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주(89) 할머니가 17일 오후 경북 포항시 흥해읍 용천리 집의 무너진 벽 앞에 앉아 있다. 포항/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저짝 좀 보소. 지진 나가 벽에 큰 금 간 거 보이니껴? 내 평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
17일 오후 4시께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용천1리 경로회관 안 벽에는 금이 가 있었다. 회관 안에 있던 윤성자(76) 할머니는 회관 앞 건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가리킨 집 벽은 위에서 아래로 3m쯤 갈라져 있었다. “지진 났을 때 집에 있었는데 집이 흔들리며 천장이 무너졌어.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뛰어나와 회관에서 이틀 밤을 지냈다니까.” 잠을 설친 할머니는 피곤한 듯 하품을 했다.
용천리는 지난 15일 규모 5.4의 포항 지진이 일어난 ‘진원지’다. 용천1리에는 231명(124가구), 용천2리에는 171명(81가구)이 산다. 나이 든 할머니가 많고, 슬레이트와 벽돌로 지은 집이 대부분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회관 앞에 있는 오순주(89) 할머니의 집은 뒤쪽으로 기울어져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벽돌담은 곳곳이 갈라져 있었고, 집 외벽도 균열투성이였다.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집에 어떻게 가. 나는 계속 회관에서 먹고 자고 하고 있지. 난 집이 없어.” 할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회관에는 마을 할머니 10명이 모여 있었다. 이옥화(75) 할머니는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내가 차도 없고 그렇다고 걸어갈 수도 없는데 여기밖에 올 데가 더 있나. 뭐 밖에 나가 있다가 얼어 죽으나, 회관에 있다가 건물에 눌려 죽으나 똑같지. 그래도 20년 넘은 회관이지만 마을에서는 튼튼한 건물이야.” 이 할머니는 졸린 눈을 비볐다. “자식들 사는 아파트가 더 위험하다니까. 회관은 그래도 문 열면 바로 마당이다. 마을 공원에 안 춥게 해서 큰 천막 하나 쳐주고 대피하라고 해주면 제일 안전하지 싶어.” 이 할머니 옆에 앉아 있던 정숙자(65) 할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용천1리 옆에 있는 마을인 용전2리(117가구 242명)도 상황은 비슷했다. 용전2리에 사는 최노미(82) 할머니의 집 마당에는 옥상 난간에서 떨어진 벽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담도 무너져 내렸고, 집 안 곳곳에 크고 작은 균열이 나 있었다. 쌓아둔 나무 장작 더미도 누가 일부러 쓰러뜨린 것처럼 바닥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보일러실에는 떨어진 벽돌과 기울어진 보일러가 뒤엉켜 있었다. 용전2리 마을회관에도 할머니 7명이 모여 있었다.
“하도 (여진이) 많이 와서 이제는 지진인지 아니면 내가 놀란 건지 헷갈려. 지금도 땅이 흔들리는 것 같다니까. 아파트 사는 딸이 우리 집에 와 있어. 우리 집은 조립식이라서 지진에 더 안전하다고 그러더라고.” 최숙운(71) 할머니가 말했다. “지진 났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정신없이 땅이 흔들렸어. 아직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읍사무소에서 한 번 오기는 했는데 그다음에 딱히 연락이 없어. 지금은 며느리가 같이 있다니까. 지도 내가 걱정되는 모양이야.” 윤화자(74)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불편한 듯 다리를 폈다.
지진 뒤 각 당 대표 등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이 흥해읍사무소를 찾았지만, 읍사무소에서 4㎞ 거리인 용천리와 용전리 할머니들에게는 오지 않았다. 그 곳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포항/김일우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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