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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말썽꾸러기 라쿤 이삿날…“여기선 덜 심심하길 빌게”

등록 2022-03-04 16:30수정 2022-03-04 22:16

[애니멀피플] 라쿤 ‘로켓’ 새 보금자리 가던 날
유기된 뒤 보호처 마땅치 않아 1년 반 ‘하숙생 생활’
“야생동물은 야생에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 잊지말길”
2020년 가을 서울시 마포구에서 구조된 라쿤 ‘로켓’이가 그동안 동물단체 카라 더불어숨센터 옥상에서 지내다 지난 3일 새 보금자리로 이주했다.
2020년 가을 서울시 마포구에서 구조된 라쿤 ‘로켓’이가 그동안 동물단체 카라 더불어숨센터 옥상에서 지내다 지난 3일 새 보금자리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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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너 여기서도 말썽부리면 안된다?” 이미 어느 곳이 탈출이 쉬울지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는 라쿤에게 카라 고현선 정책팀 활동가가 말했다. 라쿤은 새 보금자리가 궁금한지 여러 구조물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건물 옥상에 마련된 임시 보호소에 웅크리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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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성이 ‘말썽’이 된 라쿤

3월3일 오전 라쿤 ‘로켓’이 1년 반만의 하숙생 생활을 마치고 경기도 남양주시 새 보호처로 이동했다. 로켓은 유실·유기동물이었다. 동물단체 카라가 2020년 늦가을, 서울시 마포구에서 구조할 당시 중성화가 되어 있었다. 일반 가정이든 야생동물카페든 보호자가 있는 동물이었단 뜻이었다.

하루 활동반경이 20㎞에 달하는 활동력의 라쿤은 구조 첫날부터 시시티브이를 파손(왼쪽)하고, 두 차례나 탈출을 감행했다. 카라 제공
하루 활동반경이 20㎞에 달하는 활동력의 라쿤은 구조 첫날부터 시시티브이를 파손(왼쪽)하고, 두 차례나 탈출을 감행했다. 카라 제공

구조 당시 로켓은 공원 인근 주택가에 출연해 길고양이 밥을 훔쳐먹고, 가정집 창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동을 피우다 포획됐다. 일반적으로 유기 야생동물이 발생하면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로 이송돼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 공고 기간을 거쳐 보호자에게 반환되거나 재분양 혹은 안락사 된다. 로켓은 공고 기간이 지나서도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아 카라의 보호를 받게 됐다.

고현선 활동가는 라쿤이 손을 아주 잘 쓰는 영리한 동물이라고 했다. “말썽이 많았어요. 저희도 라쿤을 보호할 시설이 마땅치 않아 카라 더불어숨센터 옥상을 개조해서 임시 보호소를 만들어줬거든요. 구조한 첫날 시시티브이(CCTV)를 고장 냈고, 갑자기 활동가들 공격하기도 했어요. 탈출도 두 번 정도 했죠.”

라쿤이 행동풍부화를 위해 마련된 사다리, 계단 등을 오르내리며 주변 환경을 살피고 있다.
라쿤이 행동풍부화를 위해 마련된 사다리, 계단 등을 오르내리며 주변 환경을 살피고 있다.

그럴 만도 했다. 활동가의 설명에 따르면, 라쿤(아메리카 너구리)은 하루 활동반경이 20㎞에 이르는 활동적인 동물이다. 야생에서는 물가 주변에 살고, 주로 게, 가재, 개구리, 작은 설치류 등을 사냥한다. 겨울엔 주로 땅속에 굴을 파거나 나무 빈 속에 들어가는 습성을 갖고 있지만 로켓이 고향인 북미 지역에서 잡혀 온 이후로는 이런 생태에 맞는 환경이 제공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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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5~15마리 버려져

라쿤의 이런 처지는 로켓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0년대부터 야생동물카페, 체험동물원이 늘어나며 동물유기, 안전사고, 동물복지 저해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관련기사: 스스로 제 털 뽑은 앵무새…동물 ‘체험’ 꼭 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야생동물이 ‘이색 반려동물’로 받아들여지며 온라인 카페, 블로그, 애완동물 숍에서는 라쿤, 사막여우, 기니피그 등의 분양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종이 아닌 외래 야생생물의 수입과 민간 분양에 대한 규제는 없는 형편이라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생동물이 ‘이색 반려동물’로 받아 들여지며 온라인 카페, 블로그, 애완동물 숍에서는 라쿤, 사막여우, 기니피그 등의 분양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화면 갈무리
야생동물이 ‘이색 반려동물’로 받아 들여지며 온라인 카페, 블로그, 애완동물 숍에서는 라쿤, 사막여우, 기니피그 등의 분양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화면 갈무리

최근 3년간 외래 야생동물의 유기는 2019년 204마리, 2020년 309마리, 2021년 301마리로 꾸준히 늘어났다. 이 가운데 라쿤은 연간 5~15마리 정도를 차지한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 유기동물 공고 갈무리
최근 3년간 외래 야생동물의 유기는 2019년 204마리, 2020년 309마리, 2021년 301마리로 꾸준히 늘어났다. 이 가운데 라쿤은 연간 5~15마리 정도를 차지한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 유기동물 공고 갈무리

유기의 정확한 경로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외래 야생동물의 유기는 2019년 204마리, 2020년 309마리, 2021년 301마리로 꾸준히 늘어났다. 이 가운데 라쿤은 연간 5~15마리 정도를 차지한다.

농림축산부는 지난달 23일 로켓과 같이 유기된 뒤 갈 곳 없는 외래 야생동물 4종(라쿤, 여우, 미어캣, 프레리독)에 대해서는 광역지자체 야생동물보호센터에서 임시보호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관할구역에서 구조된 야생동물들은 2023년 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에 짓고 있는 ‘외래 야생동물 보호시설’이 마련될 때까지 2년간 이곳에서 보호받게 된다.

서울 도봉구의 체험동물원의 라쿤이 전시실 안 구조물 위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서울 도봉구의 체험동물원의 라쿤이 전시실 안 구조물 위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생물다양성과 담당자는 “야생동물은 서식 특성이 반려동물과 달라 호기심에 키우다가도 유기될 가능성이 있다. 무채임한 방치, 유기를 막기 위해 라쿤의 경우는 반려견 동물등록처럼 체내 칩을 삽입하는 시범사업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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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키우지 말자”

로켓이 새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불과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멘트 바닥에서 지내느라 배변 패드를 사용했지만, 흙바닥인 새 사육장에 오자 익숙한 패드가 아닌 모래를 찾아 배설했다. 간식을 주자 익숙한 듯 물그릇으로 가져가 씻어서 입으로 가져갔다.(라쿤은 먹이를 물에 씻어먹는 습성이 있다.) 행동풍부화를 위해 마련된 나무 조형물을 타고 오르고, 군데군데 설치한 터널과 계단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그동안 시멘트 바닥에서 지내던 로켓은 새 보금자리에 들어서자 익숙한 듯 모래에 배변하고 먹이를 물에 씻는 행동을 보였다.
그동안 시멘트 바닥에서 지내던 로켓은 새 보금자리에 들어서자 익숙한 듯 모래에 배변하고 먹이를 물에 씻는 행동을 보였다.

“다행이에요. 새 집이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 씩 사육장을 방문해 로켓의 적응을 살필 예정이다. 고현선 활동가는 “인간의 주거환경이 야생동물의 생태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야생동물은 야생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카라는 라쿤 로켓뿐 아니라 개도살장, 식용개 농장 등에서 구조한 염소, 칠면조, 기러기, 미니피그 등을 이곳 위탁처에서 보호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이 동물들이 여생을 다할 때까지 지낼 ‘농장동물 생크추어리’ 건립 계획을 밝히고 모금을 진행 중이다.

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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