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송치승│원광대 경영학과 교수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세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파트 전세 가격은 하락에서 상승으로 전환했지만 빌라, 다가구 등 단독주택 전세가격은 계속 하락하는 양극화 추세다. 고금리 아래서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나 다른 주택으로 옮기려는 세입자는 물론이고 빌라, 다가구주택에서 월 임대료로 생활하는 집주인이나 소규모 임대사업자들은 모두 어려움에 빠져 있다. 보증금을 반환해야 할 시점에서 전세 시세가 하락하면 여유자금이 부족한 임대인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가 없다.
빌라, 다가구 등 단독주택 전세 수요 감소는 악성 임대인으로 일컫는 ‘빌라왕’의 전세 사기에 따른 세입자의 심리적 동요와 함께 지난해 국토교통부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요건 강화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신규계약에 대해 세입자가 드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요건 가운데 가입금액을 공시가격의 150%에서 140%로 낮추고 이 한도 안에서 전세금의 담보인정비율도 100%에서 90%로 줄였다. 올해 1월부터는 갱신계약에 대해서도 이를 적용하고 있다.
2022년 말 수백 세대의 임차인들이 소수의 ‘빌라왕’들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기 피해는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이런 전세사기 사건은 개인의 탐욕과 일탈, 전세라는 임대차제도의 특성, 금융기관 정보공유의 허실, 정부의 위험관리부실이 빚어낸 총체적 결과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 사람이 ‘갭 투자’ 형태로 수십 채도 아닌 수백, 수천 채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가? 금융회사별 채무정보가 통합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들은 이들 악성 임대인의 등기 및 대출자 승계에 대해 어떤 역할을 했는가? 다주택자에 대한 세수 강화를 추진한 정부는 한 사람이 수천 채를 소유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각심이나 위험성을 파악하고 관리했는가?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빌라왕 문제를 개인의 탐욕과 세입자의 무지 탓으로만 돌리고 금융회사와 정부 역할에 대한 반성이나 자성은 없는 듯하다.
필자가 보기엔 2022년 5월 정부의 빌라왕 대책으로 실시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한도 축소 및 보증요건 강화 조치는 빌라, 다가구 주택, 아파트 등에 대한 보유 가구 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1주택 이상 임대인에게 적용함에 따라 다음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보증가입금액 한도를 축소하고 보증요건을 강화한 조치는 양극화된 전세시장에서 일종의 ‘최고 가격제’ 역할을 하는 듯하다. 전세가격을 시장가격보다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가격이 오르는 아파트는 영향이 별로 없다. 반면 수요 감소로 전세가격이 하락하는 빌라, 다가구주택 등의 단독주택은 신규 전세금이 직전 전세금보다 낮아지는 이른바 ‘역전세’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역전세의 악순환 위험은 이들 주택 영세 임대인의 재무적 곤란을 심화시키면서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사기’ 상황으로 내모는 구조가 된다.
둘째, 모든 1주택 이상 임대인에 대한 빌라왕 조치 적용은 전세 세입자에게 “내가 거주하는 주택의 임대인도 빌라왕처럼 전세사기범일 수 있다”라는 부정적 인식과 신호를 과도하게 주고, 이들의 단독주택 거주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2년 말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을 보면, 우리나라 총 주택 1916만 채 가운데 아파트는 64.5%, 다가구주택 등 단독주택이 20.2%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연립 및 다세대 등이다. 주택당 평균 거주인 수도 아파트가 2.6명이고, 다가구 및 단독주택은 3.5명이다. 다가구 등 단독주택에서 거주하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26.2%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거주하는 주택시장의 안정성은 정부의 과잉조치로 훼손되면서 그 위험이 확대되는 조짐이다.
보유 가구 수를 무시한 채 모든 임대인에 대해 보증가입금액 한도를 축소하고 보증요건을 강화한 조치는 무리한 대응이다. 정부가 빌라왕 잡으려다 이제는 빌라 및 다가구주택의 역전세를 조장하면서 영세 임대인을 잠재적 전세사기범으로 내모는 건 아닐까? ‘가래로도 막기 힘든’ 상황이 오기 전에 ‘호미로 막을’ 정책당국의 지혜와 대처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