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난 16일 오전 <한겨레>는 감사원이 공익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농림축산식품부 감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농림부가 6개 경매회사가 과점한 서울 가락농산물시장 거래시스템 개선을 막고 있다’는 공익감사 청구인(전국양파생산자협회)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보도가 나간 이날 오후 농식품부는 4쪽짜리 ‘농산물도매시장의 공공성과 거래제도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을 추진 중’이라는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에서 농식품부는 서울시가 2013년부터 경매제 대신 도입을 추진해온 시장도매인제와 관련해 ‘조건부 승인을 하려 했으나 서울시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불승인됐다’고 설명했다. 도입 무산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는 뉘앙스다.
과연 그럴까? 당시 농림부가 내건 조건은 △대금정산조직 설립 △시장도매인제 도입 관련 연구용역 실시 등 △출하자 및 유통인의 합의 세가지였다. 이 가운데 서울시는 첫번째와 두번째는 충족했지만, 세번째가 문제였다.
6개 경매회사는 지난 36년 동안 가락시장을 독과점해 운영해왔다. 이들은 제3자의 시장 진입을 차단한 채 경매수수료로 낙찰가의 4%를 따박따박 받아내 영업이익률이 20%를 넘나드는 등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런 경매회사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새로운 제도 도입에 동의해줄까? 누군가를 처벌하려면 당사자 동의를 얻어 오라는 것과 같은 황당한 주문이다. 현 시스템을 보전하기 위해 농식품부가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는 시각이 많았고, 감사원도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면 “교섭력이 약한 소규모 출하자의 피해 등을 초래할 가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지난해 ‘가락시장 주요 품목의 출하 규모별 단가’ 자료를 보면, 현재 경매시스템에서도 소규모 출하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었다. 100톤이 넘으면 ㎏당 908원을 받지만, 1톤 미만은 623원밖에 받지 못하는 배추가 대표적이었다.
가격 변동에 대한 농식품부의 안이한 인식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도매시장의 농산물 가격은 수요를 반영하여 결정되므로 동일 출하자의 같은 물건이라도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날 수 있다”, “농산물은 특성상 수급불균형이 잦아 가격변동성이 높을 수 있다”는 언급이다. 이게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농안법) 주무부처가 당연하다는 듯 할 수 있는 말인가? 한날한시에 내놓은 똑같은 농작물이 분초 단위로 값이 들쭉날쭉한 걸 보는 농민들의 답답함과 박탈감은 남의 일일 뿐인가.
농식품부는 올해 초부터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했으며 토론회·공청회 등을 통해 ‘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참가자들 얘길 들어보면 시장도매인제 도입은 논외였다고 한다. 1980년대 가락시장 개설 뒤 과도한 가격변동성, 고비용 유통구조 등 문제점들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농식품부는 과연 누구에게 정책 눈높이를 맞춰야 할까? 감사원 감사가 이를 제대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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