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면 캐나다에서는 물범 사냥이 시작된다. 수십만 마리의 하프물범이 번식을 위해 북극에서 캐나다 뉴펀들랜드와 세인트로렌스만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어미 물범들이 얼음 조각 위에 낳은 어린 새끼들을 노린다. 털갈이를 시작하지 않은 새끼들의 하얀 모피는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나 새끼 물범들에게는 고통스런 봄이 될 전망이다.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은 기후변화로 역사상 가장 적은 해빙이 형성된 올해 하프물범 사냥을 금지해야 한다고 캐나다 정부에 12일 호소했다.
※주의: 기사와 영상에 동물의 사체, 잔혹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캐나다 정부 과학자들은 기후변화 탓으로 올해 새끼 하프물범들이 대량 사망할 것으로 예상했다. 새끼들이 충분히 강해지기 전에 얼음이 녹아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물범 사냥이 재개된다면 하프물범 개체 수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자들은 물범의 서식지인 뉴펀들랜드와 세인트로렌스만의 해빙 면적이 해마다 점점 좁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의 조사에 따르면, 사냥에서 죽은 물범의 98%는 생후 3개월 미만의 새끼였다. HSI제공
2016년 촬영된 하프물범 사냥 모습. 기후변화로 해빙의 면적이 좁아지며 물범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은 더욱 악화됐다. HSI제공
게다가 해빙이 빨리 녹아내리면서 물범 사냥 방식 또한 더 잔인하게 바뀌고 있다. 물범이나 사람이 서 있기에 얼음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멀리서 물범에게 총을 쏜다. 물범이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사냥꾼들은 배에서 갈고리가 달린 길다란 장대를 이용해 물범의 사체를 낚아챈다.
이 과정에서 간혹 물범들은 죽기 전에 배 갑판 위로 끌어올려지거나 녹아내린 해빙 아래로 빠져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2001년 현장을 조사한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의 수의사들 보고에 따르면, 상당수의 하프물범들은 무자비하게 사냥당한 뒤 가죽이 벗겨지는 순간까지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장시간 고통에 방치되어 있었다. 캐나다 정부는 물범을 단번에 죽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물범들을 고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번에 의식을 잃게 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2016년 촬영된 하프물범 사냥선. HSI제공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이 이날 성명과 함께 공개한 2016년 물범 사냥 현장 영상에도 이같은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좁고 위태로운 해빙 위에 남겨졌던 물범은 총에 맞아 괴로워 하다가, 사냥꾼의 갈고리에 낚여 갑판 위로 끌여올려진다. 배 위에는 이미 가죽이 벗겨졌거나 피범벅이 된 물범의 사체들이 가득 실린 모습도 포착됐다.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사냥에서 죽은 물범의 98%는 생후 3개월 미만의 새끼였다. 2002년 이후에만 2백만 마리 이상의 물범들이 죽임을 당하면서 캐나다의 상업 물범 사냥은 지구상 가장 큰 규모의 해양 포유류 도살로 기록되고 있다.
비인도적 사냥 방식과 잔혹성이 알려지며 최근에는 관련 산업의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미국은 이미 1972년에, 그리고 유럽연합은 2009년 하프물범 관련 제품의 상업적 거래를 금지시켰다. 현재는 호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36개국 이상이 관련 제품의 수입을 금지해 캐나다 대서양에서 생산된 하프물범 모피 가격이 급격히 하락했지만, 동부 해안에서는 여전히 매년 수백 마리의 물범이 사냥 되고 있다.
하프물범. HSI제공
앞서 2011년에는 한국이 캐나다산 하프물범 기름의 최대 수입국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기름의 상당부분은 건강보조식품 ‘오메가3’의 원료로 사용된다. 당시 버려지는 고기 일부도 한국으로 수출돼 ‘오력탕’이란 이름으로 팔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레베카 올드워스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캐나다 국장은 “캐나다 동부 해안의 해빙에 급속한 악화를 일으키고 있는 기후변화는 물범사냥의 대상이 되는 어린 하프물범들에게는 재앙이다. 캐나다 정부는 어렵게 살아남은 새끼들의 도살을 당장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