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한 먹이를 먹는 어린 매의 모습이 당당하다.
한강하구에 있는 경기도 파주시 공릉천은 필자가 자주 찾아가 조류 관찰을 하는 곳이다. 한강하구와 평야의 특징적인 환경요소 때문에 다양한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2월13일 공릉천은 간조와 맞물려 강바닥이 드러난 상태여서 왠지 휑한 느낌이 들었다. 종일 탐조했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다.
오후 5시께 논 가운데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어렴풋이 보인다. 쌍안경을 꺼내 확인해 보니 매다. 사냥한 먹이를 뜯고 있었다. 공릉천 농경지에서 매를 만난 것은 뜻밖이다. 차량을 이동해 서서히 접근했다.
사냥감을 거의 다 먹은 상태였다. 매의 먹이 주머니가 아주 불룩하다. 필자를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먹이를 먹는다. 매의 가슴과 배에 세로무늬가 난 것으로 보아 어린 개체다. 그러나 어른 매 못지않게 당당한 모습이다.
먹이를 먹는 가운데도 주변 경계는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매가 자리를 뜬다. 멧비둘기를 사냥해 허기를 충분히 채운 것 같다. 일찍 발견했으면 좀 더 관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스쳐 간다. 그런데 사냥감이 잘 보이지 않는다.
논에 뿌려놓은 거름 덩이 위에서 먹이를 먹고 남은 것을 거름 덩이 속에 묻어 놓은 것 아닐까. 매가 남은 먹이를 묻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모를 일이다. 저녁 빛에 매가 먹다 흘린 살덩이가 유난히 붉게 보인다.
2월14일 매가 있던 자리를 찾아갔다. 혹시 다시 오진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매는 나타나지 않았다. 2월16일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는 큰말똥가리가 매가 숨겨놓은 사냥감을 먹고 있었다.
곁에서 쇠황조롱이도 함께 한다. 의도하지 않은 나눔이지만, 그저 자연생태의 원리에 따른 행동이리라.
어린 매가 남겨 놓은 먹이를 먹고 있는 큰말똥가리.
부스러기라도 차지하려고 주변에서 눈치를 살피며 기다리는 쇠황조롱이.
2월 17일 매를 만났다. 이번에는 어른 매다. 한 지역에서 서로 다른 매를 만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사냥을 해 깃털은 다 뽑아버리고 먹기 좋게 살코기만 발라 놓았다. 매는 부리로 먹이를 먼저 조아놓고 뜯어먹는다.
모든 맹금류가 그렇듯이 먹이를 먹을 때는 유난히 주변 경계가 심하다. 먹이를 가지고 있을 때는 방어력이 약화하고 먹이를 강탈당할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먹이를 거의 다 먹어갈 무렵 매의 행동이 이상하다. 그 순간 갑자기 다른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어린 매다. 먹이를 먹는 매를 보고 날아온 것이다. 먹이에 접근해 보려고 어린 매가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다가가 본다.
어른 매가 먹이를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을 깨닫고 점잖게 물러서 있더니 한참을 서성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히 알린 다음 포기하고 돌아서서 날아간다. 어른 매에게 가까이 날아들어 먹이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보아 서로 아주 모르는 사이는 아닌 것 같다. 혹시 독립한 새끼가 어미를 찾아왔다 냉정한 내침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행동이 깔끔하다. 지난번에 만난 어린 매로 추정해 본다. 새들은 정해 놓은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습성이 있다. 매는 둥지를 벗어나 어미를 떠나면 나이와 상관없이 당당하고 대범한 행동으로 자신의 앞가림을 하며 번식기를 제외하고 단독 생활을 한다.
4월과 5월은 매가 선택한 전략적인 번식기로 많은 새의 이동과 맞물려 있다. 이때 철새들은 도서 지역을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매는 바다에서 사냥감을 챙겨 벼랑에서 번식하고 새끼를 키우며 풍요롭게 생활한다. 그러나 겨울에는 현지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 어른 매의 먹이를 빼앗으려는 어린 매의 연속 동작
갑자기 어린 매가 달려든다. 화들짝 놀라는 어른 매(왼쪽).
먹이를 빼앗을 기회를 엿보며 슬금슬금 다가서는 어린 매.
불꽃 튀는 눈싸움으로 먹이를 강탈할 기회를 노리지만 여의치 않다.
한동안 신경전을 펼치더니 어린 매가 힘없이 돌아선다. 아직은 노련한 어른 매를 상대하기가 버거운가 보다.
어린 매 자존심이 구겨졌다. 괜한 동작으로 거드름을 피운다. 그래야 체면이 살 것 같다.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한판 붙어 볼만도 한데 왠지 겁이 난다.
어린 매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속 편하게 자리를 뜬다.
한참 뒤 어른 매도 먹이를 다 처리하고 자리를 떠났다.
매는 겨울철에는 오히려 육지로 이동해 살아가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섬에서 생활하던 매가 육지 쪽으로 나와 농경지나 개활지 등 다양한 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매가 겨울에는 농경지에서 자주 관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는 일반 철새들처럼 먼 거리를 이동하지는 않는 텃새지만 매도 나름대로 철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철새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