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초원이 주 서식지인 나그네새 분홍찌르레기가 군산 어청도에서 발견됐다.
4월 19일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찌르레기와 함께 있는 낯선 새를 발견했다. 희귀한 나그네새 분홍찌르레기였다. 기회를 놓칠세라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귀한 몸이라 그런지 잠시 모습만 보여주고 바로 날아가 버렸다.
아쉽지만 만난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흐린 하늘과 세찬 바람, 보슬비까지 살짝 내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조류를 관찰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곳저곳 둘러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홍찌르레기는 등과 몸 아랫면이 회색빛이 도는 옅은 분홍색을 띤다. 검은 머리 깃털이 풍성하지 않고 댕기 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어린 개체로 보인다.
분홍찌르레기는 군집성이 강하고 긴 다리로 땅바닥을 걸어 다니며 곤충이나 떨어진 씨앗을 먹는다. 특히 메뚜기를 즐겨 먹지만 잡식성이다. 개방된 환경을 좋아하고 전깃줄에 앉기도 한다.
번식기의 분홍찌르레기 수컷은 머리에 긴 댕기 깃이 생기는데, 흥분하면 깃털이 부풀어 오르고 더 두드러진다. 겨울에는 댕기 깃이 짧아지고, 깃털 안에 있는 검은 깃털은 가장자리가 닳아 더욱 가늘어진다.
큰 무리를 짓는 분홍찌르레기는 곡물과 과일 농가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꽃 피는 나무에 강하게 이끌린다. 그러나 메뚜기 등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농가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5~6월 동안 메뚜기가 가장 많이 번성하는 시기에 번식을 한다.
이 새의 서식지인 중국 신장은 1980년대 메뚜기떼로 골머리를 앓았다. 살충제를 살포해 해충을 잡는 대신 메뚜기를 잘 잡아먹는 분홍찌르레기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인공둥지를 많이 설치해 분홍찌르레기를 유인한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 새가 너무 번성해 먹이인 메뚜기가 부족하자 새끼가 굶어 죽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상적인 이동 경로에서 멀리 벗어난 분홍찌르레기는 아마도 비바람을 헤치고 온 모양이다. 깃털이 부풀어 오르고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
어린 분홍찌르레기는 머리의 짧은 깃털로 구별이 가능하다. 가을이 되면 어린 새도 어른 새처럼 등과 몸 아랫면을 분홍색으로 물들이지만, 머리에 풍부한 깃털이 아직 부족하다. 분홍찌르레기 암컷은 거의 1살, 수컷은 거의 2살이 될 때까지 성인 깃털이 나지 않는다. 분홍찌르레기의 몸길이는 22㎝, 머리와 꼬리 날개는 광택이 있는 검은 깃이다. 등과 몸 아랫면이 분홍색이다. 허리, 다리는 회색을 띤 분홍색이다.
분홍찌르레기의 번식지는 중앙아시아와 유럽 남동부의 초원지대와 반 사막 지대이다. 몽골 북서부에서 중국 신장,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러시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까지 볼 수 있다. 월동지는 인도와 열대 아시아이다.
분홍찌르레기는 주로 초원과 개방된 농지에서 사는 새다. 메뚜기와 다른 곤충이 늘어나면 이 새의 서식지도 확장하는 특징이 있다. 유럽으로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올해 메뚜기떼가 동아프리카에서 창궐해 이란, 인도, 파키스탄을 거쳐 중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반도에까지 온 분홍찌르레기가 올해 부쩍 늘어난 메뚜기떼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비를 맞은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깃털을 말리려고 깃털을 부풀리고 있다.
분홍찌르레기는 2000년 5월 경기도 양수리, 2002년 9월 군산 어청도에서 발견된 이후 어청도에서 8년 만에 다시 발견되었다. 필자는 해마다 여름 철새 이동 시기에 맞추어 어청도로 향하지만, 올해는 관찰되는 새의 종류가 많지 않다.
기온이 따뜻해 꽃들이 일찍 피었기에 새들도 빨리 이동하리라 추측하여 3월 말 어청도에 갔으나 새들이 적고 다양하지 않아 탐조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불규칙한 날씨가 4월 내내 계속되면서 새들이 이동 시기를 늦추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든다. 예년에 비해 적은 수의 새들만 눈에 띈 것은 새들이 본능적으로 환경과 기후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청도에 머무는 6박 7일 동안 거센 비바람과 열악한 탐조 조건에 애를 먹었다. 검은머리방울새와 개똥지빠귀, 검은딱새만 보일 뿐이다. 5월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객 분홍찌르레기를 맞이한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초원의 새 답게 풀밭에서 먹이를 찾는 분홍찌르레기.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