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주팀장 하나둘씩 촛불을 들고 모인 도로는 어느새 거대한 촛불의 바다가 되었고, 구호와 구호는 거리를 뒤덮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교육시키겠다며 온 가족을 데리고 온 가장, 올레길을 걷다가 촛불을 들고 온 관광객, 제주가 좋아 몇 해 전 이주했다는 이주민, 대놓고 참가하진 못하지만 광장 한 귀퉁이에서 지켜본다는 공무원, 주말마다 광장을 찾는 중·고등학생들, 촛불의 바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아이에서 노년까지 주말마다 제주시청 광장은 그렇게 모여든 촛불과 촛불이 일상이 돼 흘러가는 중이다. 만추에 시작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향한 촛불은 초겨울 찬바람 속에서도, 비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촛불은 횃불로 번지고 있다. 온 나라가 광화문 광장이다. 광장은 매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정성과 도덕성을 내팽개치고 상식을 뒤집어버린 데 대한 분노의 민심이 쓰나미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지난 주말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들이 모였듯이, 제주도에서도 역대 최대의 촛불이 모여들었다. 이날 집회의 앞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60~80대의 4·3유족들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는가. 각계의 숱한 반발 속에서도 불통의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국정 역사 교과서는 우려했던 대로 친일의 역사 축소와 독재 미화 등 왜곡된 역사관이 그대로 드러났다.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에 나온 ‘제주4·3사건’ 기술은 제주도의 촛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제주도가 일본 땅으로 둔갑했는가 하면, 제주4·3사건 기술은 역사의 축소와 왜곡, 오류를 드러냈다. 현행 검정교과서도 아쉽지만 한쪽을 할애해 앞뒤 맥락의 서술에 충실히 하려고 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한참 후퇴했다. 2만5천~3만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제주4·3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제외한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고, 사건의 후유증은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제주 사회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었음을 국가가 인정해 대통령이 사과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이번 국정 교과서의 제주4·3 기술은 사건의 배경은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남로당의 무장봉기’에만 초점을 맞췄다. 미군정의 실책, 서북청년단의 가혹 행위, 경찰의 잇따른 고문치사 사건 등 사건의 배경 설명은 아예 없다. ‘제주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명칭과 제정·공포의 주체와 연도도 잘못 기술됐다. 정부가 2003년 발표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나온 사건의 정의조차 외면했다. 현행 검정교과서에 있는 참고자료나 사진자료 등도 없다. 오죽하면 제주도까지 나서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을까. 이 국정 교과서를 통해 어떻게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들이 4·3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진실은 덮으려 할수록 더 꿈틀거리는 법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렇고 ‘4·3의 진실’이 그렇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된 4·3의 진실 찾기는 30년이 다 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도 변명하고 감추려 해도 진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에 참석한 4·3유족들은 ‘4·3역사는 우리가 지킨다’는 결기에 찬 팻말을 걸고 나왔다. 양윤경 제주4·3유족회장의 외침은 단호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국정 역사 교과서를 탄핵해야 한다.” 제주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날카로웠으나, 촛불과 촛불은 서로 격려하고 있었다. hojoon@hani.co.kr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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