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⑪
육식이 지구를 위협하는 상황…영화감독 황윤이 말하는 ‘채식 급식권’
육식이 지구를 위협하는 상황…영화감독 황윤이 말하는 ‘채식 급식권’
독립영화 감독이자 작가, 한 아이의 엄마인 황 감독은 지구 환경을 회복하고 인권, 동물권을 지키기 위해 채식 급식 선택권이 필수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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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지구를 구할 골든타임 황 감독은 그동안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와 책 ‘사랑할까 먹을까’(2019) 등에서 꾸준히 육식주의의 문제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짚어왔다. 그는 “엄마로서, 영화감독이며 작가로서, 그리고 지구가 망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시민으로서, (채식 급식 선택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무턱대고 보낸 편지는 아니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채식단체연대와 함께 전국 진보 교육감 후보들에게 ‘주 1회 채식 급식 제도화 및 채식 급식 선택권’을 골자로 질의서를 보냈다.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 선거가 끝나고 다시 교육청을 찾아가 채식 급식과 관련한 정책 제안을 했다. 여러 계절을 기다렸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황윤 감독과 아들 도영은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촬영을 위해 돼지농장을 취재하며 “단절된 세계와 연결됐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매일 육식 급식, 이대로 괜찮은가요? 8년. 황 감독이 도영이의 도시락을 싼 시간이다. 도영이는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금까지, 매일 아침 도시락을 가지고 집을 나선다. 황 감독은 2010년 구제역 파동 이후, 공장식 축산의 진실을 들여다본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찍으며 공장식 축산 농장과 동물 복지 농장을 취재했다. 아들 도영은 때때로 동물 복지 농장 취재에 동행했다. 도영이는 당시 강원도 산골의 한 농장에서 만난 돼지 ‘돈수’를 여전히 기억한다.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다가와 도영이가 건네는 볏짚과 야생초를 맛있게 씹어먹던 돈수와의 추억은 황 감독에게도, 도영에게도 삶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마트 육류 진열대에 단정하게 포장되어 놓여 있는 살코기 조각들이 사실은 농장에서 눈을 맞추고 쓰다듬던 돼지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됐다. 심지어 시중에 유통되는 고기의 대부분은 돈수가 살던 동물복지 농장 같은 곳이 아닌, 강제로 꼬리가 잘리고 어미 돼지는 감금틀에 갇히고 분변이 질퍽 되는 ‘공장’에서 길러진 돼지를 도축한 것이다. 아이는 그토록 좋아하던 돈가스를 마음으로부터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무튼 비건’의 김한민 작가가 말하듯 “단절됐던 세계가 연결된 것”이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에서 채식을 시작한 도영이에게 최근엔 채식의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도영이는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며 비건 지향을 하고 있다. 미래 세대인 어린이, 청소년에게 기후 위기는 생존이 걸린 다급한 문제다. (관련 기사▶▶ “지금 청소년은 ‘멸종위기 세대’…어른들은 뭐하는 거죠?”)
스웨덴 한 학교의 채식 급식 밥상. 위키미디어커먼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황 감독은 아이의 선택을 지지하기 위해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타 지역에 출장을 다녀올 때면 시외버스에서 몸을 내려 새벽 1~2시에 자리에 누웠다 4~5시간 자고 일어나 부랴부랴 도시락을 싸곤 한다. 황 감독은 “다양한 음식을 먹이고 싶지만 채소볶음이나 두부, 버섯 볶음이 단골 반찬이다. 튀기거나 구운 건 먹을 때 눅눅해져 있을 테니 싸주지도 못하고, 어떤 음식은 여름에 상할 염려도 있어서 제한이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채식 요리는 채소 자체의 단맛과 고유의 맛을 살려 하면 정말 맛있다. 요리를 즐기는 편인데도 이게 매일 해야 하는 의무가 되고, 부당한 제도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저에게도 스트레스가 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인권문제로서의 채식 급식 선택권 △기후 위기와 아이들의 생존권 △사람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육식 산업의 폐해 등을 꼽는다.
개인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실천은 채식 위주의 식단과 음식쓰레기 줄이기이다. 박미향 기자
육식의 폐해는 왜 가르치지 않는가 이는 호주 국립기후보건센터가 최근 예측한 “기후 변화로 인한 2050년 기후 난민 10억 명”에서 어느 누가 특별히 비켜나긴 어려울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10일(현지 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기후행동네트워크 등이 발표한 ‘기후위기대응지수(CCPI) 2020’에 따르면 한국은 61개 국가 가운데 58위다. OECD 국가 가운데는 미국(61위)에 이은 최하위다. 기상청이 2012년 발표한 ‘한반도 기후 전망 보고서’도 기후 위기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2050년에 한국은 아열대 기후에 가깝게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황 감독은 개인의 실천만으로는 앞으로 닥칠 파국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거대 자본에 의해 굴러가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중단시키기 어려운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게임 중독과 스마트폰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 탄산음료나 가공식품의 유해성에 대해 교육은 하는데 육식의 폐해는 왜 아무도 가르치지 않냐”며 “어린이와 청소년의 신체, 정신 건강에 위협적인 요인들에 대해 학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는 이미 단체 급식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프랑스는 11월1일부터 전국 모든 공립 유치원과 학교에서 주 1회 채식을 의무화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채식 기반 급식을 강화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미국 뉴욕의 모든 공립학교에서는 올가을부터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시작했다. 뉴욕시 정부는 지난해 봄 브루클린 지역 15개 학교에서 이를 시범 운영한 뒤 반응이 좋아 시 전체로 확대했다고 밝혔다. 포르투갈에선 2017년 9월부터 공립학교를 넘어 대학, 병원, 수감시설 등 단체 급식이 이뤄지는 공공기관 식당에서 최소 하루 한 가지 이상의 채식 메뉴 제공을 법적으로 정했다. 독일은 군내 내 식단에 채식 선택이 포함되어 있다. _______
‘1인1닭’하던 청년, 군대 채식 급식권 주장하는 이유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월12일에는 내년 초 입대를 앞둔 정태현씨 등 진정인 4명과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국내 내 채식 급식 선택권을 보장하라며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기자 회견을 열었다. 태현씨를 비롯한 진정인 4명은 동물권, 건강, 환경 문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비건을 실천한다. 기자 회견에 앞선 지난 10월25일 애피와 만난 정태현씨는 “원래는 저도 ‘1인1닭’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농장동물이 어떻게 사육되고 도살되는지, 우유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게 되면서 비건이 됐다”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의 12월 급식 식단표. 형광색은 육류 및 가금류가 포함된 것, 파란색은 생선, 연두색은 계란과 유제품이 포함된 음식이다.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 감독은 정태현씨를 보며 자꾸만 앞으로 10년 후의 도영을 생각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지금이 (비건 도시락을 싼지) 8년째인데 유치원 3년,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만약 대학을 간다면 대학 4년, 그리고 군대… 이러면 20년이 넘는다. 20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기본권이 박탈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앞으로 30년 후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을 맞닥뜨리지 않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기후 위기 때문에 청소년과 어린이는 어른이 망친 이 세계에서 멸종위기에 처해 있어요. 이번 세기 안에 파국이 올 텐데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한다고요? 아무것도 안 한다고요? 이건 아니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죠.” 이런 마음이 모인 덕분인지 세상이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취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황윤 감독이 달뜬 목소리를 소식을 전해왔다. 도영이가 다니는 지역의 교육청에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전북 교육청은 혁신학교부터 우선적으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확인하고, 단위 학교들이 채식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도록 권고하겠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2020년 1월부터 채식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내 식당의 식단을 개비하고, 영양교사, 영양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는 절차를 이행할 계획이다.
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16일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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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감독이 비건 메뉴로 저녁 식사를 마련하고 있다.
고기가 없어도 풍성했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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