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7일 인천 강화도 평야에 내려앉은 쇠기러기 무리에서 독특한 깃털 색을 지닌 ‘황기러기’ 한 마리를 발견했다.
쇠기러기는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나기를 하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다. 지난 11월17일 인천 강화도의 드넓은 평야에는 1만여 마리의 쇠기러기가 도착해 있었다. 그 가운데 먼발치에서도 눈에 띄는 황기러기 한 마리를 만났다.
일반적인 쇠기러기는 몸 전체가 암갈색이다. 몸 아랫면은 엷은 회갈색에 불규칙한 검은색 가로줄 무늬가 있다. 이마가 선명한 흰색을 띠어서 큰기러기와 쉽게 구별된다. 그런데 이 기러기는 다른 녀석들과는 확연히 다른 옅은 갈색 깃털을 지니고 있었다.
황기러기는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수많은 쇠기러기 무리 속에서 황기러기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 파악한 쇠기러기의 습성을 토대로 처음 목격한 지역 인근을 수시로 관찰했다. 그렇게 황기러기를 만나려는 노력 끝에 11월22일 닷새 만에 다시 기러기를 관찰할 수 있었다.
깃털 색이 다른 쇠기러기를 만난 게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18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에서 관찰한 쇠기러기는 흰색에 가까운 회색을 띠고 있었고, 지난해 11월1일 강화도 교동면 무학리에서 만난 쇠기러기 또한 매우 흐린 갈색 깃털을 지니고 있었다.
지난해 10월18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관찰한 백변종 쇠기러기. 검은색 무늬는 회색으로 변했고, 본래 회갈색 띠는 몸색이 흐린 회색으로 관찰됐다.
지난해 11월1일 인천 강화도에서 만난 다른 백변종 쇠기러기. 검은색 무늬가 사라지고 회갈색 깃털이 흰색과 흐린 갈색으로 혼합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지난해 11월1일 목격한 백변종 쇠기러기(앞쪽 날개 편 개체) 뒤로 어린 쇠기러기가 따라서 날고 있다.
이렇게 깃털 색이 다른 경우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색증(알비노·Albinism)은 선천적으로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털이 희고, 눈과 피부는 혈액이 비쳐 붉게 보인다. 또 지난해 파주와 강화도에서 만났던 쇠기러기처럼 깃털 색이 옅지만, 눈과 부리의 색이 다른 개체 같은 경우는 백변종(루시즘·Leucism)으로 분류한다.
황색 기러기가 논 바닥의 금빛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른 쇠기러기 무리 안에서도 눈에 띄는 황색 기러기.
백변종 또한 백색증과 같이 유전적 돌연변이 의해 발생하지만, 백색증과 달리 털이나 깃털만 하얘지거나 희미해지고, 불규칙한 얼룩을 보인다. 대체로 무늬가 있는 동물은 무늬가 아예 없지지지 않고 색이 옅어지는 편이며 정상색 체모에서 일부분만 흰색을 띠기도 한다. 백변종은 100만 마리 중 한 마리꼴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흰기러기는 아메리카 툰드라 지대에서 번식하고 멕시코 만, 캘리포니아 등지와 중국·일본에서 월동한다. 한국에는 드물게 찾아온다.
그러나 이번에 강화도에서 만난 황기러기는 깃털이 아예 하얘진 것도 아니라서 마치 새로운 종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부드럽고 옅은 황색 깃털이 쇠기러기의 외모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매우 희귀한 기러기를 만난 것이다.
조류의 깃색 변이를 연구해온 국립생태원 이상연 연구원에게 문의하니, 이번에 관찰한 기러기는 백변종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받았다. 백변종은 정상 개체의 흰색 부분 이외에도 완연한 흰색 깃털이 있어야 하나 이 기러기는 대체로 옅은 갈색을 띠어, 다른 깃색 변이 증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깃털이 햇빛에 의해 빠르게 표백되어 밝은 색상을 내는 갈색화(Brown)와 색소가 적어져 발생하는 희석화(Dilution) 등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황기러기는 부부로 추정되는 쇠기러기 곁에서 함께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깃색 변이 개체는 사람 눈에 띄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희귀한 증상으로 여겨지지만, 생각보다 조류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증상이다. 특히 집단으로 서식하는 종이나 텃새류에서 발생 빈도가 높다. (‘한국의 조류 깃털 색 변이’, 한국조류학회지 2016년) 원인으로는 선천적인 유전적 돌연변이, 후천적인 연령 요인, 환경오염 물질, 기생충, 먹이원 등으로 다양하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깃색 변이에 대해 많이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다른 기러기가 접근하자 심기가 불편한 황기러기 부부가 함께 위협 경고를 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깃털 색이 다르면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소외를 당하여 외톨이 신세가 되기도 하는데, 황기러기는 항상 앞줄에서 부부로 보이는 다른 개체와 함께 행동했다. 낯선 색을 지녔다고 ‘왕따’를 당하기는커녕 다른 쇠기러기 사이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30여년 탐조생활 가운데서도 이런 황기러기를 관찰하는 것은 처음이다. 우아하고 멋진 자태로 강화도를 찾아준 쇠기러기가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쇠기러기의 ‘쇠’ 자는 작다는 의미이다. 쇠물닭, 쇠황조롱이, 쇠오리, 쇠유리새, 쇠부엉이 등 같은 과의 종중에서 작은 종을 의미한다. 쇠기러기는 항상 무리를 이루어 행동하며 경계심이 강하다. 몸길이는 약 72㎝ 정도 된다. 유라시아, 북아메리카, 그린란드의 북극권에서 번식하고 유럽 중부, 중국, 한국, 일본, 북아메리카 중부에서 월동한다.
지난 10월13일 경기 김포시 북변동에서는 큰기러기 무리 속에서 백변종 큰기러기를 목격하기도 했다. 색소 결핍은 깃털에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보통 큰 무리를 이뤄서 월동한다. 국내 월동 무리는 약 7만~10만에 이른다. 9월 하순부터 날아와 4월 초순까지 머문다. 강원도 철원평야는 국내 월동지 가운데서도 쇠기러기가 단독으로 집단 월동을 하는 지역이다. 그 외 지역은 큰기러기와 섞여서 월동하는 경우가 많다. 쇠기러기는 뭍을 좋아하고, 큰기러기는 물가를 좋아한다. 쇠기러기를 만나고 싶다면 물 고인 습지보다는 수확이 끝난 논을 찾는 것이 좋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