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박미희(가운데)씨가 5일 오후 경기 평택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인터뷰 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평택/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공장 안에서 파업하고 있는 남편에게 줄 식사를 경찰이 막았다. 돌아서 외진 곳을 발견해 밧줄로 매단 식사를 내리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경찰이 막았다. 돌이 막 지난 아들을 둘러업은 김민지(가명·40)씨는 친정 엄마와 함께 쌍용자동차(쌍용차) 정문 앞에 서서 서럽게 울었다. 2009년 여름이었다. 입사 7년차, 자동차 문짝을 조립하던 남편은 해고자 명단에 올랐다.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파업은 77일로 이어졌고 경찰 특공대가 투입돼 노동자들을 향해 대테러작전에나 쓰는 테이저건을 쏘았다.
해고 이후 남편은 달라졌다. 결혼 3년차 다정했던 남편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느 새벽엔 자다말고 일어나 밖에 나가 소리를 질렀다. 악몽을 꾸고 벌컥벌컥 화도 냈다. 하지만 남편은 좀처럼 당시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부사이 거리가 점차 멀어졌고 김씨는 그 날처럼 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냥 죽을까’ 생각도 여러번이었다. 돌잡이 아들을 보고 마음을 삭였다. 김씨가 나서야 했다. 우선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야했다. 김씨가 사는 아파트엔 쌍용차 동료들이 많이 살았다. ‘이기적인 사람’ ‘일을 못하니 해고됐지’라는 수군거림이 가슴에 콕콕 박혔다. 먼곳으로 이사하고 싶었지만 복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 남편은 쌍용차가 있는 평택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하길 죽기보다 싫어했다. 어느 날은 회사 근처를 지나다가 말귀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린 아들에게 “여기가 아빠 회사야”라고 자랑스레 말하기도 했다. 자신을 버린 회사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남편이 바보같았다.
살아남아야했다. 남편을 대신해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했다. 한달에 손에 쥐는 돈은 100~120만원. 세 식구가 생활하기엔 빠듯했다. 남편이 해고 당한 뒤 약 8년간 김씨는 허리·목·어깨 디스크를 얻어 3차례 병원에 입원했다. 삶은 전쟁터같았다.
남편이 통장 잔고를 묻는 날은 어김없이 일자리를 못 구했다는 뜻이었다. 쌍용차 해고자라는 신분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었다. 남편과 함께 해고된 노동자가 7군데 회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줄줄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서야 남편이 일자리를 못 구하는 이유를 알았다. 남편은 해고된지 2년 만에 당구장에서 청소 등 알바를 하며 60만원을 벌어왔다. 그 담엔 80만원을 벌었다. 또 눈물이 났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술상을 차렸다.
밥벌이에 지쳐 아이에게 소홀해 진 탓일까. 하나뿐인 아이가 분노조절을 잘 하지 못했다. 평소 조용하던 아이는 아무때나 화를 냈다. 매주 상담치료를 받은지 2년째다. 김씨와 남편은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더 복직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아직도 김씨의 집 옷장엔 회색 빛깔 쌍용차 작업복이 걸려 있다. 남편은 9년이 지났어도 작업복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
5일 오후 경기 평택 심리치유센터 와락 사무실 벽에 쌍용차 해고노동자 의 자녀들이 미술 심리치료 중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다. 평택/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는 노동자의 삶을 그 뿌리부터 박살낸다. 해고자의 가족도 함께 죽어간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배우자 가운데 “1년 이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비율이 일반 여성의 약 9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의 내상을 치유하는 심리치유센터 ‘와락’은 6일 ‘2018년 쌍용차 가족의 건강상태’ 등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015년 쌍용차 해고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후 두번째다. 해고자의 가족의 삶까지 숫자로 나타난건 처음이다.
이 조사를 보면 쌍용차 해고자들의 아내 48%가 지난 한해동안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13년~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일반 여성의 자살생각 유병율인 5.7%의 8.67배에 달한다. 복직자 아내는 20.6%로 일반여성의 3.72배였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과학)는 “천안함 생존장병들 중에서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50%였다”며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임을 감안할 때 해고노동자 배우자의 자살생각 수치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쌍용차 해고이후 숨을 거둔 쌍용차 가족 30명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노동자의 배우자는 4명이다. 해고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지금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은 그렇게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남상수씨의 아내 박미희(41)는 남편이 4년 전 복직했지만 아직도 ‘파업’ ‘해고’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부터 난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억울함일지, 분노일지. 해고 이후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문득문득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박씨의 남편은 당초 정리해고자 명단에 없었지만, 동료들의 해고를 막으려 함께 파업에 나섰다가 징계해고됐다. 남편 대신 생계에 뛰어든 박씨는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도중 하혈을 했다. 그렇게 뱃속의 아이를 잃었다. 그놈의 돈이 뭔지, 유산한지 일주일만에 다시 병원에 나왔다.
박씨의 집 베란다에서 보면 쌍용차 굴뚝이 보였다. 걸어서 10분거리. 남편이 그 일터에 돌아가기까지 5년이 걸렸다. 복직이 돼도 마음이 불편하다. 아직 복직되지 못한 숫자가 119명이다. 지난 6월 해고자 김주중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120명에서 숫자가 하나 줄었다. 박씨도 김씨처럼 남편과 쌍용차와 관련한 이야기는 되도록 피했다. 그래서 남편이 괜찮은 줄 알았다. 어느 날 남편의 동료한테서 남편이 ‘죽고싶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박씨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울기만 했다. 박씨처럼 해고를 겪은 가족들의 우울증상은 심각했다. 해고노동자의 경우 89.3%가 지난 1주일 동안 우울증상을 겪었으며, 해고노동자의 아내도 82.6%가 같은 대답을 했다. 이는 2017년 한국복지패널이 30~60살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우울감과 비교했을 때 각각 13.37배, 8.27배나 높았다.
이런 건강상의 문제는 해고가 불러온 사회적 단절과 고립의 결과였다. 해고노동자의 87.8%가 ‘해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부적절하게 느껴진다’고 답한 비율도 54.9%나 됐다. 배우자의 해고는 아내의 사회적 고립도 불렀다. 해고노동자의 아내 70.8%가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꼈으며, 45.8%가 사람들과 어울리길 어려워했다.
해고 이후 지역사회에서 느낀 차가운 시선은 이들의 마음 속에 응어리로 남았다. 2009년 해고뒤 남편이 정리해고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은 경함이 있느냐는 질문에 해고자의 아내 54.6%가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복직자의 아내의 경우엔 62.5%가 차별을 겪었다고 답했다. 차별을 겪은 장소는 직장, 일터가 66.7%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거리나 동네, 상점, 심지어 아이들의 학교 등 일상에서 차별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외침이 단순한 은유가 아닌 까닭이다.
김씨는 “남편이 아파트 관리기사로 일하기 전 아파트 동대표들이 쌍용차에서 해고됐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며 “죄인도 아니고 성범죄자도 아닌데 쌍용차 해고노동자라는 꼬리표가 수년이 지나도 남아있었다”고 털어놨다. 권지영 와락 대표는 “육아로 경력단절된 아내들이 겨우 직장을 찾아도 ‘남편이 쌍용차 해고자’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뒤에서 ‘해고자들이 이기적이었다는둥 잘못했다는 둥’ 수군거림을 들은 경험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해고자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경제적 빈곤, 폭력적 해고, 사회적 고립 뿐 아니라 국가 폭력도 포함된다. 한 해고노동자의 배우자는 “경찰이 가운데서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용역·사쪽)들 하고 같은 한 편이 되는구나. 그걸 모르고 경찰한테 도와달라고, 좀 막아달라고(했구나)”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디엔에이(DNA) 시료채취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해고노동자 32.5%, 복직노동자 35.7%가 있다고 답했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DNA법이 “신체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회사 쪽과 경찰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비율도 해고노동자 42.3%, 복직노동자 34.5%에 달했다.
이들이 다시 삶을 꿈 꿀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복직’이다. 지난해 복직한 노동자 황인석씨의 아내 남미경(47)씨는 남편의 복직 뒤 아들이 맘 편히 좋아하는 야구를 시킬 수 있다. 공공근로와 막노동을 하는 부모를 보면서 초등학생이던 아들은 야구를 배워보고 싶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한겨울엔 도시가스비를 못내 쌍용차 노조에서 빌려온 전기장판으로 찬 겨울을 보낸 형편에 주말 취미 야구반을 시켰다. 복직 되던 날 아들은 친구에게 전화해 “나 이제 맘편하게 야구할 수 있다”고 신나서 떠들었다. 남씨의 마음이 미어졌다.
남편의 복직을 기다리는 김씨는 남편이 복직 되는 날, 다시 쌍용차 정문 앞에 가 서보고 싶다. 김씨가 파업 당시 서서 울던 그 장소다. 복직 되는 날, 웃음이 나올지 미뤄둔 눈물이 터져나올지는 모르겠다. 김씨는 “남편이 해고 당했을 땐 왜 우리만 힘든가, 왜 이런 일이 우리 가정에만 일어났나 하는 원망이 들었지만 뒤늦게 보니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복직이 돼도 잘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해고노동자 아내 26명, 복직자 아내 35명, 해고노동자 86명, 복직자 33명이 4월22일부터 6월29일까지 참여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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