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를 포항과 울릉도에서 보낸 터라 수산시장으로 비질을 간다고 했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과연 익숙했던 풍경을 이전과 다르게 느낄 수 있을까.
열댓 명의 사람들이 도심 속 대형 수산시장 구석구석을 배회한다. 단체 손님이라고 생각한 상인들이 저마다 열심히 호객행위를 한다. 그러나 손님들은 시선을 낮춰 수조 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싱싱한 횟감을 고르는 것일까? 상인들이 뜰채로 물고기를 건져 보여주며 가격을 흥정한다. 별 대답이 없자 중국어, 일본어로도 인사말을 건넨다.
‘수상한 단체 손님들’이 물은 것은 가격과 맛, 싱싱함이 아니었다. 그들은 물고기의 종 이름과 이들이 어디서 잡혔는지, 이 수조 속에서 얼마나 살아있는지 등을 되묻고 있었다. 마치 수족관에 견학 온 학생들처럼. 상인들은 웃으며 견학 왔냐고 묻는다. 그들은 “우리는 동물을 보러 왔다”고 답했다. 그렇다. 그들은 애도를 하러 온 것이다. 물고기가 아닌 ‘물살이’를 위한 비질(Vigil·도살장, 수산시장 등을 찾아 동물의 고통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일)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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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이 익숙했던 ‘어촌 사람’의 비질
나는 유년기를 포항과 울릉도에서 보냈다. 건어물 장사를 하는 친척을 둔 나에게 수산시장의 풍경은 일상이었다. 비릿한 생선 냄새는 곧 ‘고향의 냄새’기도 했다. 그렇기에 ‘서울애니멀세이브’에서 도살장이 아닌 수산시장에 비질을 가기로 했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혐오시설로 여겨져 외곽으로 밀려난 도살장이 아닌 도심 한복판 활력 넘치는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간다고?’
일단 걱정이 앞섰다. 너무나도 익숙했던 풍경을 내가 과연 이전과 다르게 느낄 수 있을까. 나뿐만이 아니었다. 비질 참가자들 대부분에게 수산시장이란 공간은 ‘처음’ 가보는 용기가 아닌 ‘다시’ 가보는 용기가 필요한 곳이었다.
2019년 10월 찾은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사전 신청을 통해 모인 15명의 참가자와 물살이들의 고통을 마주하러 갔다.
수산시장 첫 비질은 2019년 10월이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사전 신청을 통해 모인 참가자 15명과 함께였다. 오전 11시 수산시장 앞에 모인 우리들은 활어, 선어, 냉동, 건어물, 젓갈, 경매장까지 시장의 온갖 구역들을 빠짐없이 구석구석 걸어다녔다.
최대한 상인들이 아닌 물살이(수중 생물을 지칭하는 말)의 얼굴을 마주하려 노력했다. 자세히 본 그들은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수조 벽면에 부딪히며 빠져나가려 하거나 아가미를 헐떡이며 바닥에 가라 앉아있었다. 대부분의 수조는 그들의 몸집에 비해 턱없이 좁았다. 그나마도 여러 명이 들어간 수조는 너무 비좁아서 지느러미가 물밖으로 나와 있기 일쑤였다. 아예 밖으로 솟구쳐 나와 바닥에서 몸부림 치는 장어들도 눈에 띄었다.
여러 명이 들어간 수조는 너무 비좁아서 지느러미가 물밖으로 나와 있기 일쑤였다.
수산시장의 좁은 수조는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물살이들에겐 목숨이 끊어지지 않도록 물을 적시는 공간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미 죽은 것으로 취급됐다. 수산시장의 좁은 수조는 물살이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도록 물을 적시는 공간에 불과했다. 펄떡이는 아가미는 그저 싱싱함을 증명할 뿐, 그들이 살아 숨쉬는 동물이란 명백한 사실에 가닿지는 못했다. 때문에 물살이들은 산 채로 아가미가 썰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손님이 올 때마다 물살이들의 새빨간 피가 축축하게 젖은 수산시장을 물들이고, ‘아직’ 살아있는 물살이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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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물’이 달라 외면 받은 동물들
특히 기억나는 한 물살이가 있다. 내가 그의 눈을 바라보자 그도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몸이 물 밖으로 꺼내졌다. 뜰채에 꺼내진 그는 살아있는 채로 온몸의 비늘이 벅벅 긁혀졌다. 고통으로 그의 입이 벌어졌다. 마치 감자 껍질을 벗기듯 가차 없었다. 나를 쳐다보던 눈알이 긁혀 떨어져 나갔다. 뜯겨나가는 비늘과 각막을 보고 있자 몸이 저절로 움츠러 들었다. 내 몸에 칼날이 와닿는 듯 온몸이 저릿하고 눈이 시큰했다. 그의 눈이 떨어진 순간 내가 세상을 보는 인간 중심적 ‘렌즈’도 같이 떨어져 나갔다.
뜯겨나가는 비늘과 각막을 보고 있자 몸이 저절로 움츠러 들었다. 마치 내 몸에 칼날이 와닿는 듯 온몸이 저릿하고 눈이 시큰했다.
애초 우려와 달리 수산시장은 내게 완벽히 낯선 공간으로 다가왔다. 소중한 이들과 회를 먹으러 오는 게 아닌, 물살이들의 고통을 애도하는 목적으로 들어가니 새로운 시각이 열렸던 것이다. 이전에 소개했던 소, 돼지 도살장에서 우리는 내쫓겼지만, 이곳에서 손님으로서 환영 받았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들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자세히 마주하니, 하나하나가 경이로웠어요. 동시에 여기서 이렇게 물살이들을 마주하는 것 자체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어요.” 한 참여자가 ‘마음 나누기’ 시간에 말했다. 비질을 마치고 그날의 감상과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는 이어 “바다도 아닌 도시 한 복판에 물살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다른 참여자들도 수산시장 비질 뒤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았다. 익숙한 곳이고 언제고 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여 소, 돼지 도살장과 다르게 생각하였다고, 아직 ‘생선’까지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그러나 산채로 눈이 긁혀지는 것을 보고서는 아득해졌다고. 그동안 열심히 입에 넣는 것에 정신이 팔려 마주하지 못한 그 눈을 오늘에서야 보았다고.
광활한 바다에서 태어난 수천 킬로미터를 자유롭게 유영하던 그들이 왜 이곳 서울 한복판에 있어야 했을까.
도심 속 깔끔한 공간, 수산시장은 체험 ‘죽음의 현장’ 같았다 . 먼 바다에서 길어올려진 물살이들의 고통은 우리의 탐식, 혀끝에서 철저히 가려지고 무시되고 있었다. 난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란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광활한 바다에서 태어난 수천 킬로미터를 자유롭게 유영하던 그들이 왜 이곳 서울 한복판에 있어야 했을까. 시선을 달리하니 온 세상이 뒤집어졌다. 물살이를 우리는 ‘수산물(水產物)’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물건이 아니다. 단지 ‘노는 물’이 다를 뿐 우리와 같은 동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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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지혜의 달력’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생명체의 고통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할 때, 고통 받는 이로부터 멀리 달아나려는 처음의 욕망에 굴복하지 말라. 그와 반대로 고통 받는 이에게 할 수 있는 한 가까이 다가가 그를 돕기 위해 노력하라.”
비질을 마친 뒤에는 보통 인근 공원에서 감상과 소감을 나누는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수산시장 수조 앞에서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그들의 고통에 대해 말하면 할수록 내 말이 물속에서 익사 직전 내뿜은 공기 방울처럼 흩어져버리는 것 같았다. 비질의 목적은 잔인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어부와 상인을 악마화하고,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구분 짓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곳에 있으면 안되는 먼 곳에서 온 ‘낯선’ 얼굴을 마주하며 자본과 이윤에 뒤집힌 공간을 상상할 뿐이다.
나는 바다와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심 속 거대한 수산시장에 좁은 수조를 만들어낸 인간 종의 일원으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상인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고 있는 나는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물’에서 ‘뭍’으로 끌려나온 그들을 애도할 뿐이었다.
글·사진 섬나리 디엑스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