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 화력발전소 인근에서 넙치류 양식장을 운영하는 김병덕(60) 동일수산 대표가 출하 시기를 넘긴 수조 속 광어를 바라보고 있다. 이정하 기자
김병덕(60)씨는 강원도 강릉시 화력발전소 인근에서 넙치류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키우는 광어와 도다리는 30만 마리다. 가로·세로 8m 규모의 정사각형 수조 50개가 이들 생선의 삶터다. 수조에는 20㎏짜리 사료 10포대가 매일 뿌려진다. 하루 200㎏의 양이다. 사료는 1포대 당 5만원으로, 한달에 사룟값만 1500만원이 든다. 생선을 키우기 위해선 사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모터로 24시간 바닷물을 끌어다 써야한다. 한달 전기요금으로 800만원이 나온다. 통상 광어를 출하하려면 14~1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출하 때까지 먹이를 주고 바닷물을 갈아주는 일을 거를 순 없다. 김씨는 “광어 1㎏당 생산원가는 1만2천원”이라고 설명했다. 광어 치어를 사오는 비용, 양식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줘야할 인건비, 양식 도중 폐사하는 물량 등을 모두 따진 결과다.
그는 30여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지만, 요즘처럼 시름깊은 날이 없었다고 했다. “불황도 이런 불황이 없어요.” 지난 13일 만난 그는 수조 속 광어를 바라보며 한탄했다. 광어 1㎏당 출하가격은 지난해 평균 1만5천원에서 최근 1만1천원 이하로 폭락했다.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마저도 소비시장이 침체하면서 출하가 미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3~4년 전보다 직원 1명당 인건비도 40만~50만원씩 늘었다.
제주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의 광어 수산관측 자료를 보면, 지난달 제주산 광어의 평균 출하가격은 1㎏당 8604원으로 1년 전 1만2369원에 견줘 30.4%나 떨어졌다. 이는 2005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2008년 12월 7526원, 2014년 9월 8천10원에 이어 역대 세번째로 낮은 수치다. 특히 출하가 지연되면서 2㎏ 이상 광어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4.8%나 떨어진 1만1324원에 그쳤다. 이는 제주어류양식수협이 분석한 광어 1마리당 생산원가 1만1천원보다 2400원가량 낮아, 물고기를 팔아도 적자를 보는 셈이다.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2008년에는 사룟값과 인건비 등이 지금보다 낮아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제주지역 양식업계는 입을 모은다. 제주도의 양식 광어 생산량은 2017년 2만5천t에서 지난해 2만2169t으로, 매출액도 3388억원에서 2870억원으로 각각 감소했다.
제주는 우리나라 양식 광어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다. 전국 광어 양식장 531곳(2017년 말 기준) 가운데 360곳(67.8%)이 제주에 몰려있다. 광어 양식의 최적 수온은 20도 안팎으로 제주는 지하에서 바닷물을 끌어들여 양식이 가능한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제주의 연중 바다수온은 평균 18~20도다.
양식업자들은 광어값이 폭락하는 이유로 ‘소비성향의 변화’를 꼽았다. 서귀포시에서 광어 양식장을 운영하는 강아무개(50)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수입산 연어나 방어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광어 수요가 확 줄었다”며 “광어 소비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양식업자 김아무개(52)씨도 “일본의 방어 양식 기술이 좋아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모를 정도다. 일본산 방어가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연말 연초 광어 특수가 사라졌다. 소비자들의 전통적인 횟감이었던 광어가 방어로 대체되고 있어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연어 수요는 전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미국 타임지가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선정한 연어는 오메가3, 지방산(EPA, DHA)과 비타민 등의 함량이 높아 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2017년 10월 ‘국민 횟감 자리매김한 수입 연어, 안정적인 먹거리 차원 관리 필요’ 보고서를 보면, 2016년 세계 연어 교역 규모는 지난 수십년간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새우를 넘어섰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중화된 광어보다 샐러드나 롤, 초밥, 스테이크 등으로 소비되는 연어가 인기 생선으로 손꼽히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연어 전체 수입량은 1997년 2천t에 불과했으나, 2011년 1만9534t으로 1만t을 넘어선 뒤 지난해 3만7400t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국내 연어류 생산량은 3천여t에 그쳐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개발원은 “연어는 2012년까지는 초밥, 샐러드 등으로 주로 소비됐으나 2016년부터 노르웨이산 신선·냉장·훈제 등의 수입이 급증하며 ‘고급 횟감용’ 수산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연어 인기는 노르웨이산 연어의 가격 하락도 한 요인이었다.
제철 음식을 찾아 먹는 식도락이 늘면서 겨울철 방어 수요가 늘어난 것도 광어 소비 부진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광어와 달리 겨울철 기름이 오른 방어는 깊은 풍미와 고소한 맛으로 겨울철 별미로 인기다. 방어는 2016년 478t에서 2017년 748t, 지난해 1574t으로 2년 새 수입 물량이 3배 이상 폭증했다.
조리 과정에서 손길이 많이 가는 점도 광어의 단점 가운데 하나다. 원승환 제주도 양식산업팀장은 “연어나 방어는 말리거나 소금에 절이지 않은 ‘선어’ 형태로 수입돼 썰기만 하면 곧바로 먹을 수 있어, 손질 등의 일손을 줄여준다. 반면 활어인 광어는 손질해서 회를 뜨는 과정까지 손이 많이 가는 편이어서 소비자들은 물론 일선 음식점에서도 수요가 감소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원도 강릉시 화력발전소 인근에서 넙치류 양식장을 운영하는 김병덕(60) 동일수산 대표가 출하 시기를 넘긴 수조 속 광어를 바라보고 있다. 이정하 기자
더 큰 문제는 양식 광어의 산지가격이 폭락하고 있지만, 소매 가격은 요지부동이란 점이다. 가격이 떨어지면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자극해 소비가 느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으나, 소매 가격이 산지가격의 영향을 받지 않다 보니 소비가 정체되면서 물량이 해소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인천 활어도매시장에서 광어 1㎏당 도매가격은 출하 가격 수준인 평균 1만1천원으로 거래되고 있었으나, 소매점인 횟집에서는 광어 가격이 3만~3만5천원으로 이전과 견줘 전혀 내리지 않았다.
이런 산지와 소매 가격의 격차는 고질적인 유통구조 탓이란 지적이 나온다. 산지에서 도매와 중도매인, 소매까지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운송비 및 신선도 유지관리 비용이 더해지면서 산지와 소매 가격 격차가 나는 것이다. 인천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아무개(41)씨는 “산지가격이 내렸다고 해도 중간 유통단계를 거쳐 들어오는 가격은 그대로”라며 “활어 외에 제공되는 다른 서비스 품목 재룟값이나 인건비가 올라 소매점에선 가격을 낮출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수협 등에서는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수협 등 양식업계와 만나 유통 및 가격 안정성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박노백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사는 “배합사료 개발이나 백신 개발, 질병 관리, 양식장 에너지 저감기술 개발 등 양식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 제주어류양식수협 상무는 “활어이기 때문에 운송비가 더 소요되고, 추가로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가격 변동은 없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다”며 “생산자 차원에서 이런 고질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수협은 소비트렌드 변화에 발맞추고,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활어를 잡은 즉시 섭씨 0~5℃ 상태로 보관하여 유통하는 ‘싱싱회’나 ‘숙성회’ 형태로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관세 없이 수입되는 연어에 대해 특별긴급관세를, 일본산 방어에 물리는 관세 10%를 40% 이상으로 부과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내수 부진을 해결을 위해 올해 광어 군납 물량을 198t에서 500t 이상으로 늘려 달라고 건의했다.
제주도는 지역 경제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광어 양식의 가격 안정을 위한 양식어업인 지원대책을 내놨다. 먼저, 유통출하에 어려움을 겪는 양식어가를 위해 양식수협 자체 자금 37억5천만원을 들여 광어 400t을 5월 말까지 자체 수매하기로 했다. 광어 군납도 지난해보다 84t이 증가한 198t으로 늘리고, 가공비도 지원한다.
또한 제주도는 13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올해 안에 수산물수출물류센터와 광어 가공유통센터를 건립하고, 소비시장 및 수출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양식어업인들의 경영안정을 위해 양식수산물 재해보험료를 지난해 보다 2억원이 증액된 8억원을 확보했다. 양식어가 자부담의 55%까지 상향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농어촌진흥기금 및 수산물 수급가격 안정기금을 활용한 지원방안도 검토 중이다. 조동군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지금 상태로 광어 양식을 하게 되면 수입산 연어 등에 질 수 밖에 없다.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 양식 광어의 폐사율을 줄이고 생산단가를 찾는 방안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하 허호준 기자
jungha9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