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삼이’라고 불리는 KM-53은 2017년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돼 지리산으로 ‘회수’됐지만, 연이어 수도산으로 돌아가 화제가 됐다. 결국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그를 수도산에 방사했고, 지금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반달곰의 생태와 의지를 존중한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2017년 여름, 지리산 반달곰 ‘케이엠(KM)-53’이 지리산에서 100㎞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 반달곰을 포획해 지리산으로 되돌려놨으나,
이 곰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까지 두 번이나 수도산으로 향했다. 결국,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반달곰의 ‘의지’를 존중했다. 세 번째 방사 때, 이 곰을 지리산이 아닌 수도산에 놓아준 것이다. 김천시는 케이엠-53을 환영했다.
이 곰을 ‘오삼이’로 부르면서, 지역 대표 캐릭터로 삼았다. 지역 특산물 홍보에 사용하고, 스마트폰 이모티콘으로 제작했다. 오삼이는 지금도 수도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리산 반달곰 관리 기법이 개체를 ‘통제’하는 방식에서 생태와 행동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2일 <한겨레>가 지리산 반달곰 복원 사업을 평가하고 향후 10년 계획을 담은 환경부의 ‘제2차 반달가슴곰 복원 로드맵(2021~2030년)’과 중단기 세부이행계획인 ‘반달가슴곰 보전계획(2021~2027년)’을 입수해 분석해보니, 정부는 개체 수를 불리는 기존의 ‘종 중심 야생 복원’ 대신, 주변 생태계와 건강한 관계를 맺고 반달곰이 번성하도록 북돋는 ‘서식지 관리’ 방식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지난 복원 사업에서 중시된 ‘반달곰 목표 개체 수’도 사라졌다.
반달곰 복원 사업은 2000년 지리산에서 극소수의 반달곰 서식이 확인되면서 필요성이 제기됐다. 방치할 경우 20년 이내 국내 반달곰이 멸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20년 50마리(최소 존속 개체군)를 목표로 하는 ‘개체 수 불리기’ 작업에 돌입했다. 러시아 등에서 반달곰을 들여와 지속해서 방사하는 한편 야생에 적응하지 못하는 곰은 사육 시설로 옮겨와 키우는 방식이었다.
2004년 시작된 종 중심의 야생복원은 일정 부분 효과를 거뒀다. 2018년 반달곰 수는 56마리로 최소존속 개체 수를 넘어섰고, 케이엠-53을 필두로 반달곰들이 지리산이 아닌 새 서식지로 떠나기 시작했다. 현재 야생 서식 반달곰 79마리 가운데 4마리가 덕유산(전북 무주), 가야산(경남 합천), 수도산(경북 김천) 등 지리산 바깥에서 산다. 수컷인 이들은 짝짓기 철에 지리산으로 돌아온다. 지리산으로 한정됐던 서식지가 백두대간 북쪽으로 확산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경북 김천의 대표 캐릭터인 반달곰 ‘오삼이’가 2018년 야생으로 풀려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하지만 기존 복원사업의 한계도 지적된다. 두 계획서는 기존의 종 중심 관리법에 대해 ‘50마리 달성’ 목표 외의 구체적인 복원 사업이 부족했고, 민원 발생에 대비하는 데 사업이 집중돼 장기적인 생태계 모니터링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반달곰 보전 전략을 ‘개체 수 불리기’에서 ‘서식지 관리’로 전환하고, 개체군의 확장과 안정적인 서식지 환경을 조성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목표 개체 수는 큰 고려 사항이 아니고, 반달곰이 생태계에 자리 잡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반달곰이 도토리 등 열매를 먹으며 종자 확산을 하는 등 한반도 생태계 건강성에 기여하는 핵심종이기 때문이다. 반달곰은 도토리 등을 먹고는 일부를 그대로 배설해 종자 확산을 돕는다. 환경부는 △서식지 건강성 평가 △반달곰 확산 경로 예측 △질병 관리체계 구축 △반달곰에 의한 멧돼지 밀도 조절 가능성 연구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
반달곰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인간이 반달곰의 일방적인 관리자가 아니라, 반달곰에 맞춰 인간의 행동을 조율하기로 한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보전사업에 참여하는 ‘프라이드 캠페인’ 등을 마련하고, 민관 기구인 ‘반달가슴곰 공존협의체’도 넓어진 반달곰 서식지에 맞춰 확대됐다. 경북 김천∙성주, 충북 영동, 전북 무주 장수, 경남 합천 등 반달곰의 이동 경로에 있는 지방정부들은 전기 울타리를 설치해 반달곰과 주민 충돌을 막고, 주민 간담회를 열어 반달곰 보전의 필요성 등을 알리고 있다. 이런 활동은 ‘인간-반달곰 공존 문화’의 조성으로 두 계획서에 명문화했다.
인간과 반달곰과의 관계를 연구한 한국과학기술원 인류세연구센터 최명애 연구조교수는 “과거 반달곰 복원 사업은 인간이 정한 서식지에, 인간이 정한 수만큼의 동물을 인간의 계획에 맞춰 투입하는 인간중심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하지만 이번에 새로 시행된 계획에서는 서식지를 확대하는 반달곰의 안전한 이동과 건강한 서식지를 만드는 것으로 핵심 전략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K-53에 대한 김천시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태도는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반달곰이 복원 사업의 대상만이 아니라 고유의 생태와 활력을 갖고 함께 복원 사업을 수행하는 파트너가 된 것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