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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감염된 게 죄? ‘메르스 해임 공무원’의 1년 분투기

등록 2016-07-12 11:11수정 2016-07-12 22:18

메르스 ‘날벼락’은 현재 진행형

작년 삼성서울병원 어머니 간호
16일 뒤 증상 나타나 확진
‘무개념 공무원’ 여론 뭇매

정부 발생병원 늑장 공개하고
“잠복기는 14일” 설명해 혼란 키워

대구, 지각신고 이유 해임 의결
김씨 “내 잘못도 있지만 너무 가혹”
소송 이겼지만 다시 징계 움직임

방역체계 뚫린 정부는 놔두고
김씨에게만 돌 던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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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에 대하여 공무원 신분을 박탈하는 처분을 하는 것은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위법하다.”

지난달 10일 대구고법은 이렇게 판결하며 ‘메르스 무개념 공무원’으로 불렸던 김아무개(53)씨의 손을 들어줬다. 공무원인 김씨는 지난해 대구지역의 유일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였다. 김씨는 지난 8일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어 지난 1년 동안 죄인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나에 대한 욕설을 들으면서 가족들도 많은 상처를 받았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김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메르스가 전국으로 확산되던 지난해 6월15일, ‘메르스 청정지역’이었던 대구가 뚫렸다. 대구의 첫 메르스 확진자는 대구 남구 대명3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던 6급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김씨였다. 그는 메르스에 전염되고 17일 동안 출근을 하는 등 일상생활을 했다. 경로당 업무를 맡았던 김씨는 경로당 3곳을 돌며 노인들을 접촉했고 동료 직원들과 회식을 했고, 예식장, 장례식장, 식당, 목욕탕을 다녔다. 김씨는 메르스 의심 증상이 나타나자 스스로 신고했다.

김씨는 공무원 신분으로 ‘늑장 신고’를 했다는 지적과 함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역언론에서는 ‘무개념 공무원 메르스 불렀다’거나 ‘미필적 고의 상해죄 적용할 수도’ 같은 보도를 하며 김씨를 거세게 비판했다. 인터넷에서는 ‘대구 메르스 공무원을 사형시켜야 한다’, ‘대구에 낙타가 17일 동안 돌아다녔다’라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해 6월16일 메르스 확산방지 간담회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공무원이란 사실에 대해 시민들의 공분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때 몸 상태가 나빴던 김씨는 완치돼 지난해 6월26일 경북대병원에서 퇴원했다. 김씨 확진 판정 이후 대구에서는 다른 메르스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7월6일 정부가 사실상 메르스 종식 선언을 하자 김씨는 잊혔다.

지난해 8월1일 대구 남구는 ‘늑장 신고로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공직자로서 시민에게 불안감을 심어줘 지방공무원법상 복종·성실·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김씨를 해임했다. 그는 해임이라는 징계가 너무 가혹하다며 대구시에 소청심사를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8월20일 법원에 남구청장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법원은 왜 ‘메르스 무개념 공무원’으로 몰렸던 김씨의 손을 들어줬을까. 김씨는 지난해 5월27일 대전에 사는 누나와 함께 허리가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그는 어머니가 허리 치료를 받는 이틀 동안 병원에 머물렀다. 병원비는 자신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는 병원에 머물던 둘째 날인 5월28일 응급실에서 14번째 메르스 환자로부터 전염됐다.

김씨가 삼성서울병원에 갔을 때 이곳에서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때만 해도 정부는 메르스 환자 발생·경유 의료기관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구로 돌아온 그는 대명3동 주민센터에 출근해 업무를 보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했다.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부가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메르스 환자 발생 의료기관을 공개한 것은 지난해 6월7일이었다. 김씨가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되고 10일이 지났을 때였다. 김씨는 이때 처음으로 자신이 다녀온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왔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렀고 몸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흘 뒤인 6월10일 그와 함께 삼성서울병원에 다녀온 누나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충남대병원에 격리됐다. 김씨가 메르스에 감염되고 13일이 지났을 때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김씨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김씨는 이틀 뒤인 6월12일 매형으로부터 누나가 메르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처음 전해들었다. 김씨가 메르스에 감염된 지 15일이 지났을 때였지만, 여전히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김씨에게 몸살 등의 증상이 나타난 것은 다음날인 6월13일이었다. 삼성서울병원에 다녀온 지 16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부가 밝힌 메르스 최대 잠복기(14일)가 이틀이 지나 있었다. 그는 단순히 감기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다음날인 6월14일 오후 1시30분께 남구 대명5동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다.

당시 정부는 “메르스의 잠복기는 평균 5일 정도다. 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짧게는 2일, 길게는 14일 정도 지난 후 증상이 발생한다. 14일 동안 증상이 없다면 자가격리를 해지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최대 잠복기인 14일이 지나서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들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메르스 최대 잠복기를 늘려잡는 대신, 아예 확진자들의 발병일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감기가 떨어지지 않자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6월15일 연차휴가를 내고 남구보건소를 찾았다. 그는 6월16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대구 첫 메르스 확진 환자인 공무원 김아무개씨가 지난해 6월17일 오후 집중치료를 받기 위해 휠체어에 탄 채 대구의료원에서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첫 메르스 확진 환자인 공무원 김아무개씨가 지난해 6월17일 오후 집중치료를 받기 위해 휠체어에 탄 채 대구의료원에서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7일 대구 남구는 김씨에 대해 지방공무원법상 성실·복종·품위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중징계를 내려 달라고 대구시 인사위원회에 요구했다. 지방공무원법상 경징계(견책·감봉)는 기초자치단체에서 내리지만, 중징계(정직·강등·해임·파면)는 광역자치단체 인사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7월30일 대구시 인사위원회는 김씨의 해임을 의결했다. 임병헌 남구청장은 이에 따라 지난해 8월1일 김씨를 해임 처분했다.

김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해임이라는 징계 처분을 다시 살펴봐 달라며 대구시에 소청심사를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8월20일 남구청장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대구지법 행정2부(재판장 백정현)는 지난해 12월15일 “해임은 불이익이 너무 커서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위법하다. 남구청장은 김씨에 대한 해임 처분을 취소하라”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김씨는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또 삼성서울병원에 방문한 지 15일이 경과해 메르스 최장 잠복기(14일)가 지난 상태여서 김씨가 메르스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쉽게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남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하지만 지난달 10일 대구고법 행정1부(재판장 정용달)도 원심과 마찬가지로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열흘 동안 고민하던 남구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고, 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남구는 다시 대구시 인사위원회에 김씨에 대한 중징계를 의결해 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권태형 남구 부구청장은 “법원 판결은 김씨에 대한 해임이라는 징계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지 김씨가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대구시 인사위원회 일정과 맞춰서 이르면 이번주에 중징계를 요청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구시 행정부시장으로 김씨의 해임 의결을 한 인사위원장을 맡았던 정태옥 국회의원(대구 북구갑)은 “개인적으로 당시 김씨에 대해 해임이라는 징계를 내리는 것은 좀 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김씨에 대한 여론이 너무 좋지 않아서 외부·내부에서 참여한 인사위원들이 좀 무리하게 징계 수준을 결정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남은 징계 절차를 의식한 듯 김씨는 조심스러운 태도다. 그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물론 나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은 있었지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당시 보건복지부와 대구시가 발표한 자료와 법원 판결문 등을 살펴보면, 정부는 메르스 추적관리 실패 책임을 김씨에게 떠넘겼다. 2심 재판부는 “김씨가 메르스가 발병한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해 신용카드로 어머니의 병원비를 결제했음에도 관리 당국은 김씨에 대한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감염 이후 9일 동안은 정부가 메르스 발생 의료기관을 공개하지 않았고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김씨가 신고를 하기는 불가능했다. 정부가 밝힌 최대 잠복기 14일을 이틀 넘겨 증세가 나타난 김씨가 스스로 보건소를 찾기 전까지 방역당국이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정부는 메르스 발생 병원도 늑장 공개했고, 최대 잠복기도 허술하게 잡아 혼란을 줬다. 김씨에게 누나의 메르스 감염 사실을 통보해주지도 않았다. 과연 이 공무원 한 명의 책임으로만 몰아갈 수 있는 것일지, 고위 공무원들 중 메르스 사태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졌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메르스 사태의 근본 문제점은 국가 방역체계가 뚫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구에서는 공무원 신분이라는 이유로 대구시와 언론이 김씨에게 책임을 덮어씌웠다”고 말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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