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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우리는 모두 ‘바다 순환계’ 속에 있다

등록 2019-08-16 17:24수정 2019-08-16 18:56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16. 오귀스트 르누아르, 이반 아이바좁스키, 인간과 바다
‘물의 세력권’이라는 말은 ‘지구 물순환계의 세력권’이라는 말로 곧바로 대체되어야 한다. 바다가 중심이며, 육지의 산과 숲, 정글과 강, 호수와 습지를 거느리는 이 거대 순환계의 ‘안쪽’에서만 우리는 연명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물의 세력권’이라는 말은 ‘지구 물순환계의 세력권’이라는 말로 곧바로 대체되어야 한다. 바다가 중심이며, 육지의 산과 숲, 정글과 강, 호수와 습지를 거느리는 이 거대 순환계의 ‘안쪽’에서만 우리는 연명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숲에서 마을로 생환하여 우리에게 깨우침을 준 이가 있었다. 10일 넘게 굶주린 채 숲에 고립되어 있었으면서도 종단은 물이 있었기에 살아남았던 조은누리양. 소녀는 물과 인체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새삼 알려주었다. 우리 모두가 실은 지구의 물에 결박되어 있다는 진실을 말이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물이 교회의 성수반 안에도, 창녀의 욕조 안에도, 입맞춤 속에도, 관 속에도”(<>) 있다고 읊으며 편재(遍在, ubiquitous)한 물의 성질을 꼬집어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물이 가장 흔한 곳은 실은 우리 몸속이다. 폐의 83%, 근육의 79%, 뇌의 73%, (혈관 내) 혈장의 90% 이상이 물이라고 하니 물 없는 생존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가 물 동물들이며, 물의 세력권 아래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물의 세력권’이라는 말은 ‘지구 물순환계의 세력권’이라는 말로 곧바로 대체되어야 한다. 바다가 중심이며, 육지의 산과 숲, 정글과 강, 호수와 습지를 거느리는 이 거대 순환계의 ‘안쪽’에서만 우리는 연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동아시아의 고대 철학자들은 땅을 어머니라고 보았지만, 어디까지나 양분 중심적, 농경 중심적 사고방식에 근거한 편협하고 근시안적 시각이었다. 조은누리양이 증명했듯 양분보다 물이 우선이며, 풍부한 양분이 땅에서 나오려면 바다를 수장(首長)으로 하는 물순환시스템이 먼저 활동해주어야만 한다. 땅이 아니라 바다가 우리의 모체(母體)임이 우리 자신에게 분명히 인지되어야 한다.

오귀스트 르누와르(August Renoir, 1841~1919)의 ‘파도’(La vague, 1879)
오귀스트 르누와르(August Renoir, 1841~1919)의 ‘파도’(La vague, 1879)
안타깝게도 1960년대 중반 가이아 이론과 지구 시스템 과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러한 인식은 인류의 지적 영역 바깥에 있었다. 바다는 식량자원이 무궁히 매장된 풍요로운 곳간으로, 하지만 홀저히 제 성질머리를 드러날 때면 차갑게 돌변하는 외계(外界) 정도로 인식되었다. “바다는 항상 여성이며, 큰 은혜를 베풀거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고, 바다가 사나워지거나 못된 짓을 할 때는 할 수 없어서 그러거니했던(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 어느 노인의 인식 정도가 인류의 인식이었던 게다.

물론 이러한 어수룩한해양관은 미술작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예컨대, 오귀스트 르누와르(August Renoir, 1841~1919) 의 작품 ‘파도’(La vague, 1879)에 잠시 시선을 던져보자. 높은 파도마루도, 깊은 파도골도 없지만 수평선 저 끝에서부터 몰려들고 있는 대자연의 기세는 인간세의 모든 일을 압도해버릴 듯 위협적이다. 자세히 보면 인간의 흔적이 보이는데, 이들은 곧 덮여버릴 듯하다. 불길한 무언가가 수평선 너머에서 움틀대고 있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의 실체는 알지 못한다.

이반 아이바좁스키(Ivan Aivazovsky, 1817~1900)의 ‘파도가 크게 이는 바다’(The Billowing Sea)
이반 아이바좁스키(Ivan Aivazovsky, 1817~1900)의 ‘파도가 크게 이는 바다’(The Billowing Sea)
이 작품에 잠재된 공포를 바깥으로 꺼내어 극대화하면 이반 아이바좁스키(Ivan Aivazovsky, 1817~1900)의 작품 ‘파도가 크게 이는 바다’(The Billowing Sea) 같은 화면이 도출된다. 작품에 묘사된 바다는 흑해(Black Sea)인데, 피쿼드 호를 침몰시켰던 거대한 향유고래 모비딕만큼이나 바다는 분노로 들끓고 있다. “버들잎 같은 배가 산마루 같은 파도마루에 올리떴다가는 또 눈 깜박할 사이에 파도골로 떨어져 내려 가고 또 올리떴다가는 떨어져 내리고 하는”(김학철, <격정시대> ) 어느 거친 바다의 실물을 이 그림 앞에서 상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반 아이바좁스키(Ivan Aivazovsky, 1817~1900)의 ‘폭풍이 치는 바다’(Stormy Sea)
이반 아이바좁스키(Ivan Aivazovsky, 1817~1900)의 ‘폭풍이 치는 바다’(Stormy Sea)
바다에 미쳐 살았던 화가 아이바좁스키의 또 다른 작품 ‘폭풍이 치는 바다’(Stormy Sea)에서 우리는 바다의 블랙홀같은 걸 만나게 되는데, 지옥문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인간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작동하며, 그토록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인간에게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 자연을 화가는 그리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무법자로 돌변한 바다를 묘파한 걸까.

어느 쪽이든 우리는 조은누리양이 우리에게 알려준 진리를 이런 그림에서는 발견하지 못한다. 바다는 인간이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계 바깥에 존재하는 외계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케케묵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20세기 들어 상황은 반전되어 아담 때부터 전해 내려온 전 인류의 분노와 증오”(허먼 멜빌, <모비딕> )를 어떤 이들은 바다를 향해 쏟아냈다. 스팀 터빈이나 석유로 움직이는 초대형군함과 포경선이 바다를 누볐고, 어선에는 롱라인(long line, 연승, 50~100km 길이의 어업 도구)이 장착되었다.

온실가스로 인해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해양플라스틱 섬들이 부유하고, 비구름에 녹아든 미세플라스틱 섬유가 눈과 비에 섞여 내리고 있다. 바다는 신음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온실가스로 인해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해양플라스틱 섬들이 부유하고, 비구름에 녹아든 미세플라스틱 섬유가 눈과 비에 섞여 내리고 있다. 바다는 신음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기에, 온실가스로 인해 해수면 온도가 계속 상승하고 있고 거대 해양플라스틱 섬들이 태평양을 부유하고 있으며 비구름에 녹아든 미세플라스틱 섬유가 눈과 비에 섞여 내리고 있는 21세기의 현실까지 덧붙인다면 이야기는 판연히 달라진다. 바다가 아니라 현대인이 괴물이며, 지옥문은 바다가 아니라 현대인의 뇌 안에 있다.

달리 말해 초대형 군함과 롱라인 피싱 이후에는, 지구시스템 과학 이후에는, 기후위기와 해양플라스틱의 시대에는, 그리고 조은누리양의 생환 이후에는, 르누와르나 이아바좁스키의 그림과는 다른 바다 그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가해자 아닌 피해자 바다의 이미지, 지구의 중심이자 지구 물순환계의 중심인 바다의 이미지, 지구라는 단 하나이며 모두의 집 안에서는 인류의 운명이 바다의 운명과 묶여 있다는 진리를 머금은 어떤 서사시적인 이미지가, 우리 모두가 짊어진 이 시대의 운명의 표정이, 해양생태계보호법이나 해양포유동물보호법만큼이나 긴요한 시대에 우리는 당도해 있는 것이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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