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7월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설치된 쿨링포그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더워도 너무 덥지요? 도심 오아시스에서 눈치 보지 말고 쉬어 가세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모란시장 근처 모란드림시티 1층 ‘성남이동노동자 쉼터’에는 요즘 하루 70여명의 이동노동자가 다녀간다. 배달노동자와 택배·대리기사부터 학습지 교사, 요양보호사 등 플랫폼에 등록돼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 쉼터 최삼태 사무국장은 “펄펄 끓는 폭염에 편의점이나 커피숍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에어컨만 찔끔 쐬고 나오기 일쑤였지만, 잠시나마 맘 편히 다리를 뻗고 쉴 수 있는 이곳이 입소문이 나면서 한달에 2천명 가까이 다녀간다”고 말했다.
■ 플랫폼 노동자들의 오아시스
배달 일을 하다 잠시 들른 최아무개(57)씨는 “호출을 기다릴 때 더위를 피할 곳이 없어 은행 현금인출기(ATM)에서 대기하기도 했다”며 “이제 그런 서러움은 없다”고 미소 지었다.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운영되는 이 쉼터는 남녀 휴게실이 구분돼 있고, 얼음과 생수, 커피는 물론 안마의자까지 갖춰 쉼터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다. 경기도에는 이런 쉼터가 13곳 운영 중이다.
서울시 강남구도 9월30일까지 강남취·창업허브센터 등에 이동노동자 쉼터를 24시간 운영하면서 얼음 생수 1만병을 나눠주고 있다. 쉼터에는 냉방은 물론, 음료수가 갖춰져 있고, 이륜차와 배달용 차를 주차할 공간도 있다. 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배려이자 노력이다.
‘가마솥더위’가 계속되면서 폭염 극복을 위한 아이디어도 눈길을 끈다. 서울시내 여러 자치구에선 ‘생수나눔’ 사업이 진행 중이다. 가장 먼저 이 사업을 시작한 노원구는 주민 왕래가 잦은 하천과 산책로에 냉장고를 배치하고 생수를 무료로 제공해 호응을 얻었다. 그러자 성북구와 성동·강북구 등에도 ‘생수나눔 냉장고’가 곳곳에 설치됐다. 경기도 구리시도 ‘여기워터 힐링고’를 운영 중이다. 공원과 산책로 등에 생수가 든 냉장고를 설치해 시민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폭염 경보가 발효된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햇볕을 피해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쪽방촌에 등장한 물안개 분사기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도 속속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영등포와 돈의동, 남대문 쪽방촌 골목에 ‘쿨링포그’를 설치했다. 단열이 잘 안되는 건물이 많아 집 외벽에 가는 관과 스프링클러를 설치한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물안개는 주변의 온도를 낮춰서 골목의 더위를 식혀준다. 이런 장치는 광주·대구·울산 등에서도 운영 중이다.
서울시는 다음달까지 한시적으로 쪽방촌 인근 목욕탕 3곳을 ‘밤 더위 대피소’로 지정했다. 주민들이 무료로 목욕도 하고, 냉탕에 몸을 담그며 시원한 수면실에서 잠을 청할 수 있게 한 것이다. 7월1일부터 26일까지 쪽방촌 주민 412명이 대피소를 이용했다. 시는 1인당 최대 20일까지 사용할 수 있었던 밤 더위 대피소를 8월부터는 빈자리가 있을 경우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인명피해 예방책도 마련되고 있다. 부산시는 야산 능선과 대규모 비닐하우스 논·밭, 해안가 산책로 등에 드론을 띄워 폭염 때 일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대피를 권고하기로 했다. 또 공공앱(라이프 인 부산)을 통해 영어·중국어·일어·러시아어·베트남어 등으로 위험 기상 정보를 외국인 이주민에게 제공한다.
부산지방기상청과 경남 창녕군은 창녕군의 70살 이상 농민 223명에게 ‘폭염 영향예보’를 활용해 휴식 권고와 외출 자제, 열대야 경보 등 안전문자를 수시로 보내고 있다. 창녕군은 부산·울산·경남을 통틀어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폭염 일수가 가장 많고, 평균 최고기온도 가장 높은 지역이다. 충북 충주시도 이장·통장·주민 등 833명으로 무더위 자율방재단을 꾸려 지역 경로당 등 무더위 쉼터 574곳을 순찰·관리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 중이다.
■ 무료로 양산 빌려주는 지자체도
강원도 평창군과 인제군, 대전 대덕구에서는 ‘양산 대여소’를 운영하고 있다. 민원실 등 다중집합시설에서 무료로 양산을 빌려준다. 햇볕이 강할 때 양산을 쓰면 체감 온도를 10℃까지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폭염이 이어지며 전국에선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7월29~31일 최소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대다수는 온열질환에 취약한 고령자였다. 대부분 밭일을 하러 나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종합,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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