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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방호복 입은지 2시간…눈앞은 흐릿, 머리는 띵해졌다

등록 2021-07-22 04:59수정 2021-07-22 08:35

강남선별진료소 검사보조 일일체험
얼음팩도 소용없는 폭염에 곧바로 땀범벅
진료소 공무원들 “우리가 안하면 누가…”
21일 낮 서울 강남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레벨-디(D) 방호복을 입은 <한겨레> 이승욱 기자가 진단검사를 위해 방문한 시민에게 안내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1일 낮 서울 강남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레벨-디(D) 방호복을 입은 <한겨레> 이승욱 기자가 진단검사를 위해 방문한 시민에게 안내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중복에 걸맞게 35~36℃까지 오른 폭염 속에서 레벨-디(D) 방호복 안쪽이 땀에 흠뻑 젖는 데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천막 아래 곳곳에 설치된 대형 선풍기는 부지런히 돌았지만, 방호복 안 더위를 식혀주진 못했다. 얼음팩도 1시간이 채 안 돼 녹아버렸다. 전날 역대 최다인 1784명이 신규 확진된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상황이다.

기자는 이날 아침 9시부터 낮 1시까지 선별진료소 의료진·행정지원인력과 함께 코로나19 진단검사 업무를 봤다. 아침 8시40분께 이미 선별진료소 앞에는 검사를 받으려는 이들 100여명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강남구 보건소 마당에 36㎡ 크기 천막 4개를 모아 만든 대기실은 방문객 50여명으로 가득 찼다. 대기실 주위에는 10m가량 3개의 줄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부족했다. “회사 출근 전 잠깐 검사받으러” 아침 7시30분부터 초등학생 딸과 왔다던 40대 여성이 9시 정각 가장 먼저 선별진료소 안으로 들어섰다.

박준석 강남구보건소 주무관은 “오늘은 그래도 적은 편”이라며 “현대백화점 집단감염이 발생한 지난주에는 주차장은 물론 주변 인도까지 줄이 이어졌다”고 했다. 대기업들이 모여 있고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구는 확진자도 많이 나오고 서울에서도 검사 건수가 가장 많은 자치구로 손꼽힌다.

선별진료소에서는 의료진 10명, 행정지원인력 30명 등 40명가량이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눠 4시간씩 교대로 일한다. 6월까지는 선별진료소 운영시간이 저녁 7시까지라 일하는 시간도 지금보다 30분에서 1시간씩 짧았지만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코로나19 4차 유행으로 선별진료소 운영시간은 2시간 늘어났다.

기자에게 맡겨진 일은 검체검사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도입된 전자문진표 작성을 돕는 일이었다. 안내한 첫 검사자는 “병원에서 가족 간병을 하려면 코로나19 음성 확인서가 필요하다”는 70대 할아버지였다. 주소와 연락처,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보며 전자문진표를 작성했다. 레벨-디 방호복을 입고 안내하니,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안내시간이 길어질수록 옆 동료의 업무가 많아지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폭염특보가 전국에 발효 중인 가운데 서울 낮기온이 36도를 기록하는 등 올여름 들어 가장 더웠던 21일 낮 서울 강남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선풍기와 아이스팩으로 더위를 견디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폭염특보가 전국에 발효 중인 가운데 서울 낮기온이 36도를 기록하는 등 올여름 들어 가장 더웠던 21일 낮 서울 강남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선풍기와 아이스팩으로 더위를 견디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일을 시작한 지 1시간쯤 지나니 검사자 번호표는 300번대를 넘긴 상태였다. 줄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옷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많이 더울 것 같은데 이거 안고 있으면 좀 괜찮아요.” 함께 전자문진표 작성 지원 업무를 한 김미영 주무관이 아이스팩을 건넸다. 더위가 잠깐 가시는 듯했지만, 곧바로 들어온 검사자 안내를 위해 아이스팩은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2시간째를 넘기면서 고비가 찾아왔다. 레벨-디 방호복을 입고 계속해서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앞이 흐릿해지는 느낌이었다. 지난 15일 관악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 쓰러졌다던 뉴스가 떠올랐고, ‘남의 일이 아니구나’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결국 레벨-디 방호복을 벗고 긴팔가운 4종 세트(KF94 동급 호흡기 보호구, 장갑, 방수성 긴팔가운, 고글 또는 안면보호구)로 갈아입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하절기에는 레벨-디 방호복 대신 이런 복장 착용을 권장한다. 중대본 조사 결과, 선별진료소의 66%, 임시선별검사소의 47%가 이 복장을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선 건강증진팀장은 “작년에는 코로나19 감염 우려에다 음압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여름에도 모두가 레벨-디 방호복을 입었다”며 “그러다 보니 탈수 증세를 호소하는 직원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21일 낮 서울 강남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진단검사업무를 체험한 &lt;한겨레&gt; 이승욱 기자가 선풍기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1일 낮 서울 강남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진단검사업무를 체험한 <한겨레> 이승욱 기자가 선풍기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어느덧 정오, 선별진료소 온도계는 38℃를 가리켰다. 복장을 갈아입은 뒤 상태가 한결 나아졌지만, 물과 음료수를 연신 들이켜는데도 갈증이 가시지 않고 멍한 느낌이 들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선별진료소를 찾아 몰려온 이들을 안내하다 보니 오후 1시 교대시간이 금세였다. 마지막 번호표는 815번.

장유리 강남구보건소 주무관은 “선별진료소 일을 하고 나면 돌아와 원래 일을 해야 하는데 더위로 땀을 흘린 뒤라 쉽지 않다”며 “검사를 하러 온 분들도 더위 때문에 얼굴이 상기돼 찾아오는데 그런 장면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이날 기준 서울시에는 자치구 보건소에 있는 선별진료소 25곳과 임시선별검사소 53곳, 찾아가는 선별진료소 8곳이 운영되고 있었다. 기자가 일한 보건소 선별진료소는 그나마 낫지만 임시선별검사소와 찾아가는 선별진료소는 아스팔트 바닥 위 등에 임시로 설치된 곳들이 많아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중대본도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지방자치단체의 판단에 따라 낮 2~4시 사이 운영을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온도계 속 수은주도, 코로나19 확진자도 기록 경신이 한창인 만큼 선별진료소의 위태로운 일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장 주무관은 “그래도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검사받을 곳이 없잖아요. 사명감 갖고 일해야죠. 최대한 주민들 도우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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