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이빨 빠진 듯 서울 서대문구 응암로 한 커피전문점 드라이브스루 매장 공사현장 앞 가로수 세그루가 갈변한 채 말라 죽어있다. 구청 쪽은 누군가 고의로 가로수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해 목격자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응암로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 앞
가로수 고사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27일 해당 건물 관리인 ㄱ씨를 용의자로 특정해 검찰에 송치했다. 앞서 지난 7월13일 서대문구는 이 건물 앞 플라타너스 가로수 세그루가 누군가의 농약 살포로 말라죽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ㄱ씨는 지난 6월29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농약사에서 제초제의 한 종류인 ‘근사미’를 사들여, 구청으로부터 차량진입로 마련을 위해 허가된 두그루 외에 건물을 가리는 나머지 세그루에까지 농약을 주입해 죽게 한 혐의(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다. 서대문구청이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의뢰해 이 가로수들의 둥치 부분에서 채취한 목질의 농약 성분을 검사한 결과,
안전허용기준의 700배에서 1만배가 넘는 근사미 농약 성분이 검출된 바 있다. 하지만 ㄱ씨는 경찰 조사에서 “(구청에서 허가받은) 두그루에만 농약을 썼다. 그날 비가 왔는데, 농약이 하수관을 타고 나머지 세그루까지 죽인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근사미가 도심에서 좀처럼 구하기 힘든 농약인데다 가로수 다섯그루가 같은 방식으로 고사했고, ㄱ씨가 남은 농약 처리와 관련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점 등을 근거로 ㄱ씨에게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ㄱ씨 추정과 달리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는 “비가 왔다고 하더라도 하수관을 타고 농약이 흘러가 나무를 죽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경찰에 보내왔다고 한다.
이순명 서대문서 수사과장은 “다각도 수사를 진행해 확보한 각종 정황증거로 볼 때 ㄱ씨를 재판에 넘기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목격자나 시시티브이(CCTV) 등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데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등은 논란이다. 게다가 ㄱ씨를 고용한 건물주 조사가 전화통화로만 이뤄졌다고 한다. 건물주는 경찰과 통화에서 “매장 앞 나무가 제거돼 그늘이 사라져 가장 피해를 본 건 바로 나다”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청해 수사가 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진우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대표는 “그동안 범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 죽어가고 베어진 나무들이 많았는데, 이번 가로수 독살사건은 경찰이 수사해 검찰에 송치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건의혹을 밝히기 위해 충분한 조사가 진행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검찰수사에서는 건물관리인이 혼자 이 일을 벌였는지, 건물주와의 관계는 없는지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숲법에서는 가로수 등을 훼손한 사람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 처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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