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북극곰의 나라에서
“나는 벨루가라는 하얀 고래를 좋아해.”
그 한 마디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벨루가라는 하얀 고래를 좋아해.”
그 한 마디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웃는 얼굴의 벨루가
“나는 벨루가라는 하얀 고래를 좋아해.” 네? 무슨 고래요? 나는 조금 당황했다. 개를 좋아한다는 말에 난데없이 웬 고래로 답하다니. 보통은 고양이나 햄스터쯤이 나오기 마련 아닌가? 아니, 고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종종 봤지만, 돌고래나 범고래도 아니고 듣도 보도 못한 흰 고래를 좋아한다는 건 꽤 당혹스러운 답이었다. 때는 한국에서 벨루가(흰고래)가 유명해지기 전. 대다수 한국인에게 벨루가는 생소한 이름이었고 고래에 일가견이 없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벨루가는 내 영혼의 동물이야.” 그때였다, 난생처음 들은 흰 고래가 내 마음에 새겨진 것은. 영혼의 동물이라, 아 정말 멋진 단어조합이 아닌가. 그 존재를 알려준 이의 신뢰도에 비례해, 낯선 고래는 내 안에 꽤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무려 ‘영혼의 동물’이라는 신비한 감투를 쓰고. 벨루가와 북극곰의 마을이라… 처음에는 그저 궁금했다. 뭐가 특별하기에 유독 그 고래가 좋은 걸까. 흰색이라서? 희귀해서? 도대체 어떤 동물이면 ‘영혼의 동물’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거지. 그건 영험한 동물이라는 뜻일까, 영혼을 치유해 주는 동물이라는 뜻일까. 이후 심심할 때마다 검색하던 비행기 표 대신 벨루가를 찾기 시작했다. 온몸이 새하얀 고래, 추운 북쪽 바다에 산다는 것, 그래서 이름도 러시아어 벨루가(Beluga)이며, 얼핏 돌고래(Dolphin) 같지만 엄연히 고래(Whale)로 분류된다는 것 등.
전세계 북극곰의 수도 ‘처칠‘은 매년 11월이면 바다가 언다. 이태리 제공
본 적도 없는 고래에게서 나는 어느새 희망을 찾고 있었다. 창살 너머로 만나면 슬퍼질 것 같았다 곧 여수와 제2롯데월드 등 국내 아쿠아리움에도 잇따라 여러 마리의 벨루가들이 입성했지만, 찾지 않았다. 서식지가 위협받아 자연 상태에서 살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동물은 본래의 자리에서 사는 게 낫다고 믿기에. 좁은 수조에서 수영조차 제대로 못 하는 벨루가를 소비하고 싶지 않았고, 희망의 이름이 된 벨루가를 투명한 창살 너머로 만난다면 매우 슬퍼질 것 같았다. 그러던 2015년, 나는 방전 되었다. 원했던 일을 하고 있는데도 처음의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목적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무언가 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살게 하던 내 안의 불꽃이 꺼져가는 것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원인도 몰랐으니 해결책은 더 몰랐다. 숨이 죽어버린 열정은 혼자 아무리 부채질하고 장작을 쑤셔도 회생시킬 수 없었다. 없는 게 없는 도시 서울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가만히 있다간 바짝 말라 육즙도 안 남은 번데기가 될 듯한 위기감에 친구 따라 생전 안 가던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갔을 때, 돌팔이 친언니가 안주 삼아 사주팔자를 풀어줬을 때. 놀랍도록 같은 풀이가 나왔다. 내 팔자에 그간 까맣게 모르고 산 무슨 귀인들이 그리도 많으시다는데 하필 지금 있는 곳, 안정적인 땅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게 아닌가. 게다가 향후 몇 년간 해외에서 유독 운이 트여있다고.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이른바 ‘불쏘시개 찾기 여행’. 세상을 걷다 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이 되었든 땔감이 되었든, 기름이 되었든. 꺼져가는 내 안의 불씨를 살릴 귀인 하나쯤은. 아니, 찾아내야지! 그렇게 북미를 시작으로 2년 여간 세계를 떠돌 계획을 세웠을 때, 첫 번째 목적지로 처칠이 떠오른 건 말하자면 입 아픈 일. 벨루가와 희망이 어느새 같은 단어가 되어 있던 나는 곧장 캐나다행 비행기 표와 처칠행 기차표를 끊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전부를 이 손바닥만 한 북쪽 마을에서 보내게 되리라는 건, 패기 넘치던 당시의 나도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태리 북극곰 수도 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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