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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원 주변 규제 ‘고무줄 잣대’에 속타는 중소기업

등록 2017-06-06 14:48수정 2017-06-06 15:45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겠습니다.” 지난 4월10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중소기업중앙회 방명록에 쓴 글이다. ‘중소기업 중심경제’를 바탕으로 한 일자리 창출도 공약했다. 최근 수도권 일부 지역 중소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환경부가 ‘특별법·상위법 우선’이라는 법 적용의 원칙을 무시한 채 ‘고무줄 규제’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환경부, 팔당·대청호 수질 보전 위해

1990년 강 주변 특별대책지역 지정
‘자연-농림지역-공업지역’ 변경 제한

2008년엔 규제 완화해 산단 가능케
최근 5년간 이천 5곳·옥천 1곳 허용

경기 광주 중소기업들도 산단 추진
국토부 지정계획 고시 받아냈지만
환경부는 “바람직하지 않다”의견
기업들 “오염원 아닌 공장도 안되나”

같은 조항 다른 적용 논란 커지자
환경부 “보호와 개발은 항상 충돌
부서간 세밀한 논의 뒤 결정할 것”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에서 미군 전투식량에 쓰이는 포장지 등을 생산해 납품하는 ㈜진우아이앤피 김영선(55) 대표는 요즘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25년 동안 식품 포장과 관련된 제조업을 하면서 탄탄하게 회사를 키워 산업단지 입주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환경 당국이 갑작스럽게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수산물과 만두, 묵, 약품 등 각종 포장지를 만들어 연간 12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김 대표 회사의 주요 품목 50% 이상이 수출 품목이다. 40명이 일하는 회사에는 외국인이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명도 없다. 생산성이 높고 회사 규모도 점차 커져 그는 산업단지를 조성해 공장을 확장·이전하는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전체가 ‘팔당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이하 특대지역)’으로 묶여 각종 규제를 받는 광주시에 공장이 자리 잡은 탓에 이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광주시에서 소규모(3만~6만㎡) 일반산업단지 조성에 참여할 업체를 모집했다. 뜻밖의 ‘희소식’에 김 대표는 비슷한 제조업을 하는 광주지역 9곳의 공장 대표들을 만나 ‘포장·인쇄업 집적화’를 위한 산업단지 조성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광주시 초월읍 학동리 산 140-1번지 일대 4만8515㎡의 땅을 78억원을 주고 사들였고, 올해 1월24일 국토교통부에서 ‘산업단지 지정계획고시’까지 받아내 산업단지 승인 신청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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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처럼 부푼 꿈을 품었던 김 대표에게 최근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이, 김 대표보다 먼저 산업단지 개발 승인 신청을 한 업체에 대해 “특대지역 내 산업단지 입지는 한강유역 관리 차원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김 대표는 “행정기관의 자문과 사전심의를 거쳐 중소기업들이 어렵게 돈을 마련해 땅까지 사놨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아무것도 안 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기업을 운영하란 말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산업단지 입주를 앞두고 세계 시장과 경쟁하기 위해 첨단장비도 도입하고 직원 채용도 늘리려 했는데,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기업을 죽이는 탁상행정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에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모습.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에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모습.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광주시 곤지암읍 신대리 일대 3만7150㎡의 터에 산업단지 조성 승인 신청을 한 ㈜견우푸드 등 3개 중소기업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2005년 4월 식품가공·개발 업종의 식육, 양념육, 건포류 가공사업을 하는 견우푸드는 연간 매출액만 1천억원에 이르고, 종업원 수도 100명이 넘는다. 시장 확대와 기업 성장을 위해 인근 땅을 86억원에 사들여 다른 2개 업체와 함께 산업단지를 조성해 공장을 옮기려 했지만, 김 대표 회사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투자의향서를 내고 사전타당성 조사를 거쳐 산업단지 승인 신청을 냈지만, 한강유역환경청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이 회사 박연수 부사장은 “폐수 배출 등을 하지 않아 상수원 오염을 하지 않는 중소기업인데도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에 공장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산업단지 인허가에 제동을 거는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이란? 환경부는 1990년 7월19일 환경처 고시 제90-15호를 통해 ‘팔당·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을 발표했다. 상수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종 행위를 제한해 지속 가능한 상수원의 적정 관리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지정 면적은 팔당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2096.53㎢와 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700.1㎢로 모두 2796.63㎢다. 환경부는 특별대책지역을 ‘Ⅰ권역’과 ‘Ⅱ권역’으로 나눠 권역별로 규제 대상과 정도 등을 달리했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강한 Ⅰ권역의 면적은 팔당호의 경우 1271.65㎢(61%)이고, 대청호의 경우 386.2㎢(55%)다.

이 고시는 환경 기술 진보와 해당 지역 주민들의 민원 해소 차원에서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뼈대는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광주·남양주·이천·용인·여주·가평·양평 등 경기 동부지역 7개 시·군은 팔당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묶여 있다. 당연히 권역별, 행위별로 엄격하고 다양한 규제가 뒤따른다.

이 고시는 제15조에 ‘자연보전지역, 농림지역 및 관리지역 중 보전·생산관리지역을 도시지역 중 공업지역으로의 변경은 제한하고, 관광·휴양개발진흥지구로의 변경은 선별 허용한다’는 규정을 뒀다. 특대지역에서 중소기업의 산업단지 조성을 막고 있는 것이다.

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에 있는 진우아앤피 생산시설 안에 각종 자재가 적재되어 있다. 김영선 진우아이앤피 대표는 이날 “생산시설을 창고로 겸용하면서 조업에도 지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에 있는 진우아앤피 생산시설 안에 각종 자재가 적재되어 있다. 김영선 진우아이앤피 대표는 이날 “생산시설을 창고로 겸용하면서 조업에도 지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거긴 되고 여긴 안 돼?…‘고무줄 잣대’ 경기도 광주시는 지난 1월 광주시 초월읍 학동리 등 4곳의 산업단지가 국토부에 의해 산업단지로 지정·고시되자 이들 산업단지의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산업단지 수요 검증을 위한 조정회의와 국토부와 환경부까지 참여하는 산업입지정책심의회 등을 열어 4곳의 일반산업단지 18만2000㎡를 신규 산업단지 지정계획에 반영한 것이다.

광주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규제로 6만㎡ 이상의 공업용지를 조성할 수 없어 실수요자 중심의 소규모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 중인데, 산업단지 조성으로 특대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개별 공장을 집적화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포부까지 밝힌 상태다.

국토부가 지정·고시한 산업단지는 △㈜견우푸드 등 3개사의 곤지암 프레시푸드 일반산업단지(곤지암읍 신대리) △㈜한울상사 등 3개사의 한울 일반산업단지(도척면 방도리) △㈜림코의 방도 일반산업단지(도척면 방도리) △㈜진우아이앤피 등 10개사에서 추진하는 학동 일반산업단지(초월읍 학동리)다.

이에 따라 시는 산업단지 지정계획 고시는 물론 주민열람 공고와 합동설명회까지 마친 곤지암프레시푸드와 한울 일반산업단지에 대해 환경부 한강유역청에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신청했으나, 한강유역청은 ‘특대고시 제15조’를 들어 최근 산업단지 조성 반대 의견을 내놨다. 중소기업을 설득해 산업단지를 추진했던 광주시는 발칵 뒤집혔고, 소식을 전해 들은 기업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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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규제 조항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2012년 8월 특대지역인 이천시 마장면 덕평리에 4만2178㎡의 덕평일반산업단지를 지정해준 데 이어 2013년 12월에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 5만3215㎡에 서이천일반산업단지를 허가했다. 또한, 2014년 12월에는 이천시 신둔면 도암리에 5만9794㎡의 도암일반산업단지도 허가해주는 등 지난해 7월29일까지 이천시에 모두 5개 일반산업단지(25만5797㎡)의 입지를 허용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4월29일에는 역시 특대지역인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서대·가풍리 일대 35만1661㎡ 규모의 옥천 제2의료기기 일반산업단지의 용도지역 결정을 허용했다.

산업단지 입지가 허용된 곳은 모두 광주시 특대지역처럼 농림지역, 생산관리지역, 보전관리지역 등이다. 환경부가 광주시에 적용하고 있는 것처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특대지역 고시 제15조를 위반한 것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2008년 12월 환경부와 국토부는 ‘산업입지의 개발에 관한 통합지침’을 마련해 특대지역에서도 민간기업의 산업단지 신청 제안이 가능하도록 고시했다. 상수원 오염원이 아닌 한 입지제한을 과도하게 해서는 안 되는데도 환경부가 뚜렷한 원칙 없이 산업단지 입지를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강유역청 관계자는 “특대지역 일부에 산업단지 조성이 허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특대지역 고시 제15조의 취지는 상수원 보호가 우선이어서 이를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미 허용된 이천의 산업단지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특대지역 ‘Ⅱ권역’에 해당된다. 당시 실무자들이 어떤 판단과 기준을 세웠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수도권 상수원 관리는 매우 중대한 문제인 만큼 특대지역 내 산업단지 입지 문제는 현재 환경부 내 관련 부서와 면밀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물환경정책과 관계자도 “특대지역에서의 각종 행위 규제는 상수원 보호냐 개발이냐의 문제가 항상 충돌하고 있다. 최근 산업단지 입지를 놓고 논란이 커져 부서간 충분하고 세밀한 논의를 거쳐 조만간 합리적인 결정이 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에 있는 진우아앤피 마당 위에 가건물로 지어진 창고에서 일하고 있다. 바닥에는 희미하게 주차선 흔적이 남아있다.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노동자들이 2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에 있는 진우아앤피 마당 위에 가건물로 지어진 창고에서 일하고 있다. 바닥에는 희미하게 주차선 흔적이 남아있다.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효율적 물 관리 위해 과도한 입지규제 개선해야” 이처럼 특대지역 내 산업단지 입지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상수원 수질보전을 위해 경기 동부권의 자연보전권역 내 산업시설을 집단화하고, 이를 위한 입지규제를 개선하자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경기연구원은 지난해 8월 팔당 상수원 보호를 위한 산업폐수의 효율적 관리방안을 제시한 ‘경기 동부지역 산업입지 실태 및 관련 규제 개선방안’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경기도 면적의 38%인 자연보전권역의 공장입지 실태를 살펴보면, 입지공장의 99%는 산업단지 이외 지역에 개별입지하고 있다. 입지공장의 약 7%는 폐수 배출 공장인데, 95%가 개별입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자연보전권역 내 입지기업들은 환경법제에 따른 상수원관리지역 규제, 토지이용법제에 따른 공장용지 조성 및 공장 신·증설, 용도지역 입지제한 등 중첩규제로 인해 투자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행 자연보전권역의 과도한 규제는 소규모 시설 중심의 개별입지를 유발하며, 이는 상수원 관리의 한계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경기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이에 따라 “개별입지 공장의 집단화(산업단지)를 통해 팔당상수원의 효율적인 수질관리가 가능하며, 이를 위한 합리적인 규제개선이 필요하다. 자연보전권역 내 산업입지 규제 개선은 수질환경과 국토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수도권 주민의 생명수인 팔당 상수원에는 1974년 팔당댐 준공 이후 상수원 보호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입지규제가 대표적이다. 상수원 주변인 경기 동부지역에는 환경법과 토지이용법에 의한 다양한 규제들이 중첩된 가운데, 최근 입지규제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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