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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야생동물을 평생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등록 2020-05-23 09:00수정 2020-05-25 10:07

[애니멀피플] 책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 저자 황주선 박사
책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의 한 장면. 생각하는아이지 제공
책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의 한 장면. 생각하는아이지 제공

곳곳의 안녕하지 못한 동물들이 입을 열었다. A4용지 크기 배터리 케이지에 갇힌 닭, 진흙 목욕은 꿈도 못 꾸고 새끼만 낳는 공장식 농장의 돼지, 팜유 때문에 열대우림 집을 빼앗긴 오랑우탄, 사람들의 호기심 탓에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갇힌 야생동물,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나 결국 유기동물 보호소로 간 반려동물까지. 새 책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는 입히고, 먹히고, 착취 당하는 동물들의 아픔이 곧 인간과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동물들은 안녕하지 않다. 물론 그 동물에는 인간들도 포함된다. 좁은 빙하 위 아기 북극곰이 두려움에 떨면서 말한다. “엄마. 빙하가 다 녹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죠?” 엄마 곰의 현명한 대답은 인간의 처지를 깨닫게 한다. “글쎄. 그 전에 사람들이 해결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도 우리처럼 갈 곳 없는 신세가 될 거니까.”

이렇게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심스레 “동물, 지구, 그리고 나를 이어보라”고 말을 건네는 ‘동물의 통역자’들은 다름 아닌 동물복지 활동가 이형주와 수의사·질병생태학자 황주선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그 어느 때보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 해야 한다는 반성하는 목소리가 높다. 비인간동물 뿐 아니라 인간까지 안녕하지 않은 현재의 상황을 예견한 황주선 박사와 서면으로 만나봤다.

2014년 대학원 시절 길고양이 밀도조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황주선 박사. 황주선 제공
2014년 대학원 시절 길고양이 밀도조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황주선 박사. 황주선 제공

-반려동물에서부터 농장, 야생, 실험동물, 동물원과 채식까지 아주 광범위한 내용을 담았지만 어렵지 않고 술술 읽혔다. 주요 독자인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힘들었을텐데?

“아무래도 어린 독자들과 소통한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말투나 표현은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이 됐다. 그러나 책 기획 단계부터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독자를 계몽하려 들지 말자’는 거였다. 그보다는 아무도 알려주거나 생각해보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부분을 어린 독자들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자 생각했다.”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아이지 제공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아이지 제공

-그 가운데서도 가장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셨다면?

“2016년 서울어린이대공원의 ‘교육 중심 동물원 발전계획’ 연구를 진행하며 독일 뉘른베르크 동물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동물원 학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동물원에서도 가축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축으로부터 무엇을 제공받는지 알려야 하고, 그 교육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동물원이라고.

신선하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하든, 개인이 하든, 기관이 하든 왜 철학이 필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저도 아이들이 자신이 먹는 것, 입는 것, 사용한 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알려주고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관련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선택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동물이 색으로 말해요’, ‘동물의 행동’ 등 어린이를 위한 동물책을 많이 번역 집필한 것 같은데, 그런 이유인가?

“우리 세대는 이런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지만, 지금 어린 친구들도 그럴 순 없으니까. 아직 무게감 있는 책을 집필할 능력이 안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웃음) 다만, 어렸을 때부터 동물에 대한 생각이 정립될 때까지 시각의 다양성을 열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카라, 어웨어 등 국내 동물단체들이 학교로 찾아가는 동물복지, 동물권 교육활동을 하시는 것을 정말 응원한다.”

-공저자인 어웨어 이형주 대표와의 인연도 궁금하다.

“이 대표님과는 대학원 시절 길고양이 관련 연구를 기획할 때 처음 뵈었다. 일하시는 것을 보면 늘 놀랍고 존경스럽다. 특히 ‘시골개 1미터의 삶’과 국내 실내 체험 동물원, 야생동물 카페 위험성 등을 그동안 절박하지만 사각지대였던 부분을 잘 짚어내시는 것 같다.”

책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의 한 장면. 생각하는아이지 제공
책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의 한 장면. 생각하는아이지 제공

-최근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하 ASF),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더 바쁘셨을 것 같다. 어웨어와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동물카페 등을 통한 인수공통 전염병의 위험에 대해 말씀해오신 걸로 아는데?

“ASF 발생 뒤에는 야생멧돼지 관련 업무를 약간 거들고 있다. 야생동물질병 전문가도, 야생동물생태 전문가도 극도로 부족한 국내 상황에서, 해야할 일은 너무나 많을 것 같다. 어웨어와는 주로 도심에서 사람과 야생동물간의 부자연스러운 접촉기회를 제공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시설(체험동물원, 이동식 동물원, 야생동물카페 등)의 위험성에 대한 얘기를 해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보고 가두고 만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뿐이다. 인간에게 그럴 힘이 있다는 것. 그래도 괜찮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야생동물에게 거리를 둔다면, 메르스·코로나19 등 야생동물유래 질병의 위협의 발생 속도는 상당히 많이 늦출 수 있다.”

-동물과 인간과의 거리를 재정립해야 할 시기라고들 한다. 얼마나 멀어야 하나?

“아마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과 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하길 바랄 것 같다. 간혹 갈대밭이나 산에서 인기척을 느낀 고라니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지 경험해본 분들은 아실 거다. 기본적으로 야생동물과 인간의 건강한 거리는, 해당 야생동물에게 이동과 움직임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동물이 허용하는 만큼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만일 동물과의 거리두기를 무시한다면?

“신종질병은 머지 않아 또 나타날 것이다. 야생동물은 그들의 서식지에서, 인간은 이미 개발된 인간 서식지에서 충분한 거리를 유지할 때만 서로 ‘안녕’할 수 있다. 때문에 저는 야생동물학자로 살고 있지만, 야생동물을 직접 보고 가까이서 접하는 것보다는 일평생 제 눈으로 볼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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