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새 H96(맨 앞). 오른쪽 다리에 이름표가 있다.
국적: 대한민국, 본적: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 수하암, 태어난 해: 2017년, 이름: H96
양쪽 다리에 유색 가락지와 이름표를 단 저어새의 고향은 영종도 북단의 수하암이다. 요즘 갯벌서 사냥 배우기에 한창인데, 사진도 어미를 따라 막 갯벌로 나가는 장면이다. 사냥이 서툰지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할 때도 있다. 아무리 졸라도 어미는 더 이상 먹이를 나누지 않는다. 가락지는 6월12일 한국물새네트워크 소속 연구원이 채웠다. 늦가을이면 대만이나 홍콩으로 떠났다가 봄이면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날아올 것이다.
더 각별한 이름을 가진 저어새도 있다. 2010년 인천 남동유수지 인공 섬(지름 몇 미터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섬이다!)에서 생후 12일 된 새끼가 둥지서 미끄러졌다. 섬이 너무 가파른지 새끼가 다시 올라가기 힘들었다. 안간힘을 써 겨우 섬에 오르면 재갈매기가 새끼를 물어 던진다. 인공섬에서 같이 사는데 자신의 둥지 주변으로 접근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재갈매기가 물어 던지기를 여러 차례. 새끼가 무려 5시간 만에 둥지로 올라왔다. 며칠 후 한국물새네트워크 소속 연구원들이 가락지 작업을 위해 섬에 들어갔다. 무작위로 가락지를 채웠는데, 이 새 다리에는 K94가 채워졌다. 그 뒤 `구사일생’으로 불렸다.
전 세계에 3356마리만(2016년 1월 저어새 동시센서스) 남아있는 저어새 중 1천여 쌍이 우리나라 서남해안 갯벌 주변 섬에서 번식한다. 한국물새네트워크가 매년 50여 개체에 가락지 작업을 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서 태어나는 개체의 2% 정도다. 우리나라는 K, 일본은 J, 대만은 T, 홍콩은 A, 러시아는 R를 사용한다. 각 알파벳당 100개씩인데 우리는 숫자가 많아져서 K, E, S, H, V 순서로 알파벳을 추가했다. H와 V는 야외에서 식별이 쉬운 문자라고 한다.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저어새는 부리가 넓적하다. 얕은 물을 부리로 휘휘 저어 ‘저어새’다. 영어로는 ‘spoonbil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