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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오월의 사제’ 조비오 몬시뇰 선종

등록 2016-09-21 17:34수정 2016-09-21 21:59

21일 새벽 췌장암으로 세상 떠…마지막 통장 잔고는 0원
80년 5월 시민 희생 막기 위해 ‘죽음의 행진’…진상규명
21일 오후 광주 임동성당에서 열린 조비오 신부 추모 미사에서 신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21일 오후 광주 임동성당에서 열린 조비오 신부 추모 미사에서 신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오월의 햇살처럼 따스하면서도, 강직한 사제였다. 21일 선종한 조비오(본명 조철현) 신부는 ‘자신에겐 엄격하면서도 어려운 이웃들에겐 온화하게 다정한’ 사제였다. 그러나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행동하는 신부였다. 조 신부는 이날 새벽 3시20분 췌장암으로 선종했다. 향년 78.

조 신부는 지난 9일 조카 신부인 조영대 광주 용봉동 주임 신부 앞에서 ‘병자 성사’를 했다. 2008년 1월16일에는 국내에서 28번째로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고인은 조카 신부 앞에서 “주여, 나약한 인간으로서 과실이 있다면 용서해 주십시요. 그리고 이 고통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조 신부는 미리 작성한 유언서를 통해 “책과 유품을 소화자매원에 기증해달라. 몸 안 장기는 아픈 환자를 위해 기증해달라”고 당부했다.

조 신부는 “5월의 사제”다. 고인은 80년 5월26일 오전 9시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계엄군을 저지하기 위해 광주 지역 민주인사들과 함께 “총 맞아 죽을 각오로 나섰던”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 참여했다. 80년 5·18 당시 온건 수습파로 불린 고인은 ‘광주 시민들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선 무기를 반납해야 한다’며 총을 든 시민군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하기도 했다. 80년 5월 이후 조 몬시뇰은 구속 기소돼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내란음모 사건에 엮여 넉달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는 5월 진상규명 투쟁에도 동행했다. 초대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1989년 열린 5·18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에 나와 "신부인 나조차도 손에 총이 있으면 쏘고 싶었다"며 신군부의 시민학살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당시 신군부가 헬기에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것을 본 조 신부님은 주변의 민감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호하게 증언하셨다”고 회고했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진상규명 투쟁에도 힘을 보태주셨다. 5월 사람들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특유의 엄격함으로 정의와 원칙을 강조하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월과 광주는 조 신부님께 빚을 졌다”고 말했다.

그가 남긴 통장 잔고는 0원이다. 유품이라곤 “닳아빠진 낡은 양복과 이부자리, 책장 2개” 정도다. 400여권의 책은 조 신부가 이사장을 맡아온 소화자매원에 기증된다. 하지만 조 신부의 유언과 달리 그의 장기는 다른 이에게 기증할 수 없게 됐다. 온 몸에 암이 퍼진 탓이다. 조 신부는 4년 전부터 몸에 이상증상을 느낀 주변에서 “병원에 가보자”고 권유할 때마다 “호들갑 떨지말라”며 병원 검진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7월 처음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고인은 2주 전께 췌장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인은 생전에 “80년 5월 우리가 어려울 때 광주를 도왔던 아시아 여러 나라의 도움을 기억해야 한다”며 5월 정신의 실천을 강조했다. 김양래 상임이사는 “조 신부님은 꼬깃꼬깃한 현금을 모아 3차례에 걸쳐 2000만여원을 광주인권평화재단에 기부하셨다”고 말했다. 조 신부는 5·18을 왜곡·폄하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저런, 저런, 저런 어떻게 5월을…”이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광주의 앞날을 걱정”했다. 친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우리 광주도 숭고한 5월 정신을 잊지 않고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신부는 ‘늦깎이’로 사제가 됐다. 1938년 광주 광산구 본량동에서 6남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1962년 늦은 나이에 광주가톨릭신학교에 1기로 입학한 그는 영어와 독일어, 라틴어에 능통했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전남 나주성당에서 첫 주임신부를 맡았다. 지인들은 “70년대 나주 성당 주임신부 때부터 민주화운동에 힘을 보태셨다”고 말했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의 사목 생활을 끝낸 뒤에도 여전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울타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1989년부터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의 이사장을 맡아 정신지체장애인 200여 명을 돌보는 수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또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으며 한반도 평화운동에 힘을 보탰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 않았다.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는 “목놓아 우셨다”고 한다. 옥현진 광주대교구 주교는 “아프고 상처받은 이웃들에겐 사비를 털어 돕고 고민을 들어주던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사제였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회고했다.

이날 고인의 빈소는 광주 임동성당 지하강당에 마련됐다. 고인은 영정 속에서 편안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이날 오후 2시께 300여명의 신자와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모 미사에서 참석자들은 고인의 영면을 기도했다. 소화자매원의 한 수녀는 “일이 생기면 울타리 역할을 해주셨다. 운영에는 간섭하지 않으셨고, 자애로운 사제이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은 23일 전남 담양군 천주교공원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날 빈소엔 쌀 조화가 많았다. 장의위원회는 평소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조화 대신 쌀 조화를 받았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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