잘린 곰들이 많습니다. 스트레스로 서로 옆칸 곰을 공격해서 그래요. 생각해보세요. 곰은 지능이 높은 동물입니다. 거의 미치지 않겠어요?” 실제로 이날 구조될 ‘동해45’도 앞 뒷발이 어릴적 공격을 받아 절단돼 있다.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 외부로 옮겨와 크레이트로 옮긴 후 외부에 정보와 이름 등을 붙이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동물자유연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 외부로 옮겨와 크레이트로 옮긴 후 외부에 정보와 이름 등을 붙이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곰들이 깨어나기 전 크레이트로 이동할 차례였다. 곰사는 비포장도로 끝 옥수수밭 곁에 지어져 차량이 접근할 수 없었다. 활동가 네 명이 곰을 들것에 실어 1톤 트럭 위에 실린 크레이트까지 옮겼다. 크레이트 안에서 각성제가 주사됐다. 정동혁 교수가 곰들의 혀를 자극하며 마취에서 깨어나게 했다. 곰이 의식을 되찾는 것이 확인되자 문이 닫혔다.

동해42의 크레이트에는 ‘찰리’, 동해29는 ‘루다’란 이름표가 부착됐다. 찰리는 2012년생으로 올해 10살, 루다는 2008년생 14살이다. 곰들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적어도 갇혔던 시간 이상만큼 새 이름으로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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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만 평 자연으로 돌아간다

동해 곰들이 가게 될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인근의 야생동물 생추어리(TWAS)는 1980년대 설립된 대표적인 야생동물 구조 비영리단체다. 세계 각국에서 서커스, 전시, 학대, 유기 등으로 고통받던 사자, 호랑이, 곰, 늑대 등의 대형 육식 동물을 구조해 넓은 면적의 자연 서식지에서 보호하고 있다. 22마리 곰들이 가게 될 곳은 이들이 최근에 새로 마련한 9700에이커(1180만여 평) 면적의 재활 공간이다.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에서 꺼내 크레이트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가 가장 바깥쪽 곰사에서 지내던 ‘동해29’를 살펴보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해 보호중이던 사육곰이 미국 콜로라도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시 사육장에서 꺼내 크레이트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가 가장 바깥쪽 곰사에서 지내던 ‘동해29’를 살펴보고 있다. 동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날 여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곰들은 14~15일 이틀 동안, 50여 시간에 걸쳐 이동한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 자연으로 돌아가 ‘새로운 자유’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번 구조를 19그램 웅담으로만 여겨지던 사육곰들이 반달가슴곰으로서 생명의 가치를 되찾은 것이라 설명했다. 조희경 대표는 “이번 구호는 환경부의 사육곰 종식 선언 이후 처음으로 사육곰이 세상으로 나온 사례다. 남아있는 360마리 농장곰들도 생태적인 삶을 누릴 국내 터전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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