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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급박했던 새벽 출동…폐양어장 ‘고양이 잔혹 살해’ 사건의 전말

등록 2022-03-30 15:20수정 2022-03-30 19:28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포항 폐양어장에 고양이 가두고 토막 살해·엽기 학대행위 벌여
시민 추적 통해 학대자 잡았지만…여전한 경찰·지자체 무능력

포항 폐양어장 고양이 학대 사건에서 살아남은 고양이가 구조되고 있다.
포항 폐양어장 고양이 학대 사건에서 살아남은 고양이가 구조되고 있다.

첫 제보는 3월10일이었다. 경북 포항시 구룡포에서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잔혹한 동물학대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2명의 제보자가 카라에 연락을 해왔다. 제보자들은 학대자가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보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학대자는 2월 초부터 자신이 살해하고 학대한 고양이들의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진은 끔찍했다. 죽은 고양이의 가죽과 사체를 나란히 놓고 찍은 사진, 가죽이 벗겨진 작은 고양이의 머리를 쥐고 있는 사진, 배에서 장기가 쏟아진 고양이의 사진 등이 그의 SNS에 올라가 있었다. 만삭묘의 배에서 꺼냈다고 주장하는 고양이 태아를 병에 담가놓은 사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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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범을 쫓는 시민들

제보자들은 그가 누구고, 어디에 사는지, 그가 ‘작업장’이라 부르는 곳이 어딘지 조사해갔다. 또 다른 시민들도 흥신소(사설조사 업체)를 고용해 그가 학대를 벌이는 곳의 추적을 의뢰했다. 학대자가 에스엔에스에 휴대폰 번호를 밝히고 있었고, 제보자들이 어느 정도 정보를 모은 뒤라서 학대 장소에 대한 조사는 꽤 빠르게 진전됐다.

카라는 경찰이 학대자를 만났음에도 귀가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추가 범행과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해 바로 현장에 달려갔다.
카라는 경찰이 학대자를 만났음에도 귀가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추가 범행과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해 바로 현장에 달려갔다.

문제는 경찰이었다. 3월20일 학대자가 작업장이라 부르는 폐양어장에 나타났다. 곳곳에 고양이의 토막난 사체가 놓여 있고 살아 있는 고양이들이 갇혀 있는 곳이었다. 시민들이 고용한 흥신소 직원들은 그가 나타나자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현장에 나타난 경찰은 학대자가 고양이를 해부한 건 맞지만 죽이지는 않았다고 말하자 신상정보만 묻고 가버렸다. 현장의 증거물은 물론이고 살아 있는 고양이들은 그대로 둔 채로 말이다.

이야기를 전달받은 카라 활동가들은 곧장 짐을 꾸려 현장으로 출발했다. 학대자가 고양이들을 옮기거나 해칠 확률이 높았고 무엇보다 현장의 사체 등 ‘범죄 증거물’이 훼손되는 걸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3월21일 새벽 1시 밤. 물 빠진 폐양어장 안에는 토막난 고양이의 사체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3월21일 새벽 1시 밤. 물 빠진 폐양어장 안에는 토막난 고양이의 사체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렇게 서둘러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3월21일 새벽 1시 반. 폐양어장은 주소지를 찍어도 찾을 수 없는 외진 곳에 있었다. 물 빠진 양어장은 사람에게도 아찔한 공간이었다. 울타리도 없는 난간에 서자 3~4m쯤 아래에 고양이 몇 마리가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은 사다리밖에 없었다. 활동가들은 일단 포획틀과 짐을 아래로 내렸다. 고양이들은 낯선 사람들의 등장에 대부분 멀리 도망을 갔지만, 유독 사람을 잘 따르는 턱시도무늬 고양이 한 마리는 반가운 듯 눈치를 보며 다가와 머리를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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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널린 사체, 도대체 몇 마리인지…

바닥으로 내려가자 사다리 바로 지척에서 가스 버너와 냄비, 고양이 사체가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토막난 사체가 아니었다. 그가 ‘해부’한 결과물로 부패하고 건조되어 있었다. 발목 이하는 남겨뒀지만 다리 가죽은 모두 벗겨진 다리 두 쪽, 척추뼈와 다리만 남은 사체, 갈비뼈만 형태가 남아있는 것등 잔혹한 사체가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몇 마리인지 유추도 어려웠다. 그저 곳곳에 핏자국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학대자가 ‘작업장’이라 부르던 학대 장소에는 고양이 여러 마리의 사체뿐 아니라 살아있는 고양이 9마리도 발견됐다.
학대자가 ‘작업장’이라 부르던 학대 장소에는 고양이 여러 마리의 사체뿐 아니라 살아있는 고양이 9마리도 발견됐다.

카라는 곳곳에 조각나 흩어진 고양이들의 사체를 수습했다. 살아있는 고양이들의 구조 작업은 밤새도록 이뤄졌다. 고양이는 9마리였는데 챙겨간 포획틀은 4개밖에 없었다. 급하게 카라 공식 에스엔에스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라이브를 보던 시민들이 포획틀을 챙겨서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이렇게 포항 고양이 보호단체인 ‘유토피아’ 회원들과 한동대학교 길고양이 보호동아리 ‘한동냥이’의 도움으로 구조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현장에 있던 고양이 한 마리는 활동가들이 사다리를 오르 내리는 것을 봤는지, 사람들이 멀리 있을 때 혼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훌쩍 사라졌다. 학대자의 가족이 흥신소에 인계했다는 아주 어린 새끼 고양이 한 마리와 학대 장소에 갇혀있던 8마리까지 총 9마리의 고양이가 현장에서 무사히 구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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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자를 만났다

날이 맑은 후 학대자와 면담이 이뤄졌다. 그가 에스엔에스에 기재해 놓은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거니 순순히 전화를 받고 자신이 있는 장소를 알려졌다. 작업장 인근에서 그를 만나 장소를 그의 집으로 옮겼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 고양이 가죽을 꺼내왔다. 삼색 고양이의 가죽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이 가죽은 세탁기에 돌렸더니 망가졌다”고 말했다.

폐양어장 인근에서는 학대자가 설치한 포획틀이 발견됐다. 그는 이곳에 길고양이가 들어오면 포획해서 폐양어장에 가둔 뒤 학대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폐양어장 인근에서는 학대자가 설치한 포획틀이 발견됐다. 그는 이곳에 길고양이가 들어오면 포획해서 폐양어장에 가둔 뒤 학대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카라 활동가들이 그의 에스엔에스에서 캡쳐한 사진을 보이며 ‘그럼 이 고양이를 어떻게 죽였냐’고 묻자 그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설명했다. 고양이의 태아는 왜 용액에 보관했느냐고 물었더니 “왠지 해부한 것이 보존할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답했다. 폐양어장 현장에 있던 가스 버너는 고양이 고기를 끓여서 다른 고양이에게 먹일 때 썼다는 말도 했다.

그는 스스로 저지른 행위에 대해 서슴없이 진술했다. 그는 고양이가 사다리를 타고 도망가는 것을 본 뒤로는 항상 사다리를 치워놨고 자신이 오르 내릴 때만 사다리를 설치해둔다고 했다. 고양이들이 폐양어장 벽에 난 구멍으로 도망치기에 그곳을 돌로 막았다고도 했다. 폐양어장 옆에서 발견된 포획틀도 자신이 설치한 것이 맞으며 그곳에 고양이가 들어가 잡히면 폐양어장에 가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동물학대 영상이나 고어물을 즐겨보며 그 행위에 중독된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서 확보한 사체는 카라가 곧장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부검을 맡겼다.
현장에서 확보한 사체는 카라가 곧장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부검을 맡겼다.

“죄송합니다. 제가 천벌을 받을 짓을 했습니다.” 범죄를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사과하는 것도 빨랐다. 학대자는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진심인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그는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카라는 곧장 포항북부경찰서에 해당 사건을 고발했고 사건은 곧 포항남부경찰서로 이관됐다.

포항은 이전에도 한동대 길고양이 살해 사건 등 끔찍한 동물범죄가 자주 발생한 지역이다. 그러나 여전히 경찰과 지자체의 동물학대 대처는 미흡했다. 카라는 경찰에 현장 폴리스라인 설치와 증거수집 등을 요청했다. 현장에서 확보한 사체는 카라가 곧장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부검을 맡겼다. 포항시에는 학대 재발방지를 위한 현수막 게시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길고양이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라는 작은 현수막을 걸었기에, 동물학대가 범죄임을 알리는 큰 현수막을 걸어달라고 재차 요청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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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와 동물학대

구조한 고양이들은 다행히도 상태가 양호하다. 한 마리는 발가락 골절이 발견되었으나, 무리한 움직임만 조심한다면 회복될 수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 이들은 포항 동물보호단체인 ‘유토피아’에서 보호와 입양을 맡게 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이번 사건에 ‘캣맘 프레임’을 씌워야 한다며 가짜뉴스를 게시하라는 글까지 나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이번 사건에 ‘캣맘 프레임’을 씌워야 한다며 가짜뉴스를 게시하라는 글까지 나타났다.

고양이 학대와 여성 혐오는 교묘하게 맞닿아 있다. 이번 사건만 봐도 그렇다. 구조된 여덟 마리 중 일곱 마리가 수컷이었다. 게다가 죽은 고양이들의 가죽이 대부분 삼색이었던 것을 보면 암컷만 골라서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이런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이 사건에 ‘캣맘 프레임’을 씌우려고 하고 있다. 학대자의 어머니가 캣맘이고 그것이 싫어서 학대를 벌였다는 가짜 뉴스다. 온라인에 “엄마가 캣맘인데 끔찍하다”는 등의 댓글을 달라고 독려하는 글을 버젓이 게시하고 있다. 학대범의 어머니는 캣맘이 아니다. 어째서 이런 끔찍한 혐오와 범죄가 고양이를 돌보는 여성, 그리고 여성 고양이를 향해 있는지 우리는 눈여겨 봐야 한다.

폐양어장에 처음 발 딛었을 때의 공포가 기억난다. 도망갈 수 없이 붙잡혔고, 죽임 당했고, 해체당한 고양이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가 상상됐다.
폐양어장에 처음 발 딛었을 때의 공포가 기억난다. 도망갈 수 없이 붙잡혔고, 죽임 당했고, 해체당한 고양이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가 상상됐다.

폐양어장에 처음 발 딛었을 때의 공포가 기억난다. 고양이의 사체가 무서운 게 아니었다. 인간에게도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바닥의 깊이가 무서웠고, 몸을 숨길 데라고는 포대 자루밖에 없어 우리를 피해 도망다니던 고양이들이 가여웠다. 도망갈 수 없이 붙잡혔고, 죽임 당했고, 해체당한 고양이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가 상상됐다. 앞으로 한동안은 그 새벽녘의 공기, 고양이들의 표정, 파도 소리에 묻히던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계속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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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로 태어나서

누군가는 동물권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를 두고, 혹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이들을 두고 너무 감정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약자의 삶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들이다. 이번에도 끔찍한 학대자를 쫓은 것은 시민들이 아니던가. 경찰과 지자체에 더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한 것도 시민단체가 아닌가.

우리는 고양이로 태어나서 억울한 세상이 아니라, 고양이로 태어나서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양이들의 억울한 죽음, 폐양어장에서의 모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호기심에 고양이들을 죽여 해부한 학대자가 강력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다.

글 카라 김나연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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