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한 마사에서 마필관리사들이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공시한 ‘2016년 공공 기관 경영 정보’를 보면 한국마사회 정규직 직원 891명(임원 제외)의 평균 연봉은 9503만원입니다. 국내 35개 공기업의 지난해 평균 연봉이 7905만원이니 마사회가 ‘신의 직장’으로 불릴 만합니다. 그런데 지난 5~8월 부산 강서구의 한국마사회 부산경마공원에서 2명의 마필(말)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마필관리사는 마사회 직원이 아닙니다.
지난 16일 새벽 4시30분께 부산 강서구 범방동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마공원). 쉼터에 모인 마필(말)관리사들이 마구간(마방)이 있는 마사(馬舍)로 출근을 서둘렀다. 밖엔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밖에 보이지 않는다.
“온다고 고생했네요. 마사에 가면 말을 잘 살펴보고 항상 조심하세요. 웬만하면 말 뒤쪽으로 가지 마세요. 예민해요.” ㄱ마사의 마필관리사 김아무개(36)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안전’을 강조했다.
부산경마공원 마필사들
주6일 새벽 5시에 마방 출근
먹이주고 청소하고 훈련시켜
말똥 악취 코 찌르고 머리 아파
발에 차이거나 물리면 큰 부상
산재율 14% 전체 평균의 27배
마사회 아닌 조교사가 개별 고용
몸 다쳐도 눈치 보여 말 못하고
급여 불규칙…지급기준도 모호
노조-마사회, 고용개선 협의 나서
“생활임금 보장 안되면 미래 없다
뒷짐 졌던 마사회 상대 본격투쟁”
김씨가 속한 마사에 들어가니 말똥 등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천장에 설치된 대형 선풍기와 환풍기가 쉼없이 돌았으나 구실을 못 하는 듯했다. 김씨가 “우리도 며칠 쉬다 오면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며 웃었다.
김씨는 동료 마필관리사들과 함께 30여㎡ 규모의 쉼터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이 마사엔 애초 마필관리사 9명이 말 36마리를 관리했는데 이날 신입 마필관리사 1명이 새로 들어왔다. 마필관리사 1명이 관리하는 말이 4마리에서 3.6마리로 줄어든 것이다. 김씨는 “규정은 없지만 보통 마필관리사 1명이 말 3마리가량을 관리해야 한다. 두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언론의 관심이 높아져 충원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16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한 마사에서 마필관리사가 마방 청소를 하고 있다.
작업복을 입은 마필관리사들은 안전화, 안전모, 1㎝ 굵기의 스펀지로 둘러싼 보호조끼 등 안전장비를 착용했다. 팀장인 박아무개(40)씨는 마사 벽에 걸려 있는 화면을 통해 마사 안 24개 마방을 살펴본 뒤 다른 마필관리사에게 작업을 지시했다.
마필관리사들은 각각 맡은 마방으로 향했다. 16㎡가량 규모의 마방 바닥엔 침대 구실을 하는 톱밥(깔집)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마필관리사들은 말을 달래며 마방 안으로 들어가 배설물로 뒤엉킨 깔집을 삽으로 퍼냈다. 마사 바닥은 각 마방에서 나온 건초와 오염된 깔집으로 뒤덮였다. 또 다른 마필관리사는 손수레를 끌고 와 각 마방 앞에 쌓인 깔집 등을 실어 퇴비장으로 날랐다.
지난 16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한 마사에서 마필관리사들이 마방 청소를 하고 있다.
김씨가 갑자기 기자를 잡아당겼다. 말이 마방 앞으로 고개를 내밀어 기자 쪽으로 향했다고 했다. 김씨는 “말에 차일 가능성도 있지만 팔과 등을 물리는 경우도 많다. 정신 차리고 알아서 잘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필관리사 이아무개(37)씨는 “말에 차이면 기본이 골절이다. 지난 6월 조교(말 훈련) 중 왼쪽 손목을 접질렸는데 여전히 욱신거린다. 산재율이 높으면 사장(조교사)이 좋아하지 않아 웬만한 부상은 참고 견딘다”고 말했다.
마필관리사들이 산재 신청을 꺼리는 이유는 고용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부산 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 270여명은 개별 마사를 운영하는 개인사업자인 조교사 33명에게 개별 고용됐다. 조교사는 사용자이고 마필관리사는 노동자인 것이다. 조교사에게 면허를 발부하는 한국마사회를 정점으로 고용구조의 맨 아래에 마필관리사가 있다. 마사회는 2004년 부산경마공원을 개장하면서 이런 고용형태를 적용했다. 마사의 성적에 따라 조교사와 마필관리사의 소득이 직결되기 때문에 경쟁성을 극대화한 ‘선진 경마 체계’라는 게 마사회 설명이다.
조교사가 산재에 민감해하는 배경엔 면허를 주는 마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고 산재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사정이 자리한다. 조교사에게 고용된 마필관리사들이 다쳐도 제대로 말하기 힘든 까닭이다. 부산경마공원 마필관리사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지난해 기준 마필관리사의 산재율은 13.98%로 전국 산업 평균 0.52%의 27배에 이른다. 조교사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마필관리사들은 큰 부상이 아니면 혼자 해결한다. 실제 산재율은 더 높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한 마사에서 마필관리사가 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마필관리사들은 청소를 끝낸 뒤 말 먹이통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팀장 박씨가 사료, 소금, 소화제, 영양제 등을 일정 비율로 섞어 먹이통을 채우자 마필관리사들이 각 마방에 먹이통을 뒀다. 물통도 씻어 새 물로 채웠다. 이어 각자 관리하는 말들을 물로 씻기고 마른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마방으로 돌려보냈다. 무더운 날씨에 보호장비를 착용한 마필관리사의 콧등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팀장 박씨는 각 말의 편자(말굽 바닥에 장착하는 쇠) 상태를 확인하고 편자를 교체하는 말을 확인했다. 그는 “매주 금·일요일에 경주가 있어서 오늘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 말의 상태에 따라 워킹머신(말이 원 모양으로 걸으면서 운동할 수 있도록 한 기계), 주로(경마장 경주로) 달리기, 어린 말 순치(길들이기) 등의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경마장 트랙에 마필관리사들이 말을 타고 훈련을 하고 있다.
말을 타고 훈련할 수 있는 ‘조교 승인 자격증’이 없는 마필관리사들은 각자 말을 데리고 워킹머신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다른 마필관리사들은 두 살 이하의 어린 말을 경주마로 거듭나게 하는 순치 훈련에 나섰다. 박 팀장 등 조교 승인 자격증이 있는 마필관리사들은 말에 안장을 올린 뒤 올라타서 경마장 트랙에서 걷기, 속보, 뛰기 등을 20여분 동안 했다. 팀장 박씨는 “조교 승인 마필관리사는 새벽~아침에 보통 말 3~4마리를 타고 나가 주로 훈련을 한다. 말에서 떨어지면 최소 중상이다. 신경이 곤두선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 훈련이 끝나면 오전 9~10시가 된다. 마필관리사들은 마사를 정돈하고 1시간가량 쉰다. 마필관리사가 아침을 먹는 시간이다. 오전 11시께 마필관리사들은 마방을 돌아다니며 말의 상태를 또 점검한다. 새벽과 아침에 훈련을 한 말들을 다시 물로 꼼꼼히 씻긴다. 운동한 뒤 땀을 흘린 말들을 그대로 두면 피부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말의 점심을 챙긴다. 점심은 건초다. 기자도 마사 밖에 쌓인 건초 20㎏을 손수레에 실어 각 마방을 돌아다니며 건초를 나눠줬다. 끈적한 날씨와 시커멓게 떼를 지어 달라붙는 파리 떼가 불편했고 혹여 말에게 팔을 물릴까 걱정이 앞서 동작이 굼떴다. 보다 못한 김씨가 직접 건초를 나눠줬다. 결국 기자는 손수레만 밀었다.
지난 16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한 마사에서 기자가 말 먹이로 주는 건초를 담은 손수레를 나르고 있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다시 쉬는 시간이다. ㄱ마사의 옆 동에 마필관리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마필관리사는 “10년 넘게 일했는데도 월급은 250만~26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마필관리사도 “급여가 들쭉날쭉하다. 어떤 달은 평소보다 월급이 100만원이나 적기도 했다. 임금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조교사에게 물어봐도 ‘타당하게 주고 있다’고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필관리사의 임금은 경마 상금과 위탁관리비로 결정된다. 경마 상금은 각 마사의 경마 성적에 따라 달라진다. 위탁관리비는 말을 맡긴 말 주인이 마리당 마사에 다달이 지급하는 관리비용으로, 각 마사의 고정 수입원이다. 조교사는 이를 바탕으로 마필관리사에게 기본급과 성과급을 더한 월급을 준다. 하지만 개인사업자인 조교사가 경마 상금과 위탁관리비에 포함된 마필관리사의 인건비를 어떤 기준에 따라 얼마의 비율로 나누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한 조교사는 “각자 기여도를 고려해 임금을 책정한다”고만 답했다.
한국마사회는 올해 부산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 평균 급여가 446만원 수준이며, 이 가운데 고정성 급여 비율이 57%(254만원)라고 밝혔다. 노조는 경마 상금으로 책정하는 성과급을 빼면 마필관리사의 고정성 급여가 기본급과 고정성 수당을 합쳐 평균 190만원이라고 반박했다. 부산경마공원 관계자는 “조교사의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마필관리사의 임금이 적정수준으로 지급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마필관리사들이 말 수영 훈련을 하고 있다.
오후 1시엔 수영 훈련을 한다. 이날 ㄱ마사에서 수영 훈련에 나선 말은 9마리였다. 물을 싫어하는 말의 투레질이 심했다. 수영 훈련은 일부 말이 입에서 거품을 뿜을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마필관리사들은 짜증 내는 말을 달래기 바빴다. 한쪽에선 말의 편자를 교체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씨는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오늘은 두 마리만 편자를 교체하면 된다”고 말했다.
말을 데리고 온 김씨가 말의 코를 꼬집었다. 말의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바로 옆에선 마필관리사 오아무개(29)씨가 말의 한 다리를 손으로 잡아 올렸다. 편자 교체 전문가(장제사)가 집게로 말발굽에 헐겁게 박힌 편자를 빼낸 뒤 말발굽을 깎고 다듬었다. 한 다리를 들어 올린 말이 불편한지 계속 다리를 움직였다. 말 다리를 붙잡아 들고 있는 오씨가 비 오듯 땀을 흘렸다. 말 다리를 놓치면 장제사가 차일 우려가 있다. 한 달 전 편자를 교체하다가 말에 차여 왼쪽 옆구리가 아프다는 장제사는 말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발굽에 새 편자를 대고 못 6개를 박았다. 말은 움찔거리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말 2마리의 편자 교체를 끝내고 말의 저녁을 챙긴 뒤 청소까지 끝내니 퇴근 시간인 오후 3시다. 당직 마필관리사는 저녁 8시까지 말을 돌본다.
지난 16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한 마사에서 마필관리사들이 장제(편자 교체 작업)를 하고 있다.
부산경마장의 마필관리사는 쉬는 날인 화요일을 빼고 주 6일을 일한다. 월요일엔 오전만 일하고 수·목·토요일은 새벽 5시~오후 3시, 경마경기가 있는 금·일요일은 새벽 5시~오후 7시까지 일한다. 야간 경마가 있는 날엔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할 수 있다.
이날 노조와 한국마사회 등은 마필관리사의 고용구조 개선 협의체 구성 등에 합의했다. 마필관리사 오씨가 말했다. “생활임금이 보장이 되지 않는 한 여기선 미래가 없어요. 합의가 됐다지만 뒷짐만 졌던 마사회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본격적인 투쟁은 이제부터입니다.”
부산/글·사진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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