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가 몰아쳤던 어느 날, 강원도 철원 한탄강에서 두루미가 외다리로 서 있다가 눈 위에 그냥 웅크리고 앉아 버렸다. 맨 오른쪽 연한 갈색 털이 남아 있는 한 마리는 올해 첫 겨울을 맞은 어린 두루미다.
겨울이면 ‘두루미앓이’를 한다. 상고대 하얗게 맺힌 강에서 새와 함께 새벽을 맞곤 했다.
한겨울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면 두루미가 모여 잠자던 강원도 철원 한탄강 여울에 새벽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눈 예보가 있는 날이면 마음은 벌써 철원 들녘을 내달린다. 밤새 눈이 내리면 동트기 전 차를 몰고 강원도로 향한다. 두루미 서식지까지 100여㎞ 눈 쌓인 도로에 첫 바큇자국을 냈다. 눈길 운전이 조심스럽지만 설렜다.
두루미앓이가 절정에 이를 무렵 잠자리도 들여다봤다. 키가 사람만큼 큰 새는 천적의 접근을 알아챌 수 있으면서도 은밀한 곳에서 잔다. 두루미는 물이 발목 정도 차는 여울에 외다리로 서 겨울밤을 난다. 긴 목을 접어 날개에 파묻고는 꿈쩍도 안 한다. 잠자는 새를 찍으려 달 밝은 날을 기다렸다. 달빛 아래 카메라 셔터를 열고 10여분이 지나면 여울은 흔적만 남았다. 물이 흘러간 흔적을 배경으로 잠자던 두루미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상이 되어 맺혔다.
한번은 동트기 전 새 잠자리가 있는 강가에 숨어 두루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하 25도. 한탄강 새 잠자리에도 얼음이 얼 정도였다. 잠자리에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합쳐 30여마리가 보였다. 동틀 무렵 주변이 점점 밝아져도 응달이라 색온도가 낮았다. 새도 늦잠을 잤다. 머리와 목에 연한 갈색이 남은 어린 두루미가 뷰파인더에 들어왔다. 올여름 태어나 처음 맞은 겨울이다. 잠이 깬 부부가 어린 새와 얼음 위로 걸어 나왔다.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주변은 온통 눈밭이었다. 습관처럼 깃을 다듬고 날개를 퍼덕거린다.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잤지만, 강추위에 몸이 꽁꽁 얼었나 보다. 새들이 다시 외다리로 섰다가 눈 위에 그냥 웅크리고 앉는다. 사진처럼.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