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난 8월부터 실시한 인터넷 동영상 강의 제공 서비스 ‘서울런’의 누리집.
‘20~40초만 강의 들어도 업체에 학생당 10만~12만원 지급’, ‘한명만 들어도 1천명분 대금 지급’
서울시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교육공약이었던 ‘서울런’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교육업체에 과도한 특혜를 부여한 사실이 확인됐다. 관련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환불규정은 없었고, 업체에 억대 미니멈개런티를 보장해주면서도 상한액 규정도 따로 두지 않은 것이다. 저소득층 청소년 11만명에게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제공하는 ‘서울런’ 사업은 오 시장 구상 단계 때부터 <교육방송>(EBS) 등과의 중복, 실효성 문제 등이 지적된 바 있는데, 서울시는 올해~내년 200억원 넘는 예산 집행 계획을 세웠다.
12월 가입자는 등록만 하면 수강비 전액 지급
14일 <한겨레>가 김경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받은 ‘㈜케이티(KT)와 메가스터디교육㈜ 간 서울런 콘텐츠 공급 계약서’를 보면, 두 회사는 올해 8월27일부터 12월30일까지 제공되는 강의는 ‘20초 이상 수강 이력이 있는 사용자를 유효인원 1인으로 정산한다’(부속합의서 제3조)고 합의했다. 또 ‘올 12월1일 이후에 가입한 사용자는 수강 이력 여부와 상관없이 유효사용자 검증을 하지 않고, 유효인원 1명으로 간주해 정산한다’고 계약했다.
강의를 20초만 듣거나 등록만 해도 한 사람당 12만원(8월27일~10월31일 1차 등록) 또는 10만원(11월1일~12월31일 2차 등록)인 수강료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메가스터디에 지급한다는 의미다. 서울시 쪽은 10월31일 이전 1차 등록기간에 20초 이상 수강했으나 그 이후 2차 등록기간에 수강 이력이 없으면 12만원의 절반인 6만원만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경우에도 2차 등록 때 20초 이상 수강 이력이 있으면 12만원이 지급된다.
서울런 사업이 케이티가 서울시와 메가스터디 등 동영상 강의 업체들 사이를 중개하는 형태로 추진돼 케이티가 계약주체지만, 실제 지급되는 돈은 서울시 예산에서 나온다. 또 이 계약서는 사업 발주처인 서울시와도 공유됐다.
메가스터디의 자체 환불규정과 비교해 봐도 이런 계약 내용은 불공정하다. 메가스터디는 ‘수강 시작 이후에라도 수강기간이 남아 있는 한 잔여분에 대해 부분환불할 수 있다’, ‘수강 시작 전에는 전액 환불이 가능하다’는 환불규정을 두고 있다.
계약서에는 서울시가 일정 매출액을 보장해주는 최소 금액 보장(미니멈개런티·MG) 조항(부속합의서 제3조)도 포함돼 있었다. 단 1명만 들어도 1천명은 들은 것으로 간주해 1억1999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반면, 가입자가 늘어도 비용은 고정돼 있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특성상 가입자 수가 늘면 단가를 낮추는 게 합리적이지만, 별도 상한액 규정은 없었다. ‘1천명 초과 시 계약단가는 월별 자동정산한다’는 게 전부였다.
두 회사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서울시만 손해 볼 수 있는 독소조항들은 이외에도 여럿이었다. ‘콘텐츠의 변경 절차에 관한 사항은 양사 합의하에 변경할 수 있다’(계약서 제3조 콘텐츠 공급)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내용이 바뀔 경우에는 돈을 내는 발주처와 협의를 거치는 게 보통인데, 케이티와 메가스터디가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한 것이다. ‘본계약 이행에서 개발, 작성된 자료, 기술, 노하우 등에 대한 지식재산권은 개발한 당사자에 귀속된다’(제7조 지식재산권), ‘양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각각의 권리를 제3자에게 승계할 수 있다’(제13조 권리·의무 양도 금지)는 대목 등도 서울시에는 불리한 조항들이다.
김경 시의원은 “통상적으로 공공사업에서 사업 진행의 결과물은 발주한 기관에 귀속된다. 또 공공발주는 재하청을 금지하는데, 권리 승계 과정에서 서울시가 한마디도 할 수 없도록 했다는 건 불공정 계약”이라며 “11만명 대상 인원이 있는데도 서울시가 유리하게 계약을 끌고 가지 않고 왜 업체들에 유리한 계약을 맺었는지 의혹투성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는 계약서 보안에도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제10조(비밀유지)를 보면 ‘법령 또는 법원 및 정부기관의 명령에 의해 제출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관계 정부기관 또는 법원에 업무상 비밀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정한 뒤, ‘비밀유지의무는 계약 종료 후 3년간 유효하다’고 적시했다.
서울시도 시가 케이티와 맺은 협약서만 공개했을 뿐, 시의원 등의 요구에도 수강비 정산 방식 등 중요한 내용이 담긴 케이티와 동영상 제공 업체의 계약 내용은 “사기업 간 계약”이라며 대부분 내용을 검게 블라인드 처리한 뒤 제공해왔다.
케이티와 메가스터디가 지난 8월26일 맺은 서울런 콘텐츠 공급 (계약) 부속합의서. 제2조에서 두 업체는 ‘단 1명만 강의를 들어도 1천명이 들었을 때의 금액을 (서울시로부터) 지급받는다’는 최소액 보장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최대지급액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유효 사용자 검증 기준을 제시한 제3조에는 ‘20초 이상 수강 이력이 있으면 유효인원으로 계산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두 업체는 제5조에 ‘이 부속합의서가 ‘본계약’보다도 우선한다’고 확인했다.
사교육업체에 특혜를 제공하는 내용이 계약에 포함됐지만, 오세훈 시장은 계약 내용을 자화자찬해왔다. 지난달 16일 시의회 본회의에서 “인기 있는 업체들이고 시중가격보다 44% 저렴한 가격으로 저희와 계약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최소한의 보장을 하지 않으면 참여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답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12만원이란 가격이 얼마나 저렴한지는 논란거리다. 대성마이맥이 지난달까지 제공했던 ‘전 영역 전 강좌 수강’ 프로그램의 가격은 68만원이지만, 20만원 상당 ‘갤럭시버즈2’와 교재를 살 수 있는 36만원가량 포인트를 제공해줘 이를 뺀 실제 수강비는 12만원가량이다. 서울런은 교재비 2만원 지급이 전부다.
메가스터디도 가장 비싼 ‘프리미엄 최고급 강의’가 109만원이지만 교재비로 60만원이 제공된다. 나머지 49만원을 1년 동안 듣는 구조로 한달 수강비는 4만원가량이다. 하지만 서울런은 11월1일부터 참여한 학생들의 경우 8만원(두달치)어치를 듣고 10만원을 내는 셈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1월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3회 정례회 2차 본회의에 참석해 더불어민주당 김경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이대현 서울시 평생교육국장은 “사기업 간의 계약에 시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업체들과 케이티 쪽에 물어보니 ‘일반적인 것으로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한다. 메가스터디 일반회원의 교습시작 인식 방식과 동일하게 적용했다. 또 사업권 제3자 양도규정은 비상상황에 대비한 규정으로 재하청·재발주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언론 지적도 있고 하니, 대금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바로잡을 것이 있다면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약서에 비상상황은 언급돼 있지 않고, 사교육업체들이 적용하는 환불규정도 나와 있지 않다.
서울런은 오 시장의 대표적인 교육공약이다. 오 시장 취임 두달 뒤인 지난 6월 서울시는 서울런 사업 추진계획을 밝혔고, 7월 추가경정예산안에 51억원(홍보비 16억원 포함)을 반영했다. 내년도 예산안에도 168억원을 편성했지만, 시의회 상임위 심의 때 전액 삭감돼 예산결산특별위로 넘어간 상태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추경으로 이 사업을 추진할 때 집행부(시)에서도 ‘그런 사업을 왜 서울시가 하지’라며 부정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시장 공약인데 뭐… 어떻게 하겠나’라는 대화들이 오갔다”고 전했다.
김 시의원은 “공공발주 사업은 계약 내용을 더 엄격하게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건은 매우 이상하고 수상한 계약”이라며 “세금 한푼이라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던 오세훈 시장이 왜 당연히 보장받을 수 있는 환불권마저 포기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