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동물은 죽음이 아니라 덜 고통받는 삶을 원한다

등록 2019-02-15 16:54수정 2019-02-15 17:58

[애니멀피플] 기고/박종무 수의사
안락사는 안락사를 당하는 생명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안락사라고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안락사는 안락사를 당하는 생명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안락사라고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물권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구조한 동물 수백마리를 몰래 안락사시킨 사실이 드러나며 각종 논란들이 점화되고 있습니다. ‘애피’는 이번 케어 사태가 박 대표 개인의 법적, 도덕적 해이 논란에서 더 나아가 우리사회가 직면한 유기견, 개농장 등 동물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철학적 고민을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동물들과 가까이에서 일하고 고민하는 분들의 다양한 의견이 담긴 글들을 싣습니다.

바로가기▶ 기고/죽일 거면서 왜 구조하는가

바로가기▶ 기고/지금 ‘안락사 논쟁’을 할 때인가

바로가기▶ 기고/문제의 본질은 안락사다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구조한 동물 중 많은 수를 안락사 했다는 내부고발자의 폭로가 있은 지 한 달이 지났다. 많은 시민들과 후원자들은 박 대표의 행위에 대하여 분노하였고 박 대표의 퇴임을 요구하였다.

박 대표는 구조 동물의 안락사는 인정했지만 많은 동물들이 개농장이나 유기동물보호소에서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그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안락사는 불가피했으며 대표직 퇴임은 없다고 못 박았다. 더 나아가 그는 우리 사회가 이제 구조 동물의 안락사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동물보호단체나 시민들은 이 주장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에 비해 박 대표를 지지하는 몇몇 사람들은 박 대표의 주장대로 안락사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_______
안락사 용어의 정립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안락사라는 용어이다. 안락사는 ‘한 생명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위 또는 무위로 그 생명을 의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우선 행위의 목적이 그 생명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두번째는 행위의 방식이 고통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락사는 안락사를 당하는 생명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안락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박 대표에 의해 죽임을 당한 동물들에게 그 죽음이 해당 동물에게 이익이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상태에서 다른 방법으로 그 고통을 완화할 수 없을 때에 이루어진다. 동물병원에서 동물을 진료하다 보면 가끔 녹내장이 심각한 경우나 사지의 괴사가 심각하게 진행되어 안구를 적출하거나 사지를 절단 수술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어떤 보호자는 동물이 고통스러워한다며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안락사의 대상이 아니다. 그 동물들은 수술을 통해 비록 한쪽 눈이나 한쪽 다리가 제거되더라도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그 동물은 안락사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다.

고통은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매우 주관적인 지표이다. 또 고통은 안락사에 있어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고통이 있다면 안락사를 고려해 볼 수 있지만 다른 여러 요건들 또한 충족되어져야 안락사라고 할 수 있다. 동물보호를 위한 세계 협회(WSPA)나 RSPCA 등 여러 세계 동물 보호단체들은 불치의 병이나 고통의 정도, 사람에 대한 공격성 등을 고려하여 구성원들이 용인하는 경우에 한하여 안락사를 실시하고 있다.

박 대표가 안락사한 동물 중 상당수는 건강한 상태였다. 피부병은 안락사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질병이 아니며, 임신한 동물은 더더욱 안락사의 대상이 아니었다. 또 박 대표가 구조한 동물들은 고통받는 상황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고통받는 동물들이 아니었다. 박 대표는 고통받지 않는 상태에 있는 구조된 동물을 죽인 것이다.

더군다나 후원자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 구성원들까지 속이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박 대표의 동물들을 죽인 행위는 목적이나 절차상 안락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안락사라고 말할 수 없으며, 단지 구조 동물을 보호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죽여서 처리한 살처분 행위이다.

_______
케어 사태의 핵심은 동물 학대와 기망이다

케어 사태가 발생한 이후 박 대표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동물보호단체의 노선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케어 사건의 핵심적인 문제는 박 대표가 구조한 동물을 임의로 살처분한 동물 학대 행위와 안락사시키지 않겠다고 하여 후원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모금한 후 살처분한 후원자를 기망한 행위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에게 질병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수의사에 의해 안락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밖의 동물에게 약물을 이용해 상해를 가하는 행위는 동물 학대로 규정한다.

동물 학대 행위는 행위자의 지위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누구라도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를 하였다면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 개의 보호자든 동물보호단체의 대표든 자신이 돌보던 개가 고통스러워 보인다며 적법한 과정에 의하지 않고 임의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명백히 동물 학대 행위이다.

또 일부 박 대표의 지지자는 박 대표의 살처분 행위를 노선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노선이 동물보호운동 단체의 바람직한 운동 방향인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만약 노선의 문제였다면 박 대표는 고통을 줄여주는 것 자체가 단체의 목표이기 때문에 구조 후 안락사 시킬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표명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케어는 안락사가 없는 단체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활발한 구조 활동을 벌이고 홍보하여 많은 후원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모금했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그런 행위 자체가 후원자들을 기망한 행위이다. 많은 후원자들이 “내가 안락사시키라고 후원을 했냐?”며 사건 이후 후원을 철회한 것이 그 반증이다. 시민단체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여 시민들의 지지 속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케어의 박 대표는 그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다.

이러한 동물 학대 행위와 후원자들을 기망한 행위에 대하여 타 동물보호단체와 후원자들은 박 대표의 책임과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과다한 처벌이 아니라 박 대표가 행한 행위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다.

_______
동물보호단체가 보호해야할 가치는 무엇인가

박 대표와 박 대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유기동물이 대량 발생하는 현실과 개농장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안락사의 불가피성을 강변하고 있다. 그들은 박 대표의 행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안락사 자체를 반대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박 대표의 행위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안락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안락사는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엄정한 절차를 밟아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유기동물보호소나 동물병원에서는 그런 기준에 따라 안락사가 실시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활동의 주안점은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물보호단체 활동의 주안점은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유기견들이 안락사되는 상황에서 동물보호단체가 안락사 될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조했을 때 후원자들은 죽음을 앞둔 생명을 살렸기 때문에 환호하고 후원한 것이다. 그런데 “안락사를 시키지 않겠다”며 동물을 구조한 후 살처분했기 때문에 후원자들은 깊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가 “구조해서 죽일 거면, 그냥 죽게 놔두지 왜 구조했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박 대표의 지지자들은, 유기동물들이 보호소라는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벗어나 며칠이라도 구조된 곳에서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만큼 고통을 줄여줄 수 있어서 구조 동물에게 유익하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케어의 보호소 환경이 구조 동물에게 안락한 환경이었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관대한 평가이다. 제삼자가 보기에 유기동물 보호소 환경이나 케어 보호소의 환경이나 그 다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박 대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살처분을 통한 동물의 고통 감소 부분에 대하여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모 교수는 동물에게는 “자아의 종결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려는 생각은 인간에게만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동물에 대해서는 고통의 유무만이 문제가 되며 동물이 살아 있음으로 인한 생명의 이익을 논하는 것은 ‘가짜 문제’를 붙잡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_______
인간만이 특별한가

이는 데카르트가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 없다고 논한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자아 종결에 대한 두려움’을 핵심 가치로 거론하는 주장은 ‘자아 종결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식물 상태에 빠진 인간은 한 생명으로서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가라는 반론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또 ‘자아 종결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동물은 고통만 느끼지 못하게 하면 마구 죽여도 되는가라는 문제와 고통을 느끼는지조차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식물은 마구 다루어도 되는가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주장들은 모두 인간만이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종차별적인 주장들이다.

폴 테일러는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내재적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그 가치는 인간의 판단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는다. 동물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은 나름의 가치와 자기 이익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생명체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해주어야 한다.

여기에서 동물보호단체 활동의 주안점은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동물을 죽여야 하는 경우에 고통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한 활동 방향은 다양한 동물보호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많은 동물보호단체들이 눈에 띄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동물을 구조하고 구조한 동물을 돌보고 새로운 보호자를 찾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그 같은 이유에서다.

또 동물실험과 관련해서도 동물보호단체는 엄정한 3R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3R은 동물실험을 다른 실험으로 대체(Replacement)하도록 하고, 실험동물의 수를 최소화(Reduction)하도록 하며 꼭 동물실험을 하는 경우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최소화(Refinement)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동물의 고통만이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며 부득이한 경우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케어 사태에 대하여 여러 동물보호단체와 후원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박 대표가 용감하게 구조한 행위에 대해서가 아니다. 그 용기는 칭찬 받을 만하다. 하지만 구조한 동물을 살처분한 행위는 명확하게 동물학대 행위에 해당한다. 동물의 고통을 줄인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살처분한 반생명적인 행위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고통받는 동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동물들을 구조하기 위해서는 살처분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이 용인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케어 사태에서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가 있었다면 그 행위자가 누구였든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