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예정지로 지정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시미리 일대. 이정하 기자
“백번천번 환영할 일이지만, 선대부터 수백년 이어온 삶의 터전이 통째로 사라진다니….”
지난 17일 정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시미1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조동식 시미1리 이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말한 ‘백번천번 환영할 일’이란 시미리를 포함한 이동읍과 인근 남사읍 일부가 정부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조성 예정지로 선정된 것을 가리킨다. 사업 예정지는 서울 여의도 면적보다 2.4배 넓은 710만㎡에 이른다. 예정지는 경기도 평택과 광주를 연결하는 국도 45호선 양옆에 자리잡고 있다. 주로 농경지와 임야, 자연부락이다.
지난 15일 정부의 예정지 발표 때만 해도 이동읍과 붙어 있는 남사읍만 언급됐는데, 이날 오전 ‘개발행위허가 제한구역’ 공고가 뜨면서 동네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예정지 전체 개발면적의 73%(521만7천㎡)가 이동읍에 있었고, 남사읍은 완장리와 창3리 등 임야지역 일부만 포함됐기 때문이다. 개발행위허가 제한구역으로 지정되면 3년간 건축물의 신축이나 증개축, 토지형질변경, 벌채 및 식재 등이 제한된다. 이동읍과 남사읍 전역이 3년 동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것도 주민들에겐 불안 요소다.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된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읍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용인시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소식을 듣고 마을회관으로 모여든 원주민들은 당장 이주 및 보상 문제를 우려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원주민은 “처인구 원삼면에 에스케이(SK)하이닉스 공장 조성사업이나 옆 동네인 덕성산업단지 조성사업 때 땅이 강제수용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보상 문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땅만 가진 외지인이야 좋겠지만, 원주민은 보상금 찔끔 받아서 어디 가서 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예정지 내에 중소 규모 제조업체도 즐비하다. 올해 초 공장 문을 연 플라스틱 제조업체 대표는 “물품 보관을 위한 창고 건설 등의 추가 투자가 필요한데, 갑자기 예정지에 포함돼서 당황스럽다. 이주나 보상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린 텐데, 사업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고민”이라고 했다.
남사읍 내 유일한 대단지 아파트인 한숲시티 맞은편 야산 일대도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포함됐다. 이정하 기자
반면 사업 예정지에 포함되지 않은 주변 지역에선 삼성전자가 2042년까지 용인에 300조원을 투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한껏 흥분한 분위기였다. 특히 화훼·농업 등 1차 산업 종사자가 많은 남사읍의 기대감은 남달랐다. 남사읍의 유일한 대단지 아파트(6800여가구)인 한숲시티 주민 박아무개씨는 “그동안 상수원보호구역 규제 등으로 개발 여건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 남사나 이동 일대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들어선 평택처럼, 교통 등의 인프라가 대폭 확충되고 배후단지도 조성될 것으로 본다”고 반겼다. 정부는 삼성전자의 첨단 반도체 공장과 함께 국내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 등 150개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직접 고용 3만명을 포함해 160만명의 직간접 고용 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 전망이다.
용인시는 17일 이상일 시장 주재로 회의를 열고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원을 위한 추진단 구성 및 인허가를 비롯한 각종 협의 절차의 신속 진행, 용수·전력 확보 방안, 도로 등의 인프라 확충 방안 등을 논의했다. 황규섭 시 신성장전략국장은 “정부에서 원주민 이주대책 및 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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