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우리의 상상력을 한국사회나 인류사회의 지평 너머로, 지구와 우주의 지평으로 확장해주는 강력한 시각자료다. 지금 우리가 한국만이 아니라 지구라는 우주선에도 실려 살아가고 있음을, 이 사계의 전령들 덕에 우리는 겨우 알아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은 자신의 책 ‘한국통사’의 첫머리에서 조선의 지리를 다루었다. 지리만 두고 보면 “조선은 동아시아의 이탈리아”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저자는 조국의 강산에 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이탈리아와 비교해 이 나라가 단연 월등한 한 가지 지리생태 요소에는 미처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1910년대 중국 땅에서 망국의 한을 품고 한국사 원고를 집필하던 박은식에게 남에게 내주고 만 모국 땅은 육신을 넘어 영혼의 고향이었을 것이다. 찾아가 만나야 하는 어머니와 고향이라는 이데아는 바로 그 땅에 있었다. 그런 그가, 모성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땅인 서해와 갯벌을 주목하지 않았다니, 퍽 안타까운 일이다.
20세기가 저물 무렵, 박은식의 이 빈자리를 글로 채워 ‘한국통사’의 지리 편을 반절이나마 완성한 이가 있으니, 작가 김훈이다. 당시 자전거를 끌고 한반도 남쪽의 구석구석을 누볐던 그의 눈은 과연 예리했다.
“서해는 조국의 여성성이다. 달에 이끌리는 서해는 발해만 깊숙이까지 가득 차올라 산둥 반도와 랴오둥 반도를 적시고, 한반도 서쪽 연안에 넘친다.”
달은 서해를 깊이 당겼다가 놓는데, 그래서 “서해는 깊이 밀고 멀리 썬다.”(김훈, 자전거 여행, 문학동네)
이런 ‘밀당’의 과정에서 저절로 태어나고 자란 드넓은 개흙 땅. 때로는 바다의 품에 안기지만, 때로는 육지라는 집으로 돌아가는 하이브리드 대지. 무려 700종이 넘는 생물의 서식지이기도 한, 넓고 길게 뻗은 이 축축한 표면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우리의 보물이다.
때로는 바다의 품에 안기지만, 때로는 육지라는 집으로 돌아가는 하이브리드 대지. 무려 700종이 넘는 생물의 서식지이기도 한 갯벌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우리의 보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땅은 지구의 보물이기도 하다. 지난 1월 문화재청은 서천, 고창, 신안 갯벌 등을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제라도 갯벌의 세계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 알아봤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타지에서 박은식이 그리워하던 조선의 서해안이고, 서해안 만경강 하구를 박은식 대신 (그는 1925년 상하이에서 서거했다) 걸으며 김훈이 눈으로 보듬었던 모국의 갯벌이지만, 나그네새들에게는 그저 무국적의 땅일 뿐이다.
봄과 가을이면 뉴질랜드 땅끝이나 러시아 땅끝 같은 곳에서 어김없이 날아드는 이 여행자들은 지구를 끌고 이 땅에 도착한다. 이들의 도래와 함께, 서남해안가 갯벌과 염전, 내륙의 저수지와 논, 호수와 강가 같은 습지 일원은 한국 땅인 그대로 지구를 품는다. 이들 덕에 이 땅들은 잠시간 ‘잠재적·실제적 국토개발지’의 지위를 벗어나 지구 안의 습지로 복구된다.
_______ ‘보물’을 찾아오는 철새
이 땅에 사는 사람도 덩달아 은덕을 입는다. 철새는 우리의 상상력을 한국사회나 인류사회의 지평 너머로, 지구와 우주의 지평으로 확장해주는 강력한 시각자료다. 지금 우리가 한국만이 아니라 지구라는 우주선에도 실려 살아가고 있음을, 이 사계의 전령들 덕에 우리는 겨우 알아챈다.
그러나 이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태평양을 건너는 나그네새들로서는 이 땅이 최적의 임시 기착지이기에 잠시 내려올 따름이다. 바다를 건너기 직전이나 직후에 만나는 최후 또는 최초의 땅인 데다 먹을거리가 지천이니 이곳이야말로 그들의 ‘살 곳’이었다. 바다라는 사막 속의 오아시스. 습지라는 작은 숨구멍.
서남해안의 철새들
정말 그런 걸까? 데이터는 우리의 느낌에 살을 붙여준다. 이 땅에서 기록된 조류 중 90%가 텃새 아닌 철새로 밝혀졌다. 충남 서천의 한 자그마한 섬을 관찰한 결과 이 섬을 방문하는 개체 수만 연간 39만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그네새와 이 땅 사이에 오가는 애정이 이렇듯 자별하다.
이곳을 찾아드는 수만 마리의 도요새 무리의 비행은 장엄하다. 이들은 뭉치고 펴며 시시각각 거대한 동물이나 산의 모양을 짓다가는 허물고, 허물다가는 짓는다. 새를 사랑하는 화가 김재환은 어느 해 봄, 경기도 화성의 농섬 위를 날고 있는 도요새 무리를 화폭에 옮겨 이 장엄함을 상상케 해준다.(이 그림은 그의 책 ‘새를 기다리는 사람’에 실려 있다)
김재환이 그린 붉은어깨도요
서로 말을 주고받기 위해 충분히 가까이서 움직이면서도 충돌하는 법이 전무한 청어 떼처럼, 그림 속 도요 떼도 여럿이 같은 길을 열어가면서도 집단 내부에 악다구니가 전혀 없는 협동의 진풍경을 보여준다.
길게는 수만 킬로미터라는 비행 거리는 철새들의 고지능을 일러준다. 이들의 비행에는 “지각, 주의, 거리 계산, 공간 관계 파악, 의사결정 등 여러 인지능력”이 필요하며, 이런 능력을 갖춘 능력자들은 방향을 잡는 과정에서 “지형, 태양, 자기장”을 이용한다. 또한 이들은 공중에서 긴밀히 협력하며 개별자의 비행력에 안배를 하는데, 낙오자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치밀한 행동이다.(제니퍼 애커먼, 김소정 옮김 ‘새들의 천재성’, 까치)
김재환이 농섬 근처에서 목격한 도요새는 붉은어깨도요(Great Knot)들로, 이 새들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EAAF, East Asian Australasian Flyway, 한반도는 이 경로의 일부이다)를 오가며 살아간다.
이 녀석들은 무슨 조화인지 서해안의 특정 지역을 선호한다.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선 전체가 갯벌”이며 “폭 20킬로미터가 넘는 갯벌도”(김훈, ‘자전거 여행’) 있는 만경강, 동진강 하구의 망망한 갯벌도 그 일부를 이루는데, 공교롭게도 이 서식지는 새만금 개발 대상지와 같은 땅이었다.
만경강, 동진강 하구와 서해를 잇는 오래된 자연의 연결선을 끊으며 땅을 인클로저(enclosure, 사적 도용을 위한 또는 법적 조치를 통한 공적 대지의 봉쇄)하고, 누천년 간 달과 서해가 빚어낸 저서생물들의 삶터에서 생명의 기운을 제거하는, 실로 그로테스크한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붉은어깨도요들은 급감했다.
아시아 지역과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
오스트레일리아 조류학자들에 따르면 새만금 공사 개시 후 붉은어깨도요의 개체 수는 무려 10만 마리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2010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이 새를 취약(Vulnerable, VU) 등급으로 구분하기에 이른다. 한때 붉은어깨도요의 낙원이던 땅은 이제는 이들의 실낙원이다.
철새의 낙원이냐 실낙원이냐. 생명 학살이냐 보호냐. 커먼즈(commons)의 봉쇄(인클로저)냐 커먼즈의 보존이냐. 단기적 개발 이익이냐 (생태계 보호를 통한) 장기적 경제 이익이냐. 한국의 세계 웅비냐 남 부끄럽지 않은 한국이냐. 이 두 가지 정신의 힘들이 대립하는 생태 전쟁의 몰풍경 안쪽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길고 추악한 어느 방조제 언저리로, 올해도 도요새들이 지구를 모시고 날아들었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
새만금 방조제. 출처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
새만금, 학살의 둑
붉은어깨도요와 새만금 개발 간 충돌 사례는 특이 사례가 아니다. 물길을 차단하여(干) 갯벌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드는(拓) 간척(干拓) 사업은 이곳의 갯벌을 삶터로 살아온 철새들의 삶이라는 사업과 이 땅에서 줄곧 충돌해왔다.
일례로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넓은 갯벌을 극성스럽게 ‘밀어버리고’ 인천국제공항을 만들었을 때도 수많은 철새가 서식지를 잃어버렸다. 경제성장과 편리성의 증폭이라는 역사의 배면에는 이렇듯 철새 축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숨어 있다. 바꿔 말해, 간척사업이 본격화된 1980년대부터 한반도 남쪽에서는 갯벌 생태계의 보존과 파괴를 둘러싼 일종의 생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새만금 개발사업은 1987년부터 계획되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계획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물막이 공사는 완료되었지만, 땅에 구조물을 세우는 공사는 2019년 12월 현재 착공 전이다), 희대의 국토개발 실패작이다.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는 광대한 갯벌(면적 409㎢)에서 생명력을 천천히 추출하고, 그렇게 조성된 죽음의 땅 위에 ‘만금(萬金)의 새 삶’(그래서 새만금이다)을 도모하겠다는 인류 최대 그로테스크 상상 기획. 지난 2009년, 서해와 하구의 물길을 막는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어 세상에 위용을 드러낸 방조제는 세계 최장 길이로 약 34km에 이른다. 김택근 시인의 표현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긴 학살의 둑”이다.
개발사업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것만 두고 보면 독재 정부와 민주 정부가, 이명박근혜 정부와 그 이후의 정부가 다르지 않아서, 정부는 지난 11월 27일 ‘새만금개발공사 주요사업 계획’을 확정했다.
‘스마트 수변도시’를 만들겠다는 말이 요란하고,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플랜이 반지르르한데, 수천 년간 조형된 생명의 땅을 수년간 죽음의 땅으로 변질시키려는 이 계획의 반생태성, 반미래성에 대한 자성의 음성은 티끌만큼도 찾기 어렵다.
이런 나라가 ‘세계 철새의 날’을 기념한다며 국제철새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군산의 갯벌은 무참히 죽이면서 그 바로 위 서천의 갯벌은 세계문화유산에 값한다고 세계를 향해 외치고 있으니, 외계인이 지구인의 심리와 행태를 분석한다 할 때 필시 두 손 두 발 들고 “알 수 없음”이라고 결론 낼 지구 구성원들이 이곳에 있다.
이제라도 개발사업을 생태계 복원 사업으로 변경해 ‘정신분열’을 끝내야 하지 않을까. 이제라도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의미 있는 단어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