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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르포] 3536일 만의 쌍용차 복직, 평택엔 기쁨보다 깊은 상처

등록 2018-09-14 13:25수정 2018-09-14 22:10

전원 복직 소식에도 ‘허탈’과 ‘공허함’만 가득해
공장 밖은 휴일처럼 한산 “어차피 이리될 것을…”
해고자 피해 부인들 “MB 처벌 받아야 싸움 진짜 끝” 
14일 오전 119명 전원복직 소식이 전해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 공장 어귀에 그동안 숨진 노동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펼침막이 걸려 있다.
14일 오전 119명 전원복직 소식이 전해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 공장 어귀에 그동안 숨진 노동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펼침막이 걸려 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길고 긴 터널이었다. 그 터널을 지나기까지 3536일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서른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 또 누군가의 남편들이다. 그들은 하늘 어디에선가 부모, 자식,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9년 동안 무려 서른 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쌍용차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깊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듯했다.

“합의에 대한 기쁨보다 공허하고, 허탈한 마음이 앞서네요….” 14일 오전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들의 쉼터인 ‘평택와락센터’에서 만난 한상균 전 쌍용차노조지부장의 부인 장영희씨의 말이다. 그는 남편이 복직한다고 쌍용차 사태가 끝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는 듯했다. 장씨는 그러나 “남편의 손을 잡고 함께 회사로 돌아가겠다는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의 말을 또 한 번 믿어본다”며 말끝을 흐렸다.

14일 오전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의 쉼터인 평택와락센터에서 한상균 전 쌍용차노조지부장 부인 장영희씨가 마음 치유 프로그램의 하나인 실뜨게질을 하고 있다.
14일 오전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의 쉼터인 평택와락센터에서 한상균 전 쌍용차노조지부장 부인 장영희씨가 마음 치유 프로그램의 하나인 실뜨게질을 하고 있다.
지난해 복직한 해고자의 부인이자 평택와락센터 운영 실무자인 이정아씨도 “마지막 한명까지 모두 복직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2015년 합의한 내용도 지켜지지 않았다. 일부만 복직되고, 남은 해고자는 다시 초조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 세월 경제적 궁핍보다 지역경제 파탄 등 온갖 비난의 따가운 시선들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씨는 “옥고까지 치른 한상균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복직하고, 쌍용차 노조 강제진압의 주범인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처벌받아야 이 긴 싸움도 진짜 끝이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휴일인 것처럼 인적이 없는 쌍용차 평택공장의 14일 오전 풍경.
휴일인 것처럼 인적이 없는 쌍용차 평택공장의 14일 오전 풍경.
119명 전원복직 합의 소식이 전해진 이날 오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본사 앞은 쉴 새 없이 화물차가 드나들었다. 그러나 어쩌다 한두 명의 직원들이 정문을 통과했고, 공장 밖 풍경은 인적이 거의 없어 휴일인 것처럼 한산했다. 점심시간인데도 밖으로 나오는 직원이 거의 없었다.

9년 전 ‘그날 이후’부터 공장 앞에 각종 집회가 잇따르고, 출근하는 직원과 해고자 사이의 얼굴 붉힐 일들이 생기면서 상권은 초토화됐다. 그나마 인근에 아파트 공사장이 있어 식당 등은 유지되고 있지만, 상가 건물에는 ‘임대문의’ 글귀만 눈에 띄었다. 한 음식점 주인은 “오늘이 정말 모든 사태의 끝이 되길 바란다”며 “모두가 웃는 얼굴로 돌아와 다시 활기찼던 공장 주변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 일지>

△2009년

-1월9일 중국 상하이자동차, 쌍용차 경영권 포기. 정관리 신청

-4월8일 쌍용차 2646명 구조조정 및 기업회생안 발표, <첫 번째 사망자> 발생

-4월13~14일 쌍용차 노조, 84% 찬성으로 총파업 가결

-5월8일 쌍용차, 노동부에 2405명 정리해고 신청서 제출

-5월21일 쌍용차노조, 공장점거 등 '옥쇄 파업' 돌입

-5월31일 쌍용차, 평택공장 직장폐쇄

-6월8일 980명 정리해고 단행

-8월4~5일 경찰, 특공대 투입해 파업 강제 진압, 96명 연행,

△2010년

-8월23일 인도 마힌드라 쌍용차 지분인수 양해각서(MOU) 체결

-11월10일 정리해고자 156명 해고무효소송 제기

-11월19일 <열 번째 사망자> 발생

△2011년

-11월2일 쌍용차, 인도 마힌드라사에 매각

-12월7일 노조 평택공장 앞에서 희망텐트 농성 돌입

△2012년

-1월12일 법원, 해고무효소송 원고 패소 판결(1심)

-1월20일 <스무 번째 사망자> 발생

-3월12일 경찰, 수사 우수 사례로 쌍용차 진압 선정

-11월30일 해고자들, 송전탑 농성 시작

△2013년

-1월10일 쌍용차 노사, 무급휴직자 전원 복직 합의

-2월15일 무급휴직자 461명 가운데 245명이 낸 임급 지급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2014년

-2월7일 서울고법, 정리해고자 153명의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무효판결(2심)

-11월13일 대법원 박보영 대법관, 해고무효확인 소송 항소심 판결 뒤집고 원심파기환송 판결

△2015년

-12월30일 노사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복직 노력" 합의

△2016년

-7월 중 해고자 일부 복직

△2017년

-8월25일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 발족, 쌍용차 파업 진압 우선조사 대상 선정

△2018년

-2월8일 최종식 사장 "해고자 완전한 해결 노력"

-3월1일 김득중 지부장 단식농성(32일)

-6월27일 <서른 번째 희생자> 김주중 조합원 사망

-7월10일 문재인 대통령, 마힌드라 회장 만나 ‘해고자 복직’ 언급

-8월28일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쌍용차 노조 진압, 청와대가 최종 승인"

-9월14일 해고자 119명 전원복직 합의

공장 정문 앞 상가 건물에 있는 해고자의 보금자리나 다름없는 쌍용차비정규직지회도 문이 닫혀 있었다. 이 상가 건물에서 14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주인은 “해고자들이 서울 대한문으로 자리를 옮겨 발길이 끊지 오래다. 어제 복직한 해고자들을 통해 반가운 소식을 듣게 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주차장에서 만난 한 협력업체 직원은 간간이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하늘도 슬픈가 봅니다. 좋은 소식 못 듣고 떠난 사람들 때문에…”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뭐 그리 시간을 끌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도 했다.

14일 오전 쌍용차 해고자의 보금자리나 다름없는 쌍용차비정규직지회 사무실 앞. 기나긴 해고사태로 인근 상권마저 초토화됐다.
14일 오전 쌍용차 해고자의 보금자리나 다름없는 쌍용차비정규직지회 사무실 앞. 기나긴 해고사태로 인근 상권마저 초토화됐다.
한편, 쌍용차 사태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쌍용차 해고자의 전원복직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기다려왔던 반가운 소식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목숨 잃은 희생자 서른 분의 넋을 기리며 하늘에서나마 억울함과 노여움을 푸셨기를 바랍니다”라며 “우리 사회는 피 흘리고 목숨 바쳐 투쟁하지 않아도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여야만 합니다. 쌍용차에 남은 앞으로의 과정도 원만하기를 기대하며, 경기도가 상처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썼다.

글·사진 이정하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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