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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부려먹기 쉬운’ 10대들의 현장실습…‘철학이 있는’ 직업교육 절실

등록 2017-11-07 07:15수정 2017-11-07 11:54

[밥&법] 10대 노동의 현주소
콜센터 자살 등 현장실습 10대 죽음 거듭
고교생, 대학 대신 사회진출 택하는데
직업교육 시스템·노동현장은 준비 안돼
교육부의 현장실습 개선안 ‘양날의 칼’
“철학 있는 직업교육 체계 세워야”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회의 회원들이 지난 3월 서울 구로동 엘비(LB)휴넷 신도림 서부금융센터 앞에서 열린 진실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희생자에 대한 추모엽서를 쓰고 있다. 사진 김봉규〈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회의 회원들이 지난 3월 서울 구로동 엘비(LB)휴넷 신도림 서부금융센터 앞에서 열린 진실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희생자에 대한 추모엽서를 쓰고 있다. 사진 김봉규〈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11월13일은 열악한 노동 현실을 알리며 22살 나이에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47주기 기일이다. 전태일 열사는 어린 시절부터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갖은 설움을 겪었다. 47년이 지난 오늘날 10대의 노동 현실은 어떨까.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하는 10대가 점점 늘고 있는 현실에서 10대의 아르바이트 현장과 직업교육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는 3학년 조민현(가명·18)군은 올해 2학기가 되자 현장실습을 나갔다. 공업용 냉동기계를 만드는 경기도 화성의 한 중견기업이었다. 실습할 회사를 알아볼 때만 해도 근무 조건이 좋아 마음에 들었다. 직원 200여명 규모로 생긴 지 30년 된 안정된 회사인데다 병역특례의 기회도 있었다. 정부로부터 ‘좋은 일자리’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만하면 괜찮다 싶었던 조군은 지난 9월말 첫 출근을 했다. 6개월간 일한 뒤 정규직이 될 기회가 오면 어엿한 직장인이 될 것이라는 희망도 품었다.

희망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았다. 조군은 출근 하루 만에 실습을 포기한 채 학교로 돌아왔다. 회사라는 곳은 조군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현장실습 협약을 맺을 때 회사 쪽이 구두로 약속한 업무는 영업직이었다. 전자과인 조군은 전공보다 영업을 배우고 싶었다. 영업직 업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첫 출근 날 회사는 “비어 있는 영업직 자리가 없다”며 조군을 다른 업무에 배치했다. ‘케이싱 작업’이라는 공정이었다. 냉동 장비의 표면에 철판을 덧대는 작업이었다. 기계과가 아니었기에 조군은 용접을 배우지 않았다. 조군이 “용접을 할 줄 모른다”고 하자, 회사는 그를 전기 공정에 투입했다. 조군이 오자 전기 공정 부서의 직원들은 “일도 많은데 실습생까지 가르쳐야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했다.

겨우 한 직원에게 매달려 업무를 배우고 있는데, 이번엔 본부장이 조군을 불렀다. “다음주 추석 연휴에 계속 공장에서 일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학교에서 받은 노동인권교육이 떠올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직업교육훈련법)을 보면 현장실습은 하루 7시간, 일주일에 35시간까지만 가능하다.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야간노동이나 휴일노동은 금지된다.

집에서 회사까지 출퇴근할 교통편이 없었던 김군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 입소할까도 생각했다. 기숙사에서 지내려면 부장·과장 등과 한방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고 난 뒤 마음을 고쳐먹었다. 조군은 고민 끝에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너무 괴로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이튿날 학교에 가려니 담임 선생님과 취업부장 선생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이튿날 담임 선생님은 “실습생한테 그런 식으로 대하는 회사라면 학교도 보내고 싶지 않다”며 조군을 위로했다. 위로는 잠시였다. 조군은 현장실습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온 다른 학생처럼 ‘복교 프로그램’을 들어야 했다. 프로그램은 마치 ‘벌’처럼 느껴졌다. 며칠 뒤 조군과 함께 각 회사로 실습을 나간 18명의 같은 반 친구 가운데 또 한명이 돌아왔다. 그 친구가 간 곳은 방진복을 입고 일해야 하는 반도체 회사였는데, 발에 맞는 방진화를 구하지 못했다. 회사는 맞춤 제작도 해주지 않았다. 실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군이 말했다. “학생들은 현장실습 나갈 때 자신의 미래를 걸고 최대한 준비해서 나가거든요. 그런데 정작 고교생 현장실습생을 받는 업체는 그에 걸맞은 준비를 전혀 안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 노동 아닌 교육으로 현장실습 전환한다는데… 지난 1월 한 통신사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이 “나 콜수 못 채웠어”라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기아차 현장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졌고, 2014년 야간 교대 노동을 하던 현장실습생은 공장 지붕이 내려앉아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에는 외식업체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실습생이 사건·사고에 노출되는 일이 잦아지자, 현장실습제도 전반에 대한 대대적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국 사회가 교육 또는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학생한테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기업이 10대 고교생 신분인 현장실습생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값싼 임금에 충성도 높은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노동자를 구하기 힘들어 애를 먹는 중소기업은 현장실습생을 통해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도 한다. 현장실습이 갖는 교육 효과나 노동권 보호의 가치는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일부 단체는 현장실습제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는 현장실습제도에 관한 우려를 반영해 지난 8월말 첫 사회관계장관회의 결과물로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현장실습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6개월 ‘근로’ 중심으로 행해지던 현장실습을 1개월 안팎의 ‘학습’ 중심으로 바꾼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실습생의 신분도 ‘학생 및 근로자’에서 ‘학생’으로 바꿨다. 교육부는 “현장실습이 학습이 아닌 조기 취업으로 인식되다 보니 기업은 빠르게 현장에 투입해 생산성 높이는 데 관심이 크고, 학교는 취업률 높이기에 혈안이 된다”며 현장실습을 ‘근로’에서 ‘교육’으로 전환한 배경을 설명했다.

교육부는 현장실습 개선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법적 근거가 되는 직업교육훈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특성화고 학생의 현장실습을 의무화했던 기존 조항을 삭제해 무리한 현장실습이 이뤄질 가능성을 줄이고, 계약 사항을 지키지 않은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지금도 현장실습에 앞서 학생과 학교, 기업이 근로조건 등이 담긴 ‘표준협약서’를 쓰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에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고교 현장은 기대 반 우려 반 “특성화고 온 이유가 인문계 학생들보다 일찍 전문성 기르고 자기 분야에서 빨리 일자리 갖고 싶어서인데, 앞으로 현장실습도 ‘교육’이 되면 취업 기회가 줄어드는 것 아닌가요?”(서울의 한 특성화고 학생 ㄱ)

“특성화고에 왔지만 대학에 가서 좀더 공부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사실 많은데, 현장실습 6개월이 큰 부담이었어요. 현장실습을 1개월로 마칠 수 있다면 앞으로 대학 진학의 길도 좀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경기도 한 특성화고 학생 ㄴ)

직업교육훈련법 개정에 대한 특성화고 학생들의 반응은 이렇듯 엇갈린다. 기업이 현장실습을 1개월밖에 받지 않은 미숙련 학생을 꺼려 현장실습 이후 채용 기회가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반면, 무조건 실습을 나가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진로를 모색할 수 있어서 좋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실습생을 학생 신분으로 규정하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빚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은 “현재 학생들은 실습 나갈 때 진짜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고, 회사들도 실습생을 받을 때 실제 노동을 시킨다. 현장실습 중인 실습생의 신분이 학생으로만 규정되면 실습 도중 산재 등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업교육훈련법을 일부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정부가 원하는 ‘교육’ 목적의 현장실습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종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자체가 교육에 초점을 맞춘 법이 아니라 ‘산업인력의 양성’이나 ‘국가경제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법 조항 몇 개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학생들이 실습하는 산업체 역시 저임금 노동력 확보의 수단으로 현장실습을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법 개정만으로 현장실습이 근로 아닌 교육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등은 직업계고 현장실습의 근거를 직업교육훈련법이 아닌 초중등교육법에 마련해야 한다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철학 있는 직업교육 체계 만들어야 2017년 교육기본통계를 보면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은 68.9%로 나타났다. 100명 중 31명이 고교 졸업 후 대학이 아닌 사회 진출을 택했다는 뜻이다. 대학 진학률은 꾸준히 내려가고 있는 반면, 고교생의 취업률은 2011년 23.3%에서 2017년 34.7%로 크게 높아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수년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등 대졸자 취업난이 도드라지다 보니 대학 졸업장 대신 빠른 취업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직업교육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정부는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에 꾸준히 지원하고 있지만, 취업률 등 양적 성과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교육철학이 빈곤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전명훈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전문관은 “직업교육은 철학이 중요한데, 얼마나 취업을 많이 했는지 용접을 얼마나 잘하는지 등 양적 지표와 기능적인 숙련만 강조해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일자리가 생겨날지, 미래 세대는 어떤 노동 형태를 맞이하게 될지 예측하고 그에 걸맞은 직업교육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직업교육의 국가 책임’과 ‘직업교육 마스터플랜 마련’을 약속했다. 특성화고, 전문대, 평생교육까지 각각 분절돼 있는 직업교육을 하나의 체계로 엮은 뒤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지원을 하자는 취지다. 배동인 교육부 직업교육정책과장은 “현재 정부에서는 글로벌 현장학습, 취업역량 강화사업, 행복기업 어울림 사업 등 직업계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갖가지 취업 지원 사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사업들이 직업교육 체계를 갖고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 그저 일회성 사업에 그친다”며 “직업계고부터 전문대, 평생교육기관까지 이어지는 직업교육 체계를 세우는 일을 이번 정부 내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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