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8일 은영 활동가와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동물해방컨퍼런스(ALC)에 참가했다. 사진은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행진하며 동물해방 구호를 외치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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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그런 건 돈 많은 애들이나 하는 거야. 육식이 잘못됐다고 얘기할 게 아니라 축산업이라는 구조에 저항을 해야지.”
2018년 말, 내가 동물권이라는 문제를 알고 난 뒤 탈육식을 하자마자 들은 말이다. 당시 나는 그저 다큐멘터리 몇 개를 보았을 뿐 어떤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고통받는 동물의 존재는 지워버리고 오직 인간의 계급만 얘기하며 본인은 계속 값싼 ‘고기’를 먹을 것이라 비웃는 그의 냉소적인 태도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속 시원하게 반박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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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명의 활동가가 한 자리에 모이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지난 9월28일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가장 큰 도계장 앞에서 수백명의 활동가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무려 11명의 활동가가 도살장 입구에 몸을 결박한 채 시민불복종을 진행 중이었고, 동시에 몇 명의 닭이 죽음 직전에서 구조되어 안전한 곳으로 이송되고 있었다. 그동안 꿈 꿔오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바로 축산업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열린 동물해방컨퍼런스(Animal Liberation Conference·ALC)였다.
동물해방컨퍼런스는 각국에서 모인 천 여명의 풀뿌리 활동가들이 네트워크 형성, 동물권 운동에 대한 트레이닝, 동물을 위한 담대한 액션을 7일간 진행한다.
동물해방컨퍼런스는 국제 동물권운동가 조직 디엑스이(DxE·Direct Action Everywhere)가 주최하는 연례행사다. 각국에서 모인 천 여명의 풀뿌리 활동가들이 모여 네트워크 형성, 동물권 운동에 대한 트레이닝, 동물을 위한 담대한 액션을 7일간 진행한다. 초반 나흘 간은 다양한 패널이 참가한 발표와 대담, 시민불복종 트레이닝 등이 진행되고 이후 3일 간은 행사의 대미를 장식할 대규모 시민불복종 시위가 펼쳐진다.
동물해방컨퍼런스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진행되기에 주로 북미 지역 활동가들의 참가 비율이 높지만 중남미, 중동,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 지역의 풀뿌리 활동가들이 결집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나와 은영 활동가는 디엑스이 코리아가 진행한 한국의 동물권 시민불복종 경험을 공유해달라는 초청을 받아 이 자리에 패널로 참가하게 됐다. 안 그래도 2019년 이 행사에 참여했던 동료 활동가들에게 현장을 전해 듣긴 했지만 역시 직접 경험하니 듣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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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에게 정의와 자유를!”
행사 이틀째인 9월25일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 미션 돌로레스 공원에서 시작해 도심을 한 바퀴 돌아 샌프란시스코 시청까지 약 8㎞의 거리를 물살이, 닭, 소, 돼지의 조형물을 들고 동물권 행진을 벌였던 것이다. “모든 동물에게 정의와 자유를!” 동물권리장전 깃발을 내건 행진 오토바이와 8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외치는 구호로 대도시의 주말은 그야말로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9월25일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벌인 동물권행진.
도시의 시민들은 창문을 열고 우리를 내다봤다.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외치며 힘을 보태주었다. 이 행진이 무엇인지 묻는 행인들에게는 활동을 소개하고, 즉석에서 활동 참여를 권하기도 했다.
그 중 동물 인형을 가슴에 안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릴 쳐다보던 한 어린이의 표정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는 내가 목이 쉬어라 외친 동물해방 구호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소리 지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동물들이 큰 위험에 처해있구나 생각하지 않았을까.
행진의 하이라이트는 ‘비건 워싱’(기업이 동물복지, 채식 친화 이미지을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미국의 대표적인 유기농 전문 마켓 ‘홀푸드’(Whole foods) 매장 앞에서의 퍼포먼스였다. 우리는 그들의 기만적인 마케팅을 소리높여 비판하고 모두가 동시에 쓰러져 죽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들이 숨기는 동물들의 죽음을 우리의 몸으로 직접 드러낸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죽어간 동물들의 삶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깔끔한 도심에 가려진 그들의 비명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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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노동자 수지는 왜…
최종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시청이었다. 시청 앞에서 활동가들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돌아가며 연설을 했다. 은영 활동가의 한국말이 시청 앞에 울려퍼졌다. “동물을 감금하고 학살하는 이 산업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명백한 부정의입니다. 우리가 끊어내고자 하는 종차별의 폭력성은 우리들의 용기로 종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진의 하이라이트는 ‘비건 워싱’으로 악명 높은 미국의 대표적인 유기농 전문 마켓 ‘홀푸드’ 매장 앞에서의 퍼포먼스였다.
광장의 스크린에 지난 2019년 10월 경기도 용인시 도살장 락다운 당시의 영상이 재생됐다. 은영은 그간의 경험들이 떠올랐는지 눈물을 흘렸다. 서로의 언어를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활동가들은 서로를 북돋아 주며 포옹했다. 서로의 진심은 이미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뜨거운 행진과 퍼포먼스에 앞서 우리를 하나로 다진 건 앞선 대담 프로그램들이었다. 올해의 기조는 ‘모두를 위한 해방’이었다. 흔히 동물권 운동은 돈 많은 백인들의 운동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편견을 부수듯 정말 다양한 연령, 언어, 피부색, 성별 정체성, 장애 등 각자 고유한 삶의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이 함께 했다.
나는 ‘DxE 챕터를 시작한 것이 인생을 바꾼 이유’라는 세션에 패널로 참가해 그동안 디엑스이 활동에 참여하며 느낀 것들을 공유했다.
멕시코 출신의 수지는 생계를 위해 수년간 도살장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동물들을 수없이 접했지만 기업은 노동자들의 침묵만 강요했다. 수지는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끝없이 술을 마셨다. 점점 폭력에 무뎌지던 어느 날, 수지는 더이상 이 폭력의 굴레를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수지는 그 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마주하며 디엑스이 활동에 합류했다.
수지는 현재 자신의 경험과 언어 능력을 살려 히스패닉계가 대부분인 도살장 노동자들의 내부고발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수지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동물권 활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더욱 명확히 제시했다. 바로 모든 억압이 ‘동물권’이라는 이름 아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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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시라, 도계장 점거
동물해방컨퍼런스는 이 시대 가장 급진적인 만남의 장소였다. 도살장의 동물들과 노동자들을 만나고, 전 세계 다양한 배경의 활동가들이 장벽을 넘어 서로를 만났다. 나는 변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활동가들의 존재에 울컥했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이 만남들이 만들어낼 화학 작용, 그로 인해 변화할 동물해방 사회를 기대하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활동가 800여 명이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누비며 벌인 동물권행진.
뜨거운 현장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행사의 대미는 현장에서 펼쳐진 대규모 시민불복종이었다. 대담과 행진, 그 다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캘리포니아 최대 도계장과 주지사 자택을 점거한 채 온몸을 사슬로 걸어묶은 활동가들의 모습이었다.
* 다음 회차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최대 도계장과 주지사 자택을 점거한 디엑스이 활동가들의 모습을 전해드립니다.
글 섬나리 디엑스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 사진 디엑스이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