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노란빛을 띠는 하얀 뺨. 덜 자란 수컷 알락할미새다. (사진 1)
알락할미새가 훌쩍 날아왔다. 물때에 맞춰 갯벌에서 도요·물떼새를 기다리던 위장텐트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연한 노란색을 띈 뺨을 보니 아직 덜 자란 수컷이다. (사진 1)
뺨에 노란빛이 감돈다. 잠자리를 물고 있는 알락할미새. (사진 2)
이번 겨울이 지나면 얼굴에 노란색이 사라져, 다 자란 새처럼 변할 것이다. 새는 가까이 다가오며 종종걸음치다 멈추곤 이번엔 꼬리를 연신 아래위로 흔든다. 호들갑스럽게 짖고 까분다. 물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사냥에 성공했다. 잠자리가 희생양이었다. 이슬에 젖은 날개가 채 마르지 않았다. (사진2)
기약 없이 새를 기다리는 일은 무료하다. 지루함을 조금 덜어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카메라 앞에서 할미새는 호들갑스럽게 연신 꼬리를 까분다. 렌즈로 알락할미새를 따라다니며 새를 기다린다.
할미새는 앉아 있을 때 꼬리를 흔드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찌나 꼬리를 아래위로 흔드는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할미새의 영어 이름도 ‘wagtail'이다. ‘흔들다’(wag)와 ‘꽁지’(tail)를 합친 것이다. 할미새가 꼬리를 들고 까부는 모습은 민요 가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새가/날아든다/새가/날아든다’로 시작하는 새타령을 부르다 보면 ‘저 할미새/이리로 가며/히빗쭉/저리로 가며/꽁지 까불까불/ 뱅당당 그르르/사살맞은/저 할미새/좌우로 다녀/울음 운다’는 대목도 나온다. ‘방정맞고 호들갑 떠는’ 할미새 행동은 옛사람들 눈에도 띄었나 보다.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에서 만난 검은턱할미새. 턱이 검은색이다. (사진 3)
`검은턱할미새`는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노보시비리스크에서 만났다. 명성만큼 턱밑에서 멱까지 검은색이 뚜렷했다. 알락할미새 아종으로, 국내에서는 드문 나그네새다. 허공을 날더니 금방 부리에 먹이를 가득 물었다. (사진3, 4) 배고픈 새끼가 먹이를 재촉하니, 쉼 없이 사냥에 나섰나 보다. 자세히 보니 입에 문 먹이가 곤충이다. 날개 달린 먹이를 연달아 입에 문다. 여름이 짧은 시베리아 어미 새의 사냥 기술이 놀랍다. 추위가 오기 전 어린 새를 독립시켜야 하는 어미 새의 마음이 바쁜가 보다.
처음 보려고 했던 새는 `시베리아알락할미새’다. 알락할미새와 달리 등이 회색이다. 생김새가 비슷한 알락할미새 아종은 전 세계 11종이나 된다. 깃갈이를 마치지 않은 어린 새는 구분이 어려워 성별과 아종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암컷의 머리 색깔은 자세히 보면 수컷과 다르다. (사진 6)
노랑머리할미새(사진 5)는 3천m 이상 고봉이 즐비한 알타이공화국 울란드릭 계곡에서 만났다. 알타이 고원의 눈과 얼음이 녹아 생긴 냇가 옆에서 둥지를 찾았다. 풀숲 사이에 어린 새가 있었다. 이 새는 우리나라에선 1994년 4월 제주 하도리에서 처음 관찰됐다. 머리에서 아랫배까지 짙은 노란색이 눈에 띈다. 목 뒤에서 옆까지 검은 띠도 있다. 경계심이 강해 위험을 느끼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고 날아오른다고 했다. 이방인이 둥지에 접근했지만, 어미는 연신 먹이를 물어왔다. 어린 새의 이소를 눈앞에 두고 어미 마음이 급했나 보다. 머리 전체가 노란 수컷과 달리 암컷은 엷은 회색 머리에 이마 앞쪽만 노랗다. (사진 6)
글·사진 김진수 <한겨레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