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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없고 의무만…제도 미흡 읍·면·동 ‘주민자치회’

등록 2022-05-02 04:59수정 2022-05-02 09:08

전국 주민자치위, 3분의1 주민자치회로 전환
예산 없고, 권한 불명확…자치회 숫자만 늘려
대표기구라는데, 현장에선 ‘대표성’에 의구심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주민자치회가 위탁받아 운영하는 화성행궁 광장 내 시민자전거 대여소. 수원시 제공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주민자치회가 위탁받아 운영하는 화성행궁 광장 내 시민자전거 대여소. 수원시 제공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은 조선시대 성곽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과 궁궐인 화성행궁을 품고 있다. 4월14일 찾은 화성행궁 앞 광장 한편에는 궁궐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자전거 대여소가 눈에 띄었다. 이 대여소는 행궁동주민자치회가 시로부터 위탁받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행궁동은 2013년 6월 행정안전부의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지로 처음 선정돼 가장 먼저 자치회를 출범시킨 마을이다. 한창석 행궁동주민자치회 회장은 “자치위는 주민자치센터 운영이나 동 행정업무 심의·자문이 주된 역할이었다. 자치위는 지자체 위임·위탁사업이나 수익사업 참여에 제약이 많았는데, 자치회로 전환한 뒤 별도 사업자 등록이 가능해져 공모를 통해 시민자전거 대여 사업을 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2007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온 한 회장은 자치회로 바뀐 뒤 두드러진 변화로 △위원 구성 및 선발 △주민총회 개최 등을 꼽았다. 자치위 당시엔 임명권자가 읍·면·동장이었지만, 자치회는 시장이 자치위원을 임명하면서 위원회의 위상 자체가 달라졌다. 동장 추천으로 구성된 자치위와 달리 자치회는 공모(70%), 동장 추천(30%) 가운데 추첨을 통해 자치위원을 선발한다. 가장 큰 변화는 의사결정 방식이었다. 연 1회 주민총회를 통해 자치계획을 주민 투표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한 회장은 “기존에는 주민자치위원만 참여했지만, 주민총회는 만 18살 이상 행궁동에 주소를 둔 주민뿐만 아니라 사업장 종사자, 외국인 거주자 등도 참여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행궁동은 2019년 6월 수원시에서는 처음 주민투표로 동장을 뽑는 ‘동장주민추천제’를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

수원시는 주민자치회 활동이 풀뿌리 자치를 활성화하는 기여도가 큰 것으로 평가한다. 지난 3년간 주민자치회 시범 동 8곳에서 마을 소식지 발간, 무인택배함 설치 등 주민 자체적으로 296건의 사업을 발굴했고, 이 가운데 92건이 예산에 반영돼 실제 사업으로 이어졌다. 수원시는 이런 성과를 토대로 전체 44개 동 가운데 현재 자치회를 운영 중인 8곳 외에 올해 20곳을 추가로 설치·운영할 예정이다.

무늬만 바꿨나…실효성은 없고, 강제 의무 교육만

그동안 주민들은 자치행정에 관심이 있더라도 지방정부의 행정에 동원되거나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주민이 직접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행정 참여의 문을 개방한 것이 읍·면·동 단위에 둔 ‘주민자치회'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3년 전국 읍·면·동 38곳에서 처음 도입된 주민자치회는 박근혜 정부 때 95곳이 더 늘었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인 2019년부터 크게 늘기 시작해 지난해 말 기준 136개 시·군·구 1013곳까지 확대됐다. 전체 3495개 읍·면·동의 29%가 주민자치회를 운영하고 있다. 9년여 동안 ‘동장추천제’ 등 특색 있는 주민자치 실험이 펼쳐지는 곳도 있지만, 일선 현장에선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자치 권한은 과거 주민자치위원회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근 용인시는 전체 38개 읍·면·동 가운데 자치회를 운영 중인 곳은 한곳도 없다. 이전부터 자치위원회를 운영해온 31개 동은 이를 굳이 자치회로 바꿀 필요를 못 느낀다. 이름만 바뀔 뿐 구성원이나 역할, 권한은 그대로인데, 굳이 바꿔봐야 눈에 띄는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장인용 용인시주민자치연합회 회장(동부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자치회로 전환한다고 자치권한이 강화되거나 별도의 예산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시범사업 성과를 관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치회로 바꾼다고 특별히 나아지는 것도 없고, 시·군·구 조례로 ‘6시간의 사전교육’ 이수 의무만 부과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아직 자치회 설치·운영과 관련한 법적·제도적 근거가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았고, 자치회 업무 대부분을 행정 조직에서 여전히 맡고 있는 점도 일선 지역에서 자치회 전환에 소극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 정무정 수원시 행궁동 행정민원팀장은 “사실상 무보수 명예직인 자치회는 사업 예산은 물론 회계나 실무를 담당할 자체 상근 인력도 없다. 실질적인 자치가 가능하게 하려면 정책 결정에 따른 예산도 수반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 내 한 기초의원은 “주민자치회는 단위가 작을 뿐 읍·면·동의 주요 정책을 심의·결정하는 사실상의 ‘미니 의회’ 성격이 짙다. 하지만 투표로 선출된 기초의원과 역할·기능이 겹치는 부분이 있고, 통·이장 협의회 등 읍·면·동에 있는 10개가 넘는 자치단체를 아우르는 주민대표기구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주민도 많다”고 전했다.

경기 오산시 초평동주민자치회 위원들이 지난해 5월 오산천 철교 안에 위치한 자투리땅에 둥근소나무와 벌개미취, 옥잠화 등을 심는 작은정원 가꾸기 사업을 하고 있다. 오산시 제공
경기 오산시 초평동주민자치회 위원들이 지난해 5월 오산천 철교 안에 위치한 자투리땅에 둥근소나무와 벌개미취, 옥잠화 등을 심는 작은정원 가꾸기 사업을 하고 있다. 오산시 제공

법적 근거 미약…주민대표기구 맞나

자치회에 예산과 인력 지원 등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자치회와 관련한 법적 근거가 미흡한 탓이다. 현행법에는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과 관련해 명확한 근거 조항이 없다. 행정안전부는 2013년 제정된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별도의 법률로 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2020년 12월 ‘주민의 지방자치행정 참여’를 명시한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전부 개정됐지만, 애초 포함됐던 주민자치회 관련 조항은 삭제됐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 될 수 있고,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와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행정 혼선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진 탓이다. 대신 행안부는 시·군·구가 시범사업에 필요한 관련 조례안을 만들 때 참고할 수 있게, 지침서 격인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안’을 만들었다.

자치회 운영에 필요한 재정·행정적 지원 계획은 마련하지 않고 자치회 수만 늘리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경호 전 경기도의원(가평군수 예비후보)은 “주민세 환원 등으로 자치회 운영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세종시와 대전 유성구는 특별회계를 설치해 주민세, 분권 관련 대전시 지원금, 그 밖의 전입금을 재원으로 주민자치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현 주민자치의 한계…“통·리 단위로 축소해야”

국회에는 현재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등 주민자치와 관련된 8개의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상임위원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법제화가 미비한 지금 시점에선 주민 의결권이 보장된 ‘주민총회’에서 주민 참여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 주민자치회의 대표성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주민자치가 성공하려면 읍·면·동 단위보다 작은 통·리 단위에서 주민자치회가 설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은 “읍·면·동은 단위가 커서 마을별 이해관계의 충돌 가능성 등 변수가 많다. 주민 규모가 2000명을 넘지 않는 통·리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자치회를 조직하고, 통·리 자치회가 다시 읍·면·동의 자치회를 구성하는 방식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상진 행안부 자치분권제도과장은 “주민자치회는 필요한 읍면동에서 자율적으로 조직하는 것이지,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민자치위원 출신들이 기초의원 등으로 지역정치에 참석하는 것을 두고는 찬반이 엇갈린다. 자치위 활동이 지역 정계 진출을 위한 징검다리이자 스펙 쌓기 이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를 굳이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주민자치위원장 출신의 한 기초의원 예비후보는 “주민 밀착형 생활정치를 익히는 데 주민자치위원 활동 만큼 좋은 기회는 많지 않다. 풀뿌리 정치인을 꿈꾸는 이가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자치위 활동을 하는 것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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