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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터줏대감 왕발이 사라진 팔당호, 누가 새 지배자 될까

등록 2022-01-03 13:37수정 2023-11-28 16:49

[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20살 넘은 참수리 암컷 2020년부터 자취 감춰…아직 어린 새끼 흰꼬리수리 등쌀 이길까
참수리 왕발이는 20살이 넘었을 암컷으로 팔당호의 지배자였지만 2020년부터 자취를 감췄다.
참수리 왕발이는 20살이 넘었을 암컷으로 팔당호의 지배자였지만 2020년부터 자취를 감췄다.

2014년부터 관찰해오던 참수리 ‘왕발이’가 2020년부터 보이지 않는다. 왕발이는 필자가 팔당에서 처음 만난 참수리로, 오른쪽 허벅지가 유난히 굵어 날 때 배에 다리가 밀착되지 않고 아래로 처진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팔당호 일대를 손금 보듯이 훤히 들여다보는 왕발이는 이곳 터줏대감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었다.

검단산에 자리 잡은 전망대에서 사냥을 기다리는 왕발이.
검단산에 자리 잡은 전망대에서 사냥을 기다리는 왕발이.

참수리 부부. 왼쪽이 암컷인 왕발이다. 수컷 ‘점박이’는 다소 작으며 몸매가 날렵하다.
참수리 부부. 왼쪽이 암컷인 왕발이다. 수컷 ‘점박이’는 다소 작으며 몸매가 날렵하다.

왕발이는 필자가 관찰하기 전부터 팔당에서 사냥을 해 왔고 검단산에 잠자리와 사냥 전망대를 마련해 둔 ‘검단산의 산군’이었다. 몸집이 큰 것으로 보아 암컷으로 추정된다. 분원리와 팔당대교 하류 당정섬을 영역으로 두고 당정섬에서 자주 관찰되는 다소 작은 참수리는 수컷으로 보인다. 수컷은 허벅지 깃털과 흰 꼬리 깃털에 검은 점이 있어 ‘점박이’라 불린다. 부부가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고 가족들이 모여 있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왕발이의 사냥 모습.
왕발이의 사냥 모습.

수컷 점박이의 사냥 모습.
수컷 점박이의 사냥 모습.

수컷 참수리의 허리와 허벅지 깃에는 검은 무늬가 있어 점박이란 이름이 붙었다.
수컷 참수리의 허리와 허벅지 깃에는 검은 무늬가 있어 점박이란 이름이 붙었다.

참수리는 차가운 사냥꾼처럼 보이지만 가족 간의 유대관계가 끈끈하고 새끼들을 지극히 돌보며 부부의 애정도 돈독하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형제들이 가끔 만나거나 가족과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검단산에 터를 잡아 해마다 월동했던 왕발이가 보이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다. 혹여 이동 중에 사고를 당했거나 번식지에서 갑자기 예기치 않은 일을 당한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본다. 수명이 다해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터울이 있는 참수리 형제.
터울이 있는 참수리 형제.

참수리 부부가 어린 새끼를 가운데 두고 앉아 있다.
참수리 부부가 어린 새끼를 가운데 두고 앉아 있다.

참수리가 팔당에서 처음 관찰된 것은 2005년쯤으로 보고 있다. 왕발이가 팔당에서 관찰된 햇수로 유추해 보면 20살이 훨씬 넘은 나이였을 것이다. 그동안 왕발이가 터울로 낳은 어린 참수리 세 마리를 관찰했고 새끼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다. 참수리는 성조가 되는 데 5년이 걸린다. 비록 왕발이는 보이지 않지만 그 새끼가 성조로 성장하여 팔당을 물려받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그러나 왕발이가 없는 참수리 가족은 세력이 약화했고 흰꼬리수리 성조 부부의 기세가 등등하다.

왕발이가 없는 팔당에서 흰꼬리수리가 기세를 부린다.
왕발이가 없는 팔당에서 흰꼬리수리가 기세를 부린다.

흰죽지는 흰꼬리수리의 단골 사냥감이다.
흰죽지는 흰꼬리수리의 단골 사냥감이다.

흰꼬리수리가 흰죽지를 사냥했다.
흰꼬리수리가 흰죽지를 사냥했다.

왕발이가 있을 때는 혼자 흰꼬리수리 서너 마리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왕발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이제 팔당에서는 참수리 4마리가 늘 관찰된다. 아비 한 마리와 성장한 새끼 두 마리, 그리고 3살로 추정되는 새끼 참수리가 그들이다. 그중 허리에 검은 점이 박혀있는 새끼 한 마리에게 ‘허리점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월이 지나면 왕발이의 용맹함을 이어받은 새끼들이 팔당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맨 왼쪽 노란 부리의 어린 참수리가 혼자 흰꼬리수리 무리에 맞서고 있다.
맨 왼쪽 노란 부리의 어린 참수리가 혼자 흰꼬리수리 무리에 맞서고 있다.

어린 참수리. 부모의 영역에서 보살핌과 생존 학습을 받는다.
어린 참수리. 부모의 영역에서 보살핌과 생존 학습을 받는다.

해를 거듭하며 어린 참수리들이 성장한다. 팔당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연속이다. 참수리와 흰꼬리수리가 함께 차지한 팔당에서 해마다 먹이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다툼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반복된다. 사냥감은 물고기류와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지만 흰죽지가 주로 사냥감이 된다. 맹금류는 부리가 긴 사냥감을 회피한다. 부리에 쪼여 눈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톱으로 움켜쥔 물고기를 흰꼬리수리가 빼앗으려 하자 수컷 참수리 점박이가 방어에 나선다.
발톱으로 움켜쥔 물고기를 흰꼬리수리가 빼앗으려 하자 수컷 참수리 점박이가 방어에 나선다.

참수리와 흰꼬리수리는 사냥에 성공하면 인근 산속의 은밀한 나무숲에서 먹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강가의 바위나 얼음이 언 강에 앉아 허겁지겁 먹기도 한다. 사방이 트인 곳에서 먹이를 먹으면 산 위에서 지켜보던 참수리나 흰꼬리수리가 그냥 바라만 보지 않는다. 서로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강탈은 겨울나기의 생존전략 중 하나다.

얼음판 위에서 물고기를 뜯어먹는 참수리 주변에서 흰꼬리수리들이 먹이를 강탈할 기회를 노린다.
얼음판 위에서 물고기를 뜯어먹는 참수리 주변에서 흰꼬리수리들이 먹이를 강탈할 기회를 노린다.

먹이를 강탈하려 달려드는 흰꼬리수리.
먹이를 강탈하려 달려드는 흰꼬리수리.

참수리 등에 올라타 먹이를 빼앗으려 하는 흰꼬리수리.
참수리 등에 올라타 먹이를 빼앗으려 하는 흰꼬리수리.

참수리도 흰꼬리수리의 먹이를 강탈한다. 사냥하는 것보다 빼앗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참수리도 흰꼬리수리의 먹이를 강탈한다. 사냥하는 것보다 빼앗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사냥감에 대한 애착과 먹이를 빼앗아 먹어야 하는 생존의 절박함, 다치지 않고 먹이를 빼앗기지 않도록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뒤엉킨다. 참수리는 정확한 판단과 인내심, 신중하고 용감한 모습으로 흰꼬리수리보다 우위를 점한다. 맹금류는 사냥한 먹이를 발로 움켜쥐고 비행하거나 먹이를 먹을 때 취약점을 드러낸다. 자신을 공격해 오는 다른 맹금류를 방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행 중 사냥감을 놓쳐 버리거나 땅에 앉아 먹던 먹이를 잠시 내려놓고 발로 방어해야 한다. 부리가 길고 날카로운 새라면 부리로 공격하겠지만 맹금류는 발을 주로 쓰는 동물이다. 부리는 먹이를 뜯어 먹기에 적합한 갈고리 형태로 잘 발달하여 있다.

참수리의 한가로운 한 때. 옆으로 큰고니가 유유히 지나간다.
참수리의 한가로운 한 때. 옆으로 큰고니가 유유히 지나간다.

몇 년 후엔 이 어린 참수리는 팔당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몇 년 후엔 이 어린 참수리는 팔당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먹기 위해 죽이고 서로 냉혹하게 먹이 경쟁을 하는 맹금류의 행동에 인간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자연 속에서는 그저 하나의 질서일 뿐 아닐까. 맹금류는 존재만으로도 그 지역 종의 다양성과 환경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매서운 겨울이지만 팔당과 검단산은 다양한 새들의 생명력이 넘쳐나는 열기로 가득하다.

왕발이 생전 모습.
왕발이 생전 모습.

일반적으로 번식지가 더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반도를 찾아와 월동하는 새들은 후대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풍요로운 월동지가 더 중요하다. 월동지에서 충분한 영향을 섭취해야 종의 번성을 이어나갈 수 있다. 사람도 쾌적한 환경에서 살기를 원하듯 생활의 풍요로움이 안정된 삶의 질을 높인다. 동물들이 살아가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 인간의 간섭으로 훼손되면 동물들은 기존에 살던 곳과 비슷한 장소를 차선책으로 활용하지만 더 나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 결국 생존의 질이 떨어져 절멸 위기로 몰리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왕발이는 진정한 팔당의 지배자였다.
왕발이는 진정한 팔당의 지배자였다.

우리나라에서 참수리 성조를 관찰할 기회는 매우 드물다. 주로 어린 새끼들이 관찰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찾아오는 경우도 드물다. 왕발이의 부재는 서운하지만 후세들이 이곳을 찾아와 대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경이롭다. 팔당의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참수리 가족은 약속의 땅을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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