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안보교육장. 이곳은 2010년 11월23일 북한 포격으로 파괴된 민간인 집터를 그대로 보존해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날만 떠올리면 아직도 사지가 떨려.”
7일 인천 연안부두에서 100㎞ 남짓 거리에 있는 옹진군의 작은 섬 연평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성순계(81) 할머니는 2010년 11월23일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당시 북의 포격으로 해병대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성 할머니는 “포격의 충격으로 집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지붕 일부가 파괴됐다. 석 달을 뭍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복구했지만 언제 또 날아들지 모르는 포탄에 한동안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앞서 1999년과 2002년에도 연평도 해상에서는 남북 간에 2차례 교전이 벌어져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린다.
연평도 어민들은 서해 5도가 평화수역으로 조성돼 ‘해상 파시’(바다 위에서 열리는 어시장) 등이 실현돼 ‘바다의 개성공단’이 되길 염원하는 펼침막을 부두에 설치해 놓았다.
그러나 남북 간의 교전이 끊이지 않던 연평도 등 서해 5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조성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선언문에는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했다’고 명시됐다.
극한 대치의 상흔은 여전하지만 주민들은 연평도가 ‘평화수역’으로 거듭난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이날 연평도 부둣가에는 남북정상회담을 반기는 펼침막이 붙어 있었고, 어선마다 서해 5도가 그려진 한반도기가 바람에 힘차게 나부꼈다. 안광기(61) 연평초중고등학교 교장은 “연평도로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이 남북, 북-미 회담에 거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큰 것 같다”고 귀띔했다. 연평초중고교는 연평중고교가 북한의 포격으로 무너져 초교 쪽으로 자리를 옮겨 통합됐다.
하나둘씩 문을 닫았던 음식점과 빈집들도 내부수리로 분주했다. 최근 새로 문을 연 식당도 눈에 띄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직면했던 민박과 안보관광도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연평해전 당시 교전에 참전했던 함정과 같은 모양의 참수리급 고속정이 전시된 연평도함상공원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부둣가 인근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김귀진(72)씨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관광객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평화수역의 최대 수혜자가 될 사람은 어민들이다. 서해 5도가 다시 ‘황금어장’으로 거듭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박태원 연평도 어촌계장은 “서해 5도 어민들은 남북 분단의 쓰라린 현실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평화수역 조성으로 남북 어민 공동조업, 남북 수산물 무역을 위한 ‘파시’(바다 위 어시장)가 실현된다면 보이지 않는 ‘바다의 휴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도 판문점처럼 ‘종전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연평도 어민들은 지난 4월 초부터 태극기와 함께 ‘서해 5도가 새겨진 한반도기’를 어선에 달고 조업하고 있다. 배 왼쪽 연평도함상공원에는 연평해전에 참전했던 함정과 같은 모양의 참수리급 고속정이 전시돼 있다.
지난 5일에는 송영무 국방, 강경화 외교, 조명균 통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함께 연평도를 방문했다. 이달 중 열릴 남북 군사당국 회담에 앞서 핵심 의제로 논의될 평화수역 조성과 관련해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선 안보, 후 공동어로구역 지정’을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성도경 선주협회장은 간담회에서 “연평도 주민들은 전쟁 이후 2번의 연평해전과 피폭으로 인해 단 하루도 두 발 뻗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일체의 공격행위 금지를 포함해 연평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서해 5도 어민과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서해5도 생존과 평화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는 남북 공동어로구역과 남북 어족자원 보호수면 설정, 야간조업 허용, 바지선을 이용한 해상 파시 등을 정부에 제안했다. 서해 5도 주민들은 남북의 군사적 대치로 인해 현재 오전 6시~오후 6시에만 조업할 수 있다. 또한 대책위는 평화수역 조성을 위한 서해 5도 어민과 인천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 구성도 요구했다.
박원일 시민대책위 간사는 “중국의 불법 꽃게잡이 어선들이 우리 해역에서 활개를 쳐서 어민들이 힘들었다. 북방한계선 일대가 남북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되면 남북이 공동으로 중국 어선도 단속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평도/글·사진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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