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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100마리 남은 토종 ‘양비둘기’를 만나다

등록 2020-07-17 10:54수정 2023-11-28 16:58

[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집비둘기 등쌀과 잡종화로 위기…원앙도 울고 갈 오글오글 사랑꾼
양비둘기 부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양비둘기 부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양비둘기(낭비둘기, 굴비둘기)는 국내에 100여 마리밖에 남지 않는 것으로 추정하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7월 4일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에서 이들을 만났다. 천년 고찰 화엄사의 웅장한 대웅전과 각황전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들의 서식지다.

화엄사 대웅전은 양비둘기의 서식처다.
화엄사 대웅전은 양비둘기의 서식처다.

용마루 위에 양비둘기들이 앉아 있다.
용마루 위에 양비둘기들이 앉아 있다.

높은 용마루 위에 비둘기 모습이 얼핏 보인다. 마음이 설렌다. 집비둘기인지 양비둘기인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냥 집비둘기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다. 도심 공원에 주로 사는 애물단지 집비둘기와 큰 차이 없어 보인다.

양비둘기의 모습.
양비둘기의 모습.

양비둘기 무리에 섞여 있는 집비둘기.
양비둘기 무리에 섞여 있는 집비둘기.

양비둘기와 집비둘기의 잡종. 날개 가장자리가 흰색이고 허리와 꼬리의 흰색과 검은색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양비둘기와 집비둘기의 잡종. 날개 가장자리가 흰색이고 허리와 꼬리의 흰색과 검은색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양비둘기는 집비둘기와는 전혀 다른 종으로 해안의 깎아지른 높은 벼랑의 오목한 바위나 바위 구멍, 산악지역의 협곡, 바위투성이의 군락지에 둥지를 튼다. 표준 호칭인 양비둘기보다 낭비둘기라는 이름이 더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굴비둘기라고도 한다. ‘양’이란 접두어는 흔히 서양에서 들어온 외래종에 붙인다. 양비둘기란 명칭이 토종인데도 서양 비둘기 혹은 외래종 비둘기로 착각하게 한다.

양비둘기는 허리와 꼬리 끝부분에 흰색과 검은색의 구분이 명확하다.
양비둘기는 허리와 꼬리 끝부분에 흰색과 검은색의 구분이 명확하다.

처마 밑으로 날아드는 양비둘기.
처마 밑으로 날아드는 양비둘기.

화엄사의 양비둘기가 대웅전과 각황전, 명부전 용마루와 처마 밑을 오가며 바쁘게 움직인다. 용마루는 구애와 짝짓기의 장소로, 처마 밑과 현판 뒤는 둥지로 이용하고 있다. 현판 뒤에 양비둘기 대여섯 마리가 나뭇가지와 식물 줄기를 사용하여 길고 평평하게 둥지를 만들어 각자의 자리를 정해놓고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운다.

양비둘기가 둥지를 만들기 위해 마른 솔잎을 입에 물었다. 마른 솔잎을 사용하는 이유는 송편을 빚을 때처럼 솔잎의 살균 효과를 염두에 두었을지 모른다.
양비둘기가 둥지를 만들기 위해 마른 솔잎을 입에 물었다. 마른 솔잎을 사용하는 이유는 송편을 빚을 때처럼 솔잎의 살균 효과를 염두에 두었을지 모른다.

쉼터와 짝짓기 자리로 이용되는 지붕과 용마루는 지정석이 있어 자리다툼을 하며 밀어내기를 한다. 평화로운 화엄사 가람에서 양비둘기의 영역 다툼은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사교적인 양비둘기는 물어뜯는 큰 싸움보다 기 싸움으로 밀어내기 방식을 택한다. 떼 지어 경작지에서 함께 먹이를 먹기도 한다. 양비둘기는 화엄사에서 약 3㎞ 떨어진 노고 마을 앞 대지 저수지 인근 평야에서 먹이 활동을 한다.

음수대에서 목을 축이며 목욕을 즐긴다.
음수대에서 목을 축이며 목욕을 즐긴다.

양비둘기는 슬며시 자주 땅바닥으로 내려와 태연하게 사람 눈치를 살피며 돌아다닌다. 사람을 그다지 경계하진 않지만 그래도 신중함이 보인다. 음수대를 거리낌 없이 이용한다. 각황전 앞 음수대와 심전 안의 음수대에서 물을 먹고 목욕도 마음껏 즐긴다. 물을 먹는 과정에도 서열이 명확하다.

7월 초인데도 화엄사에는 둥지를 만드는 양비둘기가 있는가 하면 짝짓기도 하고 알도 품고 이미 새끼를 기르는 개체도 보인다. 번식기는 3월에서 10월까지이나, 이르면 2월에서 늦으면 12월까지 지속해서 연중 번식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자기 영역에 들어온 상대에게는 코앞까지 다가가 제자리에서 서너 바퀴 빙글빙글 돌며 경고한다. 지붕이나 용마루 위에 있다면 끝까지 몰아붙여 날아가게 한다. 특이하게도 상대를 쫓아낼 때만 빙글빙글 도는 것이 아니라 구애할 때도 같은 행동을 보인다.

양비둘기의 입맞춤.
양비둘기의 입맞춤.

양비둘기의 애정 표현은 원앙이 울고 갈 정도다. 입맞춤도 하고 서로 몸을 비벼대며 부리로 서로의 깃털을 어루만진다. 충분한 사랑의 몸짓으로 애정을 주고받고 나서야 짝짓기를 시도한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짝짓기한다. 짝짓기 때마다 사랑의 몸짓 행위를 어김없이 되풀이한다. 오전보다는 오후 4시~6시께 짝짓기 행동을 자주 보였다.

짝짓기는 시간을 길게 허비하지 않는다. 짝짓기 전 충분한 사랑의 교감을 나누는 시간이 더 길다.
짝짓기는 시간을 길게 허비하지 않는다. 짝짓기 전 충분한 사랑의 교감을 나누는 시간이 더 길다.

양비둘기는 집비둘기보다 몸매가 탄력 있고, 번잡하지 않고 여유로우며 유난히 빠른 걸음이지만 잔망스럽지 않고 당당하다. 옆으로도 걸으며 땅 위에서 사는 새처럼 행동이 능숙하다. 날다가 날개를 접고 쏜살같이 활공하기도 한다. 공원의 집비둘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독특한 야성의 모습이 돋보인다.

양비둘기는 한반도와 연해주, 중국, 시베리아, 티베트 중부, 히말라야 그리고 몽골과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에 분포한다. 세계적으로는 개체수가 많아 멸종 걱정은 없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먹성 좋고 번식력이 뛰어난 집비둘기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무엇보다 이종교배로 잡종 비둘기들이 많아지면서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추적 장치를 짊어진 양비둘기. 어딘가 힘겨워 보인다.
추적 장치를 짊어진 양비둘기. 어딘가 힘겨워 보인다.

토종 텃새인 양비둘기는 1980년대까지 전국 남·서해안 절벽과 사찰에서 흔하게 관찰되었으나 개체수가 급감하여 국내에 100마리 미만의 개체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부는 2017년 양비둘기를 멸종 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했다.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필자가 관찰한 결과 30여 개체가 확인되었다. 잡종 비둘기 2개체도 있었다. 연구를 위해 추적기를 단 양비둘기도 보였다. 화엄사 인근에 있는 천은사에는 2~6개체가 관찰되었으나 작년 하반기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양비둘기는 고풍스러운 처마나 기와의 문양과 잘 어울린다.
양비둘기는 고풍스러운 처마나 기와의 문양과 잘 어울린다.

속리산 법주사, 임진각 등 내륙의 번식 무리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사찰 번식 개체는 배설물 탓에 성가신 존재로 여겨지고 집비둘기로 오해받기도 한다. 1995년까지 30여 개체가 서식했던 전남 청산도를 비롯해 도서 지역의 집단도 거의 사라졌다. 전남 고흥 거금도 등 극히 일부 도서 지역에서 적은 수가 번식한다.

몸길이 33~35㎝이며 몸무게 240~300g으로 수컷이 다소 크다. 암수 모두 머리, 얼굴, 턱밑은 짙은 회색이고 뒷목과 가슴은 광택이 있는 녹색과 분홍색 빛이 난다. 어깨, 날개덮깃, 가슴 아랫부분은 회색이며 허리는 순백색이다.

양쪽 날개에는 두 줄의 폭넓은 검은색 띠가 세로로 선명하다. 날개 밑면은 흰색이며 꼬리 끝에는 흰색과 검은색 띠가 분명하다. 부리는 검고 콧등은 흰색이다. 눈은 적색, 눈동자는 검은색이며 다리는 붉다.

흰색 알을 2개 낳으며 17~18일 동안 포란하고, 육추 기간은 17~19일이다. 양비둘기는 매우 작은 씨앗을 좋아하고 곡식과 달팽이 등 작은 연체동물로 식단을 보충한다. 일반적으로 1500~5500m까지 높은 고도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토종 비둘기인 양비둘기가 낭비둘기라는 이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집비둘기에 밀려 우리나라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양비둘기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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