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선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피의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컨설팅업체 직원 ㄱ씨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찾아온 20대 사회초년생에게 이사 비용 300만원을 대주겠다며 세입자가 없는 신축 빌라를 시세보다 비싼 2억49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도록 했다. 무자격자인 ㄱ씨는 자신이 불법으로 성사시킨 계약과 관련해, 공인중개사 ㄴ씨에게 수수료를 지급하고 대필을 요청해 전세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빌라는 전세계약이 체결된 뒤 새로운 임대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됐는데, 새 임대인이 세금을 체납하면서 빌라가 압류됐고,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새 임대인은 빌라의 실소유주가 아니라 ‘명의’만 빌려준 ‘바지’ 임대인이었다. 반면 ㄱ씨는 이 중개를 성사시킨 대가로 건축주로부터 1800만원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가 지난 1∼3월 매매 가격에 견줘 전셋값이 높은 지역의 공인중개사무소를 대상으로 25개 자치구와 합동 조사를 실시한 결과, ㄱ씨 사례와 같은 △거래계약서 작성 규정 위반 △자격증 대여 △고용인 미신고 등의 불법행위 72건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금지행위 위반, 자격증 대여 등 4건의 행위는 수사를 의뢰했고, 거래계약서 작성 위반, 고용인 미신고 등 11건 대상으로는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이 밖에 중개대상물 표시광고 위반 등 18건은 과태료를 부과하고, 경미한 사안 39건은 현장 계도 조처를 했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6명, 중개보조원 4명 등 10명은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형사입건됐다.
서울시가 조사한 전세사기 피해사례 구조. 서울시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 민생침해범죄신고센터에 접수된 ‘깡통전세’ 관련 제보를 살펴보면, 범행은 주로 시세를 알기 어려운 신축 빌라의 가격을 부풀려 전세계약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이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큰 것을 알면서도 성과보수 등을 노리고 불법 중개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는 대부분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 신입생, 취업준비생 등 주택 계약 경험이 일천한 청년층에 집중됐다. 부동산컨설팅업자 등이 개입한 사례도 확인됐다.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합동으로 5월31일까지 악성임대인 소유 주택을 2회 이상 중개한 공인중개사와 해당 물건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지난 2월 문을 연 서울시 전·월세 종합지원센터에서는 경험이 풍부한 공인중개사를 배치해 전·월세 상담서비스도 제공한다.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전세 가격의 적정성 여부와 계약서 작성법 등에 대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전·월세 관련 범죄행위를 발견하거나 피해를 입은 경우엔 누구나 스마트폰 앱과 서울시 누리집 등을 통해 불법행위를 신고할 수 있다. 제보자는 ‘서울시 공익제보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심의를 거쳐 최대 2억원까지 포상금을 받게 된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