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완(왼쪽) 충북 영동군 양강면 구강마을 이장이 23일 마을기금으로 마련한 재난지원금을 마을 어르신에게 건네고 있다. 영동군 제공
“비워야 채워지지요. 쓰려고 모았고, 지금이 가장 필요할 때니 아낌없이 풀어야지요.”
충북 영동군 양강면 구강마을은 23일 주민들에게 조금 이른 ‘추석 선물’을 건넸다. 30여년 쌓아온 마을기금을 쪼개 46가구에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 산과 들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마을은 추수 뒤 모은 폐비닐과 빈 농약병 등을 팔아 마을기금을 적립해 왔다. 주민과 출향민 등이 십시일반 보태기도 했다.
하지만 구강마을 곳간은 차거나 넘치는 법이 없다. 각종 행사와 지원비 명목 등 지출에도 불구하고 늘 2천만원 안팎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이 마을 배정완(57) 이장은 “정부·정치권에서 재난지원금을 준다 안 준다 쭈뼛거리는 것을 보고 마을회의를 열어 작지만 우리만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하지 못한 행사의 기금을 풀었다. 작지만 뜻있는 추석 선물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46가구 70~80명 정도 되는 마을은 그야말로 이웃사촌이다. 지난달 집중호우 때 용담댐 방류로 마을이 잠길 때도 어른들을 먼저 대피시켰다. 배 이장은 “주민 절반 이상이 70~80대 홀몸노인이다. 가까운 이웃이 부모·자식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사는 마을”이라고 했다.
정부, 자치단체 등이 마련한 재난지원금과 별도로 마을 단위 이웃끼리 나누는 ‘품앗이 재난지원금’은 이 동네만의 일은 아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5리는 지난 6월 마을기금 4100만원으로 전체 주민 205가구에 2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앞서 양구군 동면 임당2리도 5월 그동안 쌓아온 마을 발전기금 8800만원을 재난지원금으로 풀었다. 마을회의를 거쳐 모든 가구에 200만원씩 지급했으며, 전입한 지 1~2년 지난 새내기 주민에게도 10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건넸다. 이현철 임당2리 이장은 “정부에서 지급한 재난지원금이 주민에게 힘이 되고 경기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보고 결정했다. 주민들이 너무 좋아해서 2차 지원금을 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전북 완주군 상관면 정좌마을도 5월 20가구에 2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건넸다. 김진곤(54) 이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울해하는 어르신이 많고, 노인일자리 등 경제활동이 끊기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커져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마을기금을 무작정 쌓아놓기보다 필요할 때 도움을 드리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오윤주 박수혁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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