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기 편하게 낚싯줄로 나뭇가지를 묶어 직박구리 둥지를 끌어내린 모습. 새끼를 포기할 수 없는 어미가 먹이를 먹이지만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갓 태어난 새끼는 결국 일사병으로 죽기도 한다.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에서 한 지역 사진가가 촬영해 제보했다.
과거 조류를 촬영하는 사진인들은 새를 관찰하고 이해하며, 새와 교감하려고 노력했다. 사진 한장을 찍기 위해 커다란 인내심과 기다림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자연스러운 맹금류의 모습을 촬영한다 치자. 맹금류는 사냥을 위해 주변 환경이 건강하고 사냥감이 많은 곳에서 월동하므로, 오랜 관찰을 통해 그들의 이동 동선과 일정한 형태의 행동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초보자는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맹금류를 촬영하기 위해 팔당호 얼음판 위에 물고기를 던져 놓았다. 때론 돼지고기도 동원된다. 한 새 사진가가 촬영해 제보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일부 사진인들이 맹금류가 찾아오는 도래지라면 어김없이 돼지고기와 생선을 지천에 뿌려 놓는다. 대형 맹금류 사진을 연출하기 위해 꿩을 묶어 놓고 유인하거나, 소형 맹금류 촬영에 참새까지 동원하는 등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가 거리낌 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사진을 찍기 위한 미끼로 먹이 주는 것을 선심을 쓰는 것으로 치부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맹금류의 야생성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교란한다.
경기도 가평군 현리의 긴꼬리딱새 둥지는 몰지각한 사진가가 주변의 모든 나뭇가지를 잘라내 훤히 드러나 버렸다. 어미와 새끼는 포식자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정상적인 긴꼬리딱새의 둥지. 잎이 무성하고 그늘진 곳에 둥지를 만든다.
자연과 함께해야 할 촬영이 줄곧 학대로 이어지는 최근의 세태가 안타깝다. 접근해서는 안 될 장소에 카메라를 들이대어 위협하는 행위는 오히려 진정한 생태 사진 촬영을 어렵게 만든다. 처음 몇 번은 만족스러운 촬영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런 행태가 반복되면 사람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야생조류가 서식지를 포기하고 회피하게 된다. 최적의 서식환경을 선택한 새들에게서 집을 빼앗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일부 사진가가 꾀꼬리 둥지 주변의 가림막 구실을 하는 나뭇가지를 잘라내 갓 태어난 새끼들이 주변에 고스란히 노출됐다(왼쪽). 5마리이던 새끼는 2마리로 줄었고 비를 피하지 못해 흠뻑 젖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서 한 사진가가 촬영해 제보했다.
일부 사진인들이 한장의 사진을 위해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면 자연을 아끼는 마음으로 탐조에 나서는 사진인들이 야생 본연의 모습을 촬영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한장의 사진이 뭐길래 생명의 존엄성을 망각하고 그들 생활에 개입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잘못된 일인 줄 모르는 일부 사진인들은 학대나 다름없는 사진 촬영의 결과물을 경쟁하듯 인터넷에 올린다. 이들의 자랑은 언제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사진은 사진인의 인격을 보여준다. 사진을 보면 어떤 방법으로 촬영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영문도 모르고 땡볕에 노출된 백로 새끼들. 둥지 옆에 잘려나간 나뭇가지들이 보인다. 강원도 춘천에서 한 사진가가 촬영해 제보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다. 수평적인 관계로 바라보아야 한다. 생명을 하찮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유독 조류 탐조와 촬영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동물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서식지가 보전되고 건강한 조류 사진 촬영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관찰하고 함부로 자연질서에 개입하지 않을 때 즐거운 탐조가 가능하며 더욱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촬영하고자 노력한다면 누구에게나 결정적 순간의 촬영 기회가 온다. 앞으로의 탐조를 위한 생태관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동물 학대 행위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기도 김포 장릉의 단풍나무 줄기에 돌아가며 누군가 상처를 냈다. 딱따구리나 흰머리오목눈이 등 수액을 찾는 새들을 촬영하기 위해 벌인 짓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둥지 훼손 사진을 보면 천적으로부터 둥지를 은폐하기 위한 주변 가지를 모조리 쳐내기도 하고, 구멍에 둥지를 트는 새들의 둥지 입구를 막아 먹이를 물고 와 어찌할 줄 모르는 어미 새를 찍기도 하고, 비닐하우스 안에 새를 가두어 기르며 기상천외한 연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새를 학대하며 촬영하는 행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진 한장이 뭐길래.
필자에게 조류 학대 사진을 제보하는 사진인들이 종종 있다. 앞으로 이런 사진을 발췌하여 조류 학대 사진 모음집을 공개하자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일부 사진인들의 자성과 건전한 사진문화 정착으로 동물 학대 사진풍토가 없어지는 것이 우선이다. 머지않아 여름 철새들이 번식을 위해 한반도를 찾아온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