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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고래잡이, 탐욕과 무지가 낳은 비극

등록 2019-07-26 17:14수정 2019-08-16 11:54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15. 반구대 암각화, 오스왈드 브리엘리, 일본과 고래
고래잡이를 그린 19세기 일본화. 작자 미상
고래잡이를 그린 19세기 일본화. 작자 미상
연일 일본이라는 화두가 뜨겁다. 수출 규제 사건이 촉발한 이 역사의 폭풍은 당분간 지속하면서 한국과 일본, 두 사회의 상대방 더 알기를 촉진하지 싶다.

그런데 이 사건 외에도 일본을 더 알아보라고 우리를 채근하는 듯한 일본 정부의 과감한 결정이 최근 하나 더 있었다. 국제포경위원회(IWC,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의 규제와 무관하게 상업 목적 포경(捕鯨)을 재개하겠다는 결정이었다. 그간 일본 정부는 국제포경위원회를 향해 포경 재개를 허락해달라고 줄기차게 하소연했는데, 위원회가 끝내 이를 수용치 않자 포경 재개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2019630일의 풍경이다.

이번 조치는 30년 넘게 목에 매었던 상업용 포경 금지라는 목줄을 벗어던지겠다는 선언이었고, 국제 질서를 따르기보다는 일본의 길을 가겠다는 공표였다. 하지만 이 선언은 국제사회와의 공식적이별 선언일 뿐이었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의 길을 가고 있었다. 1982년 국제포경위원회에서 상업용 포경 금지를 결정했지만, 사실상 일본은 이를 무시한 채 포경을 지속해왔다. ‘연구목적으로는 포경이 허용된다는 위원회 규정을 악용해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건 포경 자체가 아니라 그간 포경으로 죽어 나간 고래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일본 포경선들에 죽어 나간 고래는 연간 1000마리에 육박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북 울진에서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 탁본
경북 울진에서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 탁본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수산청은 2019년의 포획 목표치까지 정해놓았는데 이것이 227마리나 된다.(밍크 고래 52마리, 브라이드고래 150마리, 보리 고래 25마리) 어찌 이리도 악랄하고 잔혹한가. 하기야 이들이 1960년대에 잡아먹은 고래가 연간 20만 톤(50톤 무게의 고래 4천 마리)이었다는 자료 앞에서는 분노를 넘어, 허탈해질 지경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도 제 영해에서 포경을 지속해왔지만,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야 할 국가는 이들이 아니다. 자국 영해가 아닌, 그래서 공공성이 강한 원양에서 고래잡이를 계속해온 국가는 따로 있으니 말이다. 일본 포경선은 바다와 고래의, 고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공적(公賊)이고 원흉(元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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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무지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고래잡이

1982년 이전까지는 지구인의 대부분이 이 동물에 대해 새카맣게 무지했고, 이 동물에 대한 적대행위를 그치지 않았다.

고래잡이는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언제부터인지는 알고 있다. 고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한국 경상북도의 어떤 강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국보 제 285호로 지정된 울진 반구대 암각화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바위그림이 발견되자 전 세계가 놀랐다. 최소 7500년 전에는 인류가 고래잡이를 하고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해졌으니까.

그러니까 포경은 어느 섬나라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풍속이기도 했다. 정약전과 이청의 공동저작인 <자산어보>(1822)에 고래(경어鯨魚) 항목이 있다는 점을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자산어보>에는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저자들은 고래의 눈으로 잔을, 수염으로는 자를, 뼈로는 절구를 만든다고 쓰고 있다. 19세기에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포경을 산업화하면서 (식용만이 아니라) 다목적으로 고래가 활용되었다고 배웠지만, 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먼 동방의 어느 유생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게다.

확실히 19세기는 고래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세기였다. 지난 3천만 년의 고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잔혹했던 백년이었다. 이전까지 고래는 잡아먹기 위해 잡는 동물이었지만, 이제는 그 기름으로 도시의 가로등을 밝혔다. 고래 기름은 윤활제, 비누, 마가린의 원재료로 쓰였다. 20세기 들어 플라스틱으로 만든 각종 재화를 당시엔 고래 뼈로 만들었다.

기름과 뼈가 필요하면 할수록, 포경선은 자주 출항했다. 수요의 증가는 생산의 증가로, (포경선의) 모험과 죽임의 증가를 낳았다. 19세기의 어느 골짜기에서, 허먼 멜빌이 <모비딕 또는 고래>(1851)를 쓰게 된 배경이다.

오스왈드 브리엘리(Oswald Brierly), ‘뉴싸우즈웨일즈, 투폴드 베이 근처의 고래잡이 어부’(Whalers off Twofold Bay, New South Wales, 1867)
오스왈드 브리엘리(Oswald Brierly), ‘뉴싸우즈웨일즈, 투폴드 베이 근처의 고래잡이 어부’(Whalers off Twofold Bay, New South Wales, 1867)
19세기 중반 오스왈드 브리엘리(Oswald Brierly)가 그린 ‘뉴싸우즈웨일즈, 투폴드 베이 근처의 고래잡이 어부’(Whalers off Twofold Bay, New South Wales, 1867)에서 우리는 19세기의 거대한 무지를 만난다. 같은 세기에 나온, 포경 행위를 묘사한 일본화들과 비교해 볼 때 포경 현장의 엄혹함, 잡는 자와 잡히는 자 양쪽의 필사적 투쟁의 열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품에 구축된 일체의 긴장, 그 배면에 있는 것은 19세기의 탐욕이고, 그 아래에 있는 것은 19세기의 무지다.

오스왈드 브리엘리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적어도 그는 자신의 동시대인들이 탐욕과 무지에 갇혀 있다는 말을 하려고 이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무지의 한복판에서였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19세기의 무지는 20세기 후반기가 되어서야, 그러니까 국제포경위원회상업용 포경은 인류에게 더는 필요치 않은 행위라고 못 박은 1982년께가 되어서야 비로소 무지로 드러난다. 무지의 한복판에 있는 한, 무지는 무지로 결코 인식되지 못한다. 이것이 무지의 무서운 귀속력이다.

무지의 귀속력으로부터의 해방은 과거나 미래라는 거울에 현실을 비추어봄으로써만 가능하다. 고래와 바다, 지구 생태계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거울이, 너무 풍성한 과거와 미래가 있다. 필요한 건 그 거울을 들어 자신을 살펴볼 우리의 손과 눈뿐이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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