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 타이 국립공원의 한센병에 걸린 침팬지 모습. 타이 침팬지 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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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야생 침팬지에서 한센병이 돌고 있음이 확인됐다. 아프리카에서 사람 이외의 야생동물이 한센병에 걸린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킴벌리 호킹스 영국 엑시터대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14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이 사실을 보고하고 “(한센병을 일으키는) 나균은 사람과의 접촉 또는 다른 알려지지 않은 환경 요인에 의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야생동물 사이에 번지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은 나균의 주요 숙주로 알려져 왔으나 미주의 아홉띠아르마딜로와 영국의 붉은다람쥐가 사람에서 흘러넘친 나균에 감염되기도 했고 동물원의 침팬지에서도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호킹스 박사는 “야생 침팬지는 연구가 많이 이뤄지는 동물인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놀랍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사람에서 퍼진 나균은 미주의 아홉띠아르마딜로를 감염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붉은다람쥐도 나균의 숙주이다. 한스 스티글리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의 칸탄헤스 국립공원과 코트디부아르의 타이 국립공원 두 곳의 야생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한센병 증상이 출현하는 것을 보고 사체 부검과 배설물의 디엔에이(DNA) 분석으로 나균 감염을 확인했다. 호킹스 박사는 “침팬지의 증상은 종양과 손가락 뒤틀림 등 사람의 한센병 말기에 나타나는 것과 매우 비슷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칸탄헤스 국립공원에서 무인카메라로 침팬지를 관찰했는데 2015~2019년 사이 촬영한 사진 가운데 241장에서 한센병 증상을 보았고 배설물의 유전자 검사로 이를 확인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
타이 국립공원의 침팬지들은 사람에 익숙해 연구자들이 직접 관찰할 수 있었는데 수컷 성체인 우드스톡의 얼굴 종양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배설물로 감염을 확인했고 암컷 조라도 같은 증상을 보이다 표범의 공격으로 죽었는데 부검에서 나균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들에서 나온 나균이 인간과 접촉해서 전염됐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샬럿 어밴지 미국 콜로라도대 박사는 “각각의 침팬지 집단에서 검출된 나균은 서로 계통이 다르며 또 사람에서 나온 나균 가운데서도 매우 드문 계통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아프리카의 나균은 어디서 왔을까. 연구자들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사람과 다른 동물 그리고 환경 요인까지 포함해 감염이 어떻게 이뤄지나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연구자들은 한센병은 반복된 밀접 접촉 때 코와 기도로 에어로졸이 전파돼야 감염이 일어나 야생환경과 맞지 않는 데다 한센병 약물에 대한 내성이 형성되지 않아 근래에 사람으로부터 전파됐을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들었다.
호킹스 박사는 “사람과 침팬지가 환경을 공유하는 기니비사우에서 사람 전파 가능성이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침팬지를 죽이거나 먹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파비안 린더츠 독일 로버트 코흐 연구소 교수는 “코트디부아르 침팬지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어 감염원이 다른 동물이나 진드기, 물에 사는 박테리아 등 환경 요인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나균이 인간이 아닌 다른 야생의 저수지에 잠복할 수 있다”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며 “서아프리카 침팬지가 위급한 멸종위기종이어서 한센병 감염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한센병은 4000년 전 인골에서 흔적이 발견될 만큼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병의 하나로 몇달에서 30년에 이르는 오랜 잠복기(평균 5년)를 거쳐 경증에서 감각 상실과 신체 부위 손상, 장애로 이어진다. 서아프리카 등 세계에서 해마다 21만건이 발생하고 있다.
인용 논문:
Nature, DOI: 10.1038/s41586-021-03968-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